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광암인 남자와 결혼했다.
3단계 수정 - 남아 있는 순에서 꽃이 피었고, 벌을 이용해 수정을 시작하였다. 자연에서는 자연스럽게 꽃에 벌이 날아들고 벌은 꿀을 가져가는 대신 꽃가루를 날라 다른 꽃을 수정을 시킨다.
하지만 하우스 안에는 벌들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수정을 위한 벌들을 데려왔다. 하우스 안에 벌들을 풀어주고 시간이 지나면 이 벌들이 알아서 수정을 시켜주는 것이다.
우리는 벌을 이용하였지만 일부 사람은 붓으로 일일이 꽃가루를 발라줘서 수정을 시켜주기도 했다.
예전에는 대부분이 붓으로 수정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힘이들어서 생각해 낸 방법이 벌을 이용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다.
수정된 꽃에서는 수박이 콩알만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미쳐 발견하지 못해 제거하지 못한 꽃들에게도 수박이 콩알 만하게 달렸다. 그럼 우리는 계획하지 않은 곳에 수정된 모든 수박을 또다시 제거했다.
마지막 단계 집중 – 이젠 남아있는 수박에 집중하는 단계다. 이 수박을 달고 맛있고 탐스럽게 커줘야지 우리는 게임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
상한 곳은 없는지 햇빛은 골고루 받는지, 영양분은 충분한지, 수분은 충분한지, 햇볕과 온도는 적당한지 모든 신경을 집중하여 이 남아있는 아이들을 키워낸다.
초록색과 검정 줄무늬가 잘 만들어지게 수박을 돌려가면서 햇볕을 쐬어 주는 작업도 절대로 빼먹어선 안되는 작업이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 하우스가 생기고 수박을 심고 이제 수박까지 열리다니…. 우리가 수박을 키워내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아침에는 덮어주었던 이불을 걷으며 수박에게 인사하고, 저녁이 되면 하우스에 다시 이불을 덮어주며 수박이 잘 자라길 바라며 하루를 마감했다.
고된 농사일 끝에 하우스 문을 닫으며 바라보는 노을은 아름다웠다.
세상의 모든 것이 평온했다.
힘이 드는데 어떻게 이 모든 것이 평온해 보일 수 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식물의 신비를 알아서일까? 그냥 그땐 그랬다. 내가 관심을 가진 만큼 건강하게 자라나는 수박이 그저 이쁘고 사랑스러웠다.
수박 농사를 계속 지었다면 일이 되어서 그런 생각이 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수박 농사는 그 한해로 끝이 났다.
수박은 수확을 두 번을 했다. 주위의 다른 하우스에 비해 크기가 작은 하우스, 그것도 처음 농사를 지은 것 치고는 꽤 잘 지은 편이었다. 잘 지은 편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키운 수박을 좋은 가격에 상인에게 팔았다는 뜻이다.
농사를 가르쳐주셨던 이장님을 포함에 주위의 모든 분이 축하해주셨고 내년에는 더 잘 지어보라고 격려해주셨다. 하지만 남편은 수박 농사를 마치고 생각이 많아졌다.
모든 농사는 대부분 부부가 함께한다. 수박 농사는 여자들이 하는 일의 비중이 높은편이라 더욱 부부가 함께해야 하는 농사였다.
농사짓는 내내 우리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건 여자분들의 모두 몸이 안 좋은 것, 그중에서도 특히 다리를 많이 아파하셨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가 짐작한 바로는 하우스 안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순을 따야 하는 작업이 무릎에 무리를 준 것 같았다. 수박 농사를 오래 지으면 나도 다리가 불편해지고 몸이 아파오려나?.
하지만 이건 단지 우리의 짐작일 뿐, 나는 크게 욕심부리지 않는다면 건강은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은 원해서 시골 생활을 시작했지만 나의 인생 계획에 농사는 없었다. 그걸 알고 있었던 남편은 농사일 때문에 나의 몸이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한가지 더 큰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셋째를 임신한 것이다.
처음 하는 농사일에 열중했던 나는 임신한 사실을 몰랐다.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상 증세는 가령 생리를 안 하는 것, 힘이 없는 것, 잦은 구토 등은 일이 힘들어서 그런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라 대수롭지 않게 넘긴 일이 임신이었다.
임신 5개월이 다 되어서야 임신한 사실을 알았고 임신한 몸으로 일을 했던 내가 남편은 안쓰러웠나 보다.
그래서 남편은 혼자 할 수 있는 농사가 없을까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힘들게 배운 농사를 겨우 1년 하고 포기하는 게 말이 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한번 생각해보라. 예전처럼 종신 직업이라 생각하고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이 자신에게 맞지 않거나 더 좋은 직장이 생기면 이직한다. 자기 일을 하고 싶어서 퇴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회사를 옮기고 일을 그만두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다른 농사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시골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신다. 수박 농사를 지으셨던 분은 수박 농사 외에는 다른 농사를 일절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달랐다.
수박 농사가 평생직업이 될 필요는 없었다. 물론 대가는 따랐다. 소소하것들도 많았지만 크게는 1년이라는 시간과 고철로 전락해버린 하우스 자재였다.
하지만, 그 아까움 때문에 몇 년을 더 끌고 간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시간이 지나서도 우리는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며 우리의 선택을 다시 고려해 볼 것이다.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수박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는 언제든지 내가 원하면 수박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성과였다.
이력서에 자격증이 하나 추가 된 것처럼 내 인생에 ‘수박 농사 짓기’ 라는 능력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안 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이 하나 생긴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수박 농사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농사, 벼농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