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광암인 남자와 결혼했다.
무사히 끝날 줄 알았던 정기검진에서 재발이라니, 벌써 몇 번째냐고.
인생이란 참 생각한대로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은 간단하게 끝났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과 나는 더 이상 이 ‘암’이라는 아이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 아이는 우리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언제든지 자신이 나오고 싶을 때 뛰쳐나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재발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삶의 종지부를 찍기로 한 것이다.
‘그래, 그냥 함께 가는거야.’ 암과 동행하는 삶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후 우리는 입밖으로 잘 내뱉지 않던 ‘암’ 이라는 단어를 별 거리낌없이 사용하게 되었다.
시골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물었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시골에 내려오게 됐어요?” 라고.
그럼 나는,
“남편이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고 해서요.” 라는 대답으로 시작해,
결국은 방광암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대화가 마무리된다.
'암' 이라는 한 단어에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움을 표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방광 빼고는 너무 건강해서.”라고 대화를 끝맺음했다.
우리는 시골에서의 삶이 점점 좋아졌다.
누구나 농사를 짓고 살면 농부가 되는 줄 아는데 농부라는 직업에도 자격이 있더라. 농사를 짓는 농부임을 증명해 주는 농업경영체등록확인증이 그것인데 이 확인증이 있어야 농부로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당장 받을 수 있는 혜택으로는 건강보험료 감면, 국민연금 보조금 지원등이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농사를 많이 짓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확인증이 없다면 사실상 농부가 아닌 것이다.
농업경영체등록확인증을 위한 요건은,
1. 1,000㎡ 이상의 농지에 농작물 재배
2. 농지에 660㎡ 이상의 채소·과실·화훼작물(임업용 제외) 재배
3. 농지에 330㎡ 이상의 고정식온실, 버섯재배사, 비닐하우스 시설을 설치하여 농작물 재배
어렵게 보이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증명할 수 있는 간단한 요건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는 그 문턱이 너무 높았다.
우리가 할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1번인데, 우리는 1,000㎡ 이상의 농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없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만한 땅을 임대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누가 우리를 어떻게 믿고 농지임대계약서를 써 준단 말이가.
마을 어르신들은 계약서 자체를 두려워하셨다. 우리는 1년이라는 긴 시간을 써서 겨우 조건에 맞는 땅 하나를 임대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직업란에 ‘농업’이라고 적고,
직업이 뭐에요? 물으면 ‘농부’입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농부가 되었다.
작은 땅 하나 임대하지 못해 끙끙댔던 1년이 농부로 살고 싶었던 우리에게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적극 도와준다. 목이 말라봤던 사람이 목 마른 사람의 심정을 가장 잘 아니깐.
4번째 수술 이후 우리는 원칙 하나를 세웠다.
‘저녁은 무조건 가족과 함께’.
이 원칙을 세운 첫 번째 이유는 당연히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고, 두 번째 이유는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세 번째 이유는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식사시간과 수면을 위해서였다.
‘무조건’이라는 조건이 붙어있기 때문에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이 원칙은 적용되었다.
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가끔 예외는 있을 수 있다. (가족 원칙인데 그정도 유도리는 있어야지.)
우선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 저녁시간에 맞춰 일을 마칠 수 있는지부터 알아왔다.
워낙 일이 많고 바쁜 곳이라 안될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지만 대답은 역시 안되었다.
우리는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다. 영농법인회사에서 일할 때 남편의 일하는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하셨던 분의 회사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같은 영농회사여서 하는 일은 비슷했지만 규모는 더 작고 유동성있게 일을 조절할 수 있었다.
남편은 빠른 속도로 일을 배워나갔다.
기계 다루는 것을 좋아해서 농기계도 몇 번 운전하고 금새 운전법을 익혔다.
새벽형인 남편은 일찍 출근하여 그날 할 일의 준비를 미리 끝냈고, 사장님이 출근하면 바로 일정을 소화했다.
새벽부터 일한다고 월급이 더 나오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남편의 스타일이었다.
준비된 채로 하루의 일을 시작하는걸 좋아했고 언제나 자신의 회사인 것처럼 일을 했다.
남편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농사 일을 무서운 속도로 익혀나갔다.
그 사이 우리는 땅을 임대해서 조금씩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늘렸다.
3년이라는 시간은 길고도 순식간에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