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쌀과자 들고 LA로 출동

나는 방광암인 남자와 결혼했다.

by 쌀방언니

어디든 판매할 곳이 있으면 찾아 다녔던 우리에게 어느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걸려온 전화 한통.

남편과 나는 센터도 달려갔다. 우리가 달려간 부서는 수출관련부서였다.


“무슨일이신가요?”

“저기, 이번에 LA에서 열리는 한인문화행사에 총 5팀이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한 업체가 갈 수 없게 되어서 혹시 함께 가실 수 있는지 여쭤보려고 연락 드렸습니다. ”

“LA요? 이렇게 갑자기?”

“네, 갑자기라 놀라셨죠. 직원들이 의논한 끝에 요즘 쌀과자 판매도 열심히시고, 실적도 좋아서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떻게 해야할지...”

“해마다 참여하는 한인문화행사인데, 행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장터처럼 식품관련부서들이 설치됩니다. 거기서 쌀과자를 판매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좀 더 설명을 들은 후 망설이지 않고 바로 “YES” 라고 대답했다.

한번도 미국이라는 곳에 가본적이 없으니 설레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그렇지만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쌀과자를 판매할 수 있는 부서와 LA에 갈 수 있는 기회, 그리고 판매수입까지 생기니 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다만, 비행기 경비는 한 사람만 지원이 되어서 부부가 가게 되면 한사람은 자신의 경비를 오롯히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를 LA에 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되지 못했다.


쌀가자는 항공편을 이용해 미리 LA로 보내야 했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다른 팀들은 참석한 경험이 있어 미리미리 상품을 준비했는데, 우리는 다른 팀 대타?로 급하게 참석하는거라 모르는 것도 많고, 준비할 것도 많았다.


가장 중요한 여권을 만든 후 LA에 보낼 쌀과자 만들기에 돌입했다.

쌀과자를 보내야하는 날이 얼만 남지 않아 우리는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쌀과자 만들기에 몰입했다. 쌀과자를 담을 박스를 급하게 제작하고, 수출하는 물건들이라 표기도 정확하게 작성해야했다. LA까지 무사히 도착해야했기에 포장에 더욱 신경을 썼다.

남편과 시동생이 쌀과자를 만드는 동안 나는 콘테이너에 싣을 때 필요한 서류를 처리했다.


단순하게 쌀과자를 LA에 가지고 가서 판매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내 뇌는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이든 너무 간단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반면에 그 다음 과정은 전쟁같다.

기한은 정해져 있고 하기로 했으니 해내야하고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져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미친 듯이 신속하게 함축적으로 일을 처리해 나갔다.


연계된 에이전시를 통해 많은 양의 쌀과자를 무사히 LA로 보내는 콘테이너에 싣고, 나는 남편과 미국으로 갈 준비를 했다.

비행시간은 어마무시하게 길었고 (비지니스석 아니면 두번 다시 미국은 못가겠구나~ 생각할 정도), 입국심사때는 어찌나 떨었던지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겨우겨우 통과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걸어서 행사까지 이동했다.

행사장으로 가는 길은 분명 미국 LA였는데 행사장 안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실내 행사가 아닌 야외 행사여서 부스가 야외에 차려져 있었다. 각 군에서 많은 업체들이 자신들만의 제품을 가지고 행사에 참석했다.


나는 우리 업체의 이름이 적힌 부스를 찾았다. 우리가 미리 보낸 제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가지고 간 소품들을 이용하여 팝업스토어를 꾸몄다.

지역 축제 같은 느낌이라 화려하게 꾸밀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준비해간 현수막을 걸고, 가격표를 설치하고 쌀과자를 테이블에 진열하는 정도로 부스 꾸미기를 마쳤다. 시식할 수 있는 샘플도 준비했다.


야외 무대에서 여러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부스에서 자신의 제품을 판매했다.

LA한인행사라 한국분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외국인들이 많았다. 한가했던 오전이 오후가 되니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우리 부스에 와서 무엇이냐고 물으면 엉성한 몸짓과 되지도 않는 몇 마디 단어로 “라이스 스낵” 이라고 말하며 고객을 맞았다.

처음에는 짧은 언어와 외국인을 상대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재미있었다.

어떤 맛인지 궁금해 하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는 시식을 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외국인들은 곤란해하며 시식을 거부했다.


한국에서는 '무료 시식'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미국은 '공짜는 없다' 라는 인식이 있어 '무료 시식'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우리는 돈은 안내도 된다고 '무료'라고 말을 하며 시식을 권했다.


우리는 신나게 쌀과자를 판매했다.

부스에는 한국인과 외국인으로 북적북적했다. 경험삼아 참석한 거라 가격을 저렴하게 측정했더니 행사장을 둘러보면서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먹기에 간편하고 맛이 고소해서 사람들이 좋아했다.


중간중간 손님이 없을땐 잠시 쉬기도 하고, 다른 부스에 가서 이야기도 나무며 하루를 마감했다.

미국이 처음인 나는 총기 소지가 가능한 이 나라가 무서워서 일을 마치고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는데도 무섭고 긴장되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숨을 죽이고 걸었었다. 외국인에게 쌀과자를 만매하는 것보다 밤거리를 걷는게 백배는 더 무서웠으니 지금 생각하면 나는 참 촌스러웠다.


다음날에도 우리 부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나는 신나게 쌀과자를 판매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만들어온 쌀과자를 사 가는 것도 신기했고, 맛있게 먹는 것도 신기했다. 어제 오셨던 손님이 다시 와서 쌀과자를 찾을 땐 고마운 마음에 더 신이 났다.

우리는 들고간 모든 제품을 완판했다. 그것도 재미나고 신나게.


쌀과자를 판매하느라 행사는 구경하지 못했지만, 근처의 맛있는 레스토랑에 찾아가서 주문하고 밥먹기, 마트가서 먹고 싶은 것 사 먹기, 미국 거리 걷기, 이름은 기억이나지 않지만 유명한 바다에 가서 바다 보고 해변가 산책하기, 바다보며 맛있는 것 먹기, MOU체결까지 처음치고는 많은 경험을 했다.

떨림과 걱정,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찾은 LA에서 값진 경험과 신선한 충격, 잊지못할 추억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한동안 우리는 쌀과자를 미국에 수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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