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광암이 남자와 결혼했다.
사람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벼로 팔면 수입이 적었던 벼농사를 쌀로 가공해서 판매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쌀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
바로 한번 더 가공을 하는 것이다.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 쌀과자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리집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씹지 않고 입안에서 사르르르 녹는 쌀로 된 과자를 간식으로 자주 먹였다. 시중에는 유아를 위한 쌀과자 제품이 많았고, 우리는 여러 종류를 먹여보고 그 중에서 아이가 잘 먹는 것을 선택해 한동안 먹였다.
쌀과자를 만들 생각을 하니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은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큰 시장에 발을 들인다면 명함을 내밀어 보기도 전에 사라질 것 같았다.
유아 시장은 안되니, 우리는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쌀과자를 만들어 보기로했다. 뻥튀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쌀과자를 만들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 아이디어가 나왔으니 이제는 어떻게 쌀과자를 만드냐는 것이다.
나는 다시 농업기술센터를 찾았다.
센터를 방문해 농사 짓은 쌀을 이용하여 쌀과자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지를 물었다.
시기가 잘 맞아 신청을 받고 있는 지원사업이 몇 개 있었고 그 중에서 내가 할 사업과 맞는 지원사업을 찾았다. 가공식품 지원사업이었다.
우리가 처음 정미소를 지을 때 귀농귀촌자금을 받기 위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사용처를 작성하여 서류 심사를 받은 걸 기억할 것이다.
이번에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서류 심사에 통과하면 면접을 보고 최종적으로 선정이 되면 지원금 받아 가공식품(쌀과자)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 지원사업이 있으니 이제는 사업계획서 작성이다.
사업계획서 그게 별거냐? 할 수 있겠지만, 나는 한번도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본 적이 없다. 몇일을 고심하며 자료를 찾아보아도 앞이 막막하기만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이건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우리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젊은 농부들이 모이는 '4-H연합회' 라는 모임에 가입했었다. 전국적인 모임으로 우리는 '의령군' 모임의 회원이었다. 젊은 농부들은 대부분 이 모임에 가입하여 서로 정보를 공유했다.
나는 모임을 통해 알게 된 메론 농사를 짓는 젊은 농부에게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다.
메론 농부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고, 본인이 쓴 사업계획서를 보여 달라 요청했다.
그분은 흔쾌히 본인이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내어주었고, 나는 그 사업계획서를 샘플 삼아 나의 사업에 맞춰 계획서 작성을 시작했다.
지원 사업계획서는,
쌀과자 생산 공간, 쌀 기계 구입, 쌀과자 만드는 방법, 쌀과자 유통 경로, 홍보방법, 세부적인 진행 계획, 자금 사용 예산 계획, 이 사업에 대한 기대효과, 쌀과자를 만드는 목적, 내 사업장과의 연계성, 식품을 쌀과자로 선택한 이유, 이 사업이 앞으로 가져올 예상 수입, 앞으로 1년, 3년 5년 장기적인 계획안등 으로 구성되었다.
그래,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있어.
자료를 찾고, 정보를 얻고, 전화를 하고, 직접 확인하고, 다른 사례들을 찾아보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면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나갔다.
정해진 지원금에서 70%는 지원해주고, 30%는 자부담(자신이 부담하는 금액)으로 해야 하는 사업이었다. 70%가 어디인가?
나는 사진과 통계와 자료들을 모두 끌어모아 나름 괜찮은 사업계획서를 처음으로 완성했다.
이후, 나는 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정미소를 지을때처럼 업체를 알아보고 하나씩 해 나가기 시작했다.
가공 공장은 정미소 안의 한 부분을 즉석제조가공실로 만들었다.
수많은 테스트를 통해 2가지 버전의 쌀과자를 만들었다.
첨과물 없는 백미 100% 쌀과자와, 현미80% 백미 20%인 현미 쌀과자를 출시했다.
첨가물이 없이 ONLY 쌀로만 만들었다는 것과 내가 직접 농사지은 쌀로 만든 쌀과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판매를 시작했다. 판매는 온, 오프라인 동시에 진행했다. 나갈 수 있는 프리마켓은 모두 참석하고, 육아카페에서 열리는 정기모임에도 쌀과자를 들고 나가서 판매했다. 블로그도 작성하고 지역행사에도 참석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쌀과 함께 쌀과자도 홍보했다. 이벤트도 하고 갈수 있는 곳은 어디든 갔다.
부르는 곳은 어디든 가고, 또 불러주지 않는 곳은 찾아서 갔다.
그러다보니 이제 해외까지 나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