나는 방광암인 남자와 결혼했다.
그렇게 우리는 당분간 떨어져 지내는 생활을 시작하였다.
큰아들은 엄마 집과 가까운 어린이집에, 둘째는 엄마에게 맡기고 나는 일을 했다. 남편은 시골에서 수박 하우스를 지었다.
각자의 새로운 삶이 보름 정도 지난 어느 새벽, 자다가 아이가 옆에 없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내 품에 있어야 할 큰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둠에 눈을 적응시킨 후 컴컴한 방안을 둘러보았다.
아들은 방 한 귀퉁이에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미동없이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들은 대답이 없었다.
고개조차 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 뒤 이것저것 물어봐도 대답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묻는 걸 그만두고 아들을 꼭 안았다.
아들은 반응 없이 내 품에 안겼다.
큰 아들은 아빠랑 더 가까웠다.
퇴근이 늦었던 나를 대신해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큰 아들은 집에 와서 아빠와 함께 씻고, 아빠와 함께 밥을 먹고, 아빠와 함께 잠을 잤다.
모든 것이 엄마보다 아빠와 하는 것이 익숙한 아이에게 아빠의 부재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아들의 이상행동을 보고 한 주 뒤에 갈 예정이었던 시골집에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갔다.
나는 살던 집을 정리하고, 남편은 자신이 지낼 시골집을 정리했기에 나도 아이들도 시골집을 방문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11월의 시골은 겨울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이른 저녁인데도 날이 어두웠다.
멀리 길에서 보니 마을 끝자락에 자리잡은 집에 불이 꺼져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의 집들은 조용한 불빛을 내뿜는데 남편이 있는 집만 불이 꺼져있는 게 이상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집 안에는 냉기가 흘렀다.
나는 혹시 몰라 까치발을 들고 마루를 지나 남편이 있을법한 방의 문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방안,
한겨울의 냉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기,
작은 행거 하나,
동그란 철제 밥상 하나,
그 위에 올려진 커다란 냄비 하나,
바닥에 덩그러니 깔린 매트,
그 위에 올려진 두꺼운 목화 솜이불,
그 안에서 끙끙 앓고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나는 우선 남편을 흔들어 정신이 있는지부터 체크했다. 남편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감기에 걸렸다고 말했다.
이 모든 상황이 답답하고 속상해서 나는 목소리가 커졌다.
“사람이 아프면 보일러를 켜서 따듯하게 하든지 해야지…. 입에서 입김이 나는 방에서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는 보일러부터 켰다. 아픈 남편에게도 어린아이들에게도 방안은 너무 추웠다.
남편은 아픈데도 아이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모습에 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약은 먹었어?
방이 왜 이리 차가워?
우리 온다고 일부러 폐인 코스프레하는거야?
이 커다란 냄비는 도대체 뭐야?"
나는 방문을 열었을 때 받았던 첫인상을 따져 묻듯이 물었다.
남편은 내 얼굴과 아이 얼굴을 번갈아 가며 보면서 차근차근 대답했다.
약은 먹었고,
방은 혼자 사는 집이라 전기장판으로 지냈고,
폐인 코스프레한 적은 없고,
냄비 안에는 김치찌개가 있고,
혼자 있다 보니 따로 덜어서 먹지 않고 냄비째로 데워서 먹고 있는거라고.
하우스 짓기는 처음 하는 일이라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 집에 돌아오면 씻고 밥 먹고 자기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고,
그래서 따로 집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혼자 사는 거라 이렇게 지내도 된다는 말로 그 동안의 일상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하며 말을 끝냈다.
나는 멀쩡한 남자도 2주 동안 아는 사람 없는 외딴곳에서 혼자 살다 보면 이렇게 폐인 모드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
그날 나는 남편에게 아이들과 함께 시골로 내려오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의 귀농생활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