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리는 귀농인이다.

나는 방광암인 남자와 결혼했다.

by 쌀방언니

사람들은 흔히들 귀농귀촌을 한 단어처럼 생각하거나 ‘귀농’과 ‘귀촌’을 같은 뜻으로 생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같은 단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두 단어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귀농은 도시에서 살다 농촌으로 들어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람을 말하며, 농촌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었던 사람들을 말한다.


귀촌은 도시에 직장을 두고 주거와 생활권을 이주하는 경우,

농촌 출신의 사람이 시골로 내려와 사는 경우,

농촌에 살면서 농사 이외의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는 경우등을 말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농사로 수입을 내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귀농이라하고,

은퇴하여 공기 좋은 곳에서 텃밭 가꾸며 농사로 소득을 얻지 않는 삶을 귀촌이라고 한다.

우리는 농사로 수입을 만들어 생활해야 하는 귀농인인 것이다.


암과 동행하는 삶도 괜찮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삶도 좋았지만 5식구가 생활하기에 수입은 턱없이 부족했다. 농사를 많이 짓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월급이 많은것도 아니었다.

배울 것은 끝없이 많았고, 배우는 동안에는 수입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우리에게 늘어나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빚이었다.

마음은 풍족했지만 그 마음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했다.

우리는 차근차근 지금까지 배운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첫해 지었던 수박농사와, 3년동안 배운 벼농사, 수확한 벼를 쌀로 찧는 정미기술이었다.


수박농사는 더 이상 하기않기로 하고 하우스 자재를 모두 팔았으니 다시 시작하기에는 무리였다.

벼농사는 땅을 임대하기가 힘들어 농지가 늘어나는 속도가 느렸고, 그 느린만큼 수입도 느리게 늘어났다.

지금 일하는 영농회사에서 월급 인상을 제안할 수 있겠지만 그건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지금 회사에 남아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 끝에 회사에 제안을 하기로 했다.

회사에 남아 일을 하면서 우리의 수입도 올리는 방법, 그것은 회사 일 가운데 하나를 우리가 맡아서 하는 것이다.

영농회사는 벼를 쌀로 찧는 정미기를 가지고 있었다.

주된 일이 농사일이었고, 쌀을 찧는 일(도정)은 부수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지금처럼 계속 함께 일을 하면서 도정일을 자신이 맡아서 해보겠다고 제안했다.

정미기를 돈을 주고 살 형편이 안되니 일은 지금처럼 하고 대신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월급이 정미기 사용료인 셈인 것이다.


도정 수입은 별로 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맡아서 한다면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손이 없는 회사에도 이득이 되고, 우리에게도 이득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몇일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셨던 사장님은 며칠 뒤 우리의 제안을 거절했다.


처음엔 사장님의 거절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정말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했다. 그에 반해 도정 수입은 거의 없었다.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남편이 함께 일하는 것이 회사측에는 더 득이 될거라 나는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거절은 당연한 일이었다.

수입이 적든 많든 자신이 일구어 놓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점점 도정일이 많아지면 지금처럼 회사 일에 전념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이다.

많은 고심 끝에 사장님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의 수입으로는 생활이 힘든 상황이어서 뭐든 해야했다.

거절될 경우 남은 대안은 독립 밖에 없다 생각하고 제안한 거라 제발 ‘예스’라고 말해주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우리는 거절 통보를 받은 그날 우리의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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