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나의 비장의 무기를 꺼내다.

나는 방광암인 남자와 결혼했다.

by 쌀방언니

땅을 메우고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공장의 평수는 60평으로 정했고, 높이는 정미기의 높이를 감안하여 1.5층 정도의 높이로 설계했다.

무거운 나락(벼)를 들어야 함으로 호이스트로 함께 설치하기로 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남편은 언제든지 공사 현장에 갈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매여있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시골에 내려와서 일한 회사에서 남편을 찾아 주어 일용직처럼 일하며 경제적 활동을 이어나갔다.


공장은 축사를 지으시는 업체를 통해 진행하기로 했다.

축사와는 성격이 다른 공장이었지만 축사를 잘 지으시는 분이셨기에 우리는 일을 맡겨보기로 했다.

자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필요했다. 크게 분류한 자금은 계약서를 작성한대로 진행하고 대출을 실행하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일이 이 예산안에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잔잔하게 들어가는 돈이 의외로 많았다. 돈은 일을 진행하는 내내 쉴새없이 필요했다.


나는 필요한 돈을 구하지 못해 엄마에게 매번 손을 내밀었다. 유일하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엄마였다. 엄마는 우리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자식) 자식이 되어가고 있었기에, 있는거 없는거 다 끌어모아 정미소를 짓는데 힘을 보탰다.


일이 진행될 수록 대출은 대출대로, 돈은 돈대로, 마을 사람들의 민원은 민원대로.

이렇게 내 사업을 하는 것이 힘든 것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섣불리 시작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신중하게,

좀더 자금을 모아서,

좀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좀더 따져보고,

좀더 확신이 서면 그때 시작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런 생각을 한들 모든 것을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지 않는가.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는 것 밖에 달리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가끔 나는 힘에 부쳐서 버거웠던 이때를 떠올리곤 한다. '다시 돌아가간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하였을까?'

좀더 많이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겠지만 언제나 나의 선택은 같았다.

내 안에는 현실과 타협하며 그 삶에 수궁하며 사는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는 무언가가 꿈틀거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잦은 민원으로 공장을 짓는 일 뿐만 아니라 생활 자체가 힘들어졌다. 나는 반복되는 민원을 어떻게 해결할지부터 생각했다.

분명한 것은 이 정미소가 마을 분들에게 그리고 의령에 살고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커다란 미곡처리장(대형마트 격 정미소)에서는 개인의 쌀을 찧어주지 않는다.

농민들의 벼를 수매(사들이는 것)하여 자신의 브랜드의 쌀로 가공해 마트나 업체에 공급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벼는 찧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정미소는 개인의 벼를 찧어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집집마다 요즘은 거의 개인 정미기를 가지고 있어 수요가 없을 거라고 했지만, 우리의 생각은 달랐다.

집에서 찧는 쌀보다 더 깨끗하고 잘 도정된 쌀이 나온다면 그 뜸새를 차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벼를 찧으면 나오는 벼 껍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판매할 수도 있어 부수입도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비장의 무기를 꺼내기로 했다. ‘비장의 무기’이긴 한데 사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나는 잘 웃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사도 잘 하는 사람이다. 이 두가지가 다다.

나는 만나는 마을 어르신들은 물론 모든 분들에게 웃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하였다. 누구냐고 물으면 ‘저~~ 기서 정미소 짓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시골은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거의 모여 계셔서 마을회관 앞을 일부러 자주 지나다니며 할머니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였다. 논에서 일하고 계시는 사람들에게도 멀리 계셔서 들릴지 안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큰 소리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였다. 그렇게 나는 웃으며 나의 얼굴을 마을분들에게 알렸다.


남편은 나의 웃음소리를 좋아한다.

나의 남편이니깐 그렇게 말해주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해맑게 웃고, 또 내 웃음은 주위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고 한다. 가끔 카페에서 너무 큰소리로 박장대소를 하여 민폐 아닌 민폐를 끼칠때가 있지만, 그것말곤 나도 나의 이런 웃는 모습을 좋아한다.


청년창업농선정 브라인드 면접에서 “시골 사람들과 대립하지 않고 잘 어울릴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라는 물음에 나는 당당히,

“네, 있습니다. 그건 웃으면서 인사를 잘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이때를 떠올렸다.(이 면접에서 나는 합격했다.)

그렇게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했고, 마을분들은 서서히 우리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생각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삶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저마다 각자 살아온 생활방식과 환경이 다르니깐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이해되지 않을때가 있었다. 그럴때면 예전에는 어떻게서든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지금의 나는 애써 이해하려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은 본디 선하다.’라는 나의 신념을 바탕으로 그 사람을 웃으며 대할뿐이다. 그렇게 나는 내 앞에 있는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keyword
이전 17화17. 내 땅에 제발 공사 좀 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