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근면, 성실을 무기로 벼농사에 도전

나는 방광암인 남자와 결혼했다.

by 쌀방언니

첫 수박 농사를 마치고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았는데,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모두 떠난 시골에 농사를 짓겠다며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모두가 한마음으로 반겼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내 자식처럼 농사에 대해 가르치다 보면 어느 날 그 젊은이들이 말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생겼다.

농사를 짓고 싶어서 내려왔지만, 막상 농사를 지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어서 포기한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심한 경우는 하우스 농사 도중에 그대로 야반도주하듯 다음 날부터 사라지는 때도 있었고 그럼 뒤처리는 그곳에 남아있는 마을 사람들 몫이었다.

이런 일을 여러 번 경험한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불신이 생겼고, 농사를 짓겠다고 내려온 사람들을 마냥 반겨줄 수 없는 마음이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힘든 수박 농사를 끝까지 지어 수확을 한 사람들 아닌가. 이런 우리를 어르신들은 대견하게 본 것이다.

어르신들의 친절 속에서 우리는 ‘도시에서 온 촌놈’의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

농사에 필요했던 경운기가 저렴하게 나와 마을 분의 소개로 샀더니, 며칠 뒤 경운기의 진짜 주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보니 돈을 빌려준 사람이 돈을 갚지 않자 돈 대신 경운기를 가져와 자신의 것이라며 우리에게 팔아버린 것이다.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어서 결국,

경운기를 엉뚱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사서 며칠 우리 집 앞에 세워 놓은 꼴이 되었다. 경운기를 소개한 분은 우리를 만날 때마다 미안하다 사과하셨고, 우리는 만날 때 마다 괜찮다는 말을 몇달 동안 했다.

우다리가 샀던 하우스 자재는 알고 보니 지금은 그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고철이라 고철값만 받고 처분했다.

그 외에도 소소한 일로 마음을 다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애썼다.

일일이 신경 쓰고 깔끔하게 해결하려 했다면, 우리도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도시로 달아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박 농사를 접었으니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것도 혼자서 할 수 있는 농사 말이다.

그러다 우리는 마을에 우리보다 2~3년 일찍 귀농한 부부를 알게 되었다.


결혼을 늦게 하여 나이는 우리보다 많았지만 두 자녀의 나이가 우리 아이들과 같았다. 육아라는 공통점에 엄마들은 금세 친해졌고, 마을에 귀농한 사람은 우리 두 부부 밖에 없었기에 남편들도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그분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조건으로 귀농을 하신 대농가셨다.

대농가란 벼농사를 아주 많이 짓는 사람을 말한다.


우선 아버님이 농사를 지을 수 있어 농사일을 전반적으로 가르쳐주며 도울 수 있었다.

자신이 소유한 땅도 많은데다 지인들의 땅까지 임대해서 농사를 짓고 있어 농사지을 땅도 많았다.

땅이 많으니 수입도 많아 별도로 다른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었다. 일손이 부족할 때는 아버님과 형님이 내려오셔서 농사일을 도왔다.


그분의 농사짓는 패턴을 살펴보니 바쁜 시기를 제외하고는 혼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딱 남편이 원하는 스타일의 농사였다.

남편은 벼농사를 배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농사일을 대행해 주는 영농법인회사에취직하게 되었다.

젊은 사람으로 이루어진 이 회사는 기계가 없거나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을 대신해 논을 갈아주고, 모를 심고, 수확까지 해주는 일을 했다. 벼농사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경력이 쌓이면 농기계 운전도 배울 수 있었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근면, 성실”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던 사람이라 무슨 일이든 자기 일처럼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하는 만큼 일을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일머리가 있는 남편을 사람들은 좋아했다.

회사는 농사 대행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벼농사를 지었고 다른 작물도 재배했다. 육묘장(모내기용 모를 키우는 곳)도 함께 운영하여 모두가 쉴틈없이 바빴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농사에는 시기가 있다. 벼농사도 예외는 아니다.

논을 갈아야 할 시기에 모두 논을 갈고, 벼를 심어야 하는 시기에 벼를 심고, 수확할 시기에 수확한다.

운영하는 사람은 적은데 규모는 큰 법인회사라 스케줄이 항상 꽉 차 있었다.

농부들은 자신의 논이 우선이 되기를 바랐고, 회사는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했기에 농민과의 마찰은 피할수가 없었다.

날씨에 따라 일정이 변경되는 변수가 많아 정해진 퇴근 시간도 없었다.


나는 그사이 셋째를 출산하여 아들 둘에 셋째는 딸인 행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키워줄 수 있을 때 아이를 낳으라는 말에 큰 고민 없이 두 아이를 낳았다. 내가 일하는 동안 아이는 엄마가 대신 키워주셨다. 엄마가 육아를 도와주어 주말과 밤에만 육아했었다.

아들 둘까지는 엄마 찬스를 썼지만, 나이 많으신 엄마에게 셋째까지는 도저히 부탁할 수 없어 출산과 동시에 나는 완전한 독박육아를 시작했다.

아이가 셋이어도 나는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니깐 당연히 잘 해내거라 생각했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그 생각이 틀렸음을 알아차는데는 몇일 걸리지 않았다.

온종일 아이를 돌보는 일이 이렇게나 힘든 일일 줄이야. 하나도 힘든데 나는 갑자기 셋을 맡게 되었으니..

퇴근 없는 육아에 나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남편은 새벽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일을 마쳤다.

경력 없이 배우면서 일을 하는 입장이라 월급은 적었다. 어찌 보면 돈을 주고 배워야 하는 일을 보수를 받고 하고 있었기에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 수입으로는 생활이 힘들었다.

그래서 남편은 더 이른 새벽에 콩나물 배달 일을 시작했다.


겨우 4시간만 자고 일을 하는 남편, 눈을 뜨고 눈을 감는 모든 순간을 오로지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나.

서로가 지쳐간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봐주지 못했다.

우리는 원하는 농사일을 배우고, 원하던 딸까지 얻은 복이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은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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