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차리기만하면 대박나는 줄...

나는 방광암이 남자와 결혼했다.

by 쌀방언니

정미소는 추수를 하는 가을이 도정을 가장 많이 하는 계절이기에 제일 바쁘고 그만큼 수입도 많았다.

우리는 가을 시즌을 놓치지 않고 영업을 시작했다. 색체선별기의 입소문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많은 분들이 시험삼아 와 보셨다. 처음 사용하는 정미기가 익숙치가 않아 일하는 시간이 꽤 길었지만 재미있고 뿌듯했다. 늦은 시간까지 바쁘게 일하는 만큼 수입은 점점 늘었다.


수입이 늘어나니 힘들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그러나 아직 몸에 익숙하지 않은 일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다 보니 일이 자꾸만 미뤄졌다.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늦게까지 일을 하는데도 일을 다 끝내지 못해 다음날로 넘어가는 경우도 생겼다.

그날 들어온 일은 그날 마무리를 해야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바빴던 가을이 지나고 우리는 내년을 생각해 보았다.

내년은 올해보다는 익숙해져서 일은 빨리 처리할 수 있겠지만 고객도 더 많이 늘 것이다. 한번의 가을 시즌을 운영해보니 남편 혼자 정미소를 운영하기에는 너무 바빴다. 혼자서 일을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기는 힘들었다.

오랫동안 있던 정미소들 사이에서 살아 남는 길은 고객만족 그 하나 뿐이었기에 우리는 사람을 고용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을 고용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시동생이 떠올랐다.

시동생은 최근 회사 생활을 힘들어 했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 독립을 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시동생이 나을거라는 생각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시동생에게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을 전했다.


스타트업이라 몇년간은 힘들 수 있겠지만 형제이기에 잘 헤쳐나갈 수 있다 생각했다. 가을의 수입구조라면 충분히 월급을 줄 수 있었고, 가을이 지나 수입이 줄어들때는 농사를 늘리고 쌀판매로 수입을 늘린다면 크게 문제될 건 없어 보였다.

우리의 제안에 시동생은 동서와 의논 끝에 시골로 내려와 살기로 결정했다.


시동생이 내려오면서 우리는 일의 분업화를 시작했다.

사무실은 내가, 남편은 농사, 시동생은 정미소 일을 주업무로 맡았다. 각자 맡은 업무가 있었지만 가을 시즌때는 정미소를 남편과 시동생이 함께 운영했고, 농사철이 되면 시동생이 농사에 동원되었다.


추수를 하고 구정이 오기전 3개월 정도는 눈코뜰새없이 정미소가 바빴다. 그 기간이 지나면 정미소의 수입은 70~80%정도가 줄었다.

이젠 두 가족이 먹고 살아야했기에 남편은 정미소를 시동생에게 맡기고 농지를 구하고 쌀 판매할 곳을 찾아 영업을 시작했다.

농지는 처음 우리가 농사를 지을때와 마찬가지로 구하기가 힘들었다. 조금씩 늘어나기는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 곳에서 나는 벼로는 수입이 턱없이 모자랐다.


우리는 계획을 변경하여 쌀을 소매로만 파는 것이 아니라 도매로도 판매하기로 했다.

직접 농사 지은 쌀은 소매로, 다른 농부들에게 사들인 벼들은 도매로 판매를 계획했다. 남편은 열심히 영업을 했고 샘플 쌀을 보내어 드디어 도매 거래처 몇군데와 거래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정미소를 차리기만 하면 대박나는 줄 알았다. 완공된 정미소에서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거래처는 우리의 쌀에 만족했다. 주문량은 늘어났다.

그럼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우리는 가진 자본이 많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사람의 벼를 구입하려면 돈을 지불하고 벼를 가지고 와야한다. 우리는 여유자금이 별로 없었기에 돈을 바로 지불할 수가 없었다. 후불 결제로는 벼를 싼 값에 살수는 없는 법.

결국은 벼를 비싼 가격에 사서 싼 가격의 쌀로 판매하는 꼴이 되었다. 주문이 많으면 많을수록 남는 것은 적고 일만 많아졌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어렵게 성사시킨 거래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어려운 고비만 넘기면 안정을 찾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새로운 수입을 만들기 위해 볕짚을 운반하는 일자리를 구했고, 정미소는 온전히 나와 시동생에게 맡겨졌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해야만했다. 다른 모든 일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농사를 지어야했기에 이동 수단인 1톤 트럭을 한 대 더 샀고, 늘어난 농지의 경작을 위해 농기계 트렉터와 이앙기를 구입했다. 볕집 운반을 위해 5톤 트럭도 중고로 구입했다.

돈은 모일 틈없이 벌면 투자금으로 모두 빠져나갔다.


밖에서 본 우리 정미소는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정미소는 입소문이 나서 가을철에는 줄을 서서 도정을 했고, 없던 농기계가 순차적으로 하나씩 생겼다. 일하는 직원(시동생)도 있고, 차는 트럭만 3대고, 대량으로 쌀도 판매하고 있으니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성공궤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실태는 정반대였다.

무리해서 구입한 농기계, 무분별하게 시작한 새로운 일에 대한 투자,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한 사업은 우리를 점점 진흙탕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힘들게 차렸고 열심히 하니 다 잘될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사업에 대한 무지의 대가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손익분기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수지타산은 맞아야만 했다.


죽어라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이 우리의 계획대로 흘러갈꺼라 생각했다. 정미소를 지을 때 계획대로 진행된 것이 없어 그토록 힘겨워했건만, 그것을 이렇게도 쉽게 망각하다니.

어. 리. 석. 다.

이대로는 안되었다. 또다시 우리는 돌파구를 찾아야만했다.

그래야 두 가족이 모두 시골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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