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광암인 남자와 결혼했다.
우리는 지쳐갔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인지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눠도 오가는 단어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들 뿐이었다.
더 좋아질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모든 일들이 우리를 더 악조건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때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원인이 다른 곳에 있기에 그 원인을 찾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각자의 생각만 많아진 나날들을 지나다 나는 드디어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우리는 지금 밑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어.
바닥이 깨져서 아무리 물을 불어도 물이 채워지지 않는 독에 미련하게 계속 물을 붓고 있다고. 이대로는 안되겠어.”
남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삶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고, 뭔가를 시작하면 할수록 빚은 늘고 숨통은 점점 조여왔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모든 일에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잘못은 없다고 생각했다. 각자 열심히 했기에 서로에 대한 원망도 없었다.
결국 우린 잘못한게 없으니,
그 모든 탓은 세상탓, 환경탓, 타인의 탓으로 돌아갔다.
나의 잘못 하나 없이 모든 것이 남탓이 되면 편할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패배감과 그 허무함은 사람을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이 상황만 지나가면 모든 일이 잘 될꺼라는 낙천적인 마음’만으로 살았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때마다 우리 삶은 더 나아질 것이라며 희망적인 말만 했었다.
하지만, 잘 되기 위해서는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했다.
우리는 생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금새 포기했다. 포기해야할때를 알고 포기하는 것이 그때는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더 많이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 문제들을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해결해 나아가야 했다. 그것이 사업이라는 것이다.
남편은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 이상을 하려해도 신체의 한계를 느낄만큼 최선을 다했다. 쉬지않고 일하기에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마음속에 이미 그어놓고 있었다. 이 이상 우리의 삶은 개선되지 않는다고.
상황이 힘든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굳이 자신의 힘듦을 내색하지 않았다. 각자의 방식대로 힘듦을 껴안고 자기안에서 곪아가고 있었다.
나는 점점 웃음이 사라졌고 삶이 즐겁지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은 이대로 삶을 끝냈음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한다.
나는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출발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어야만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우리의 정미소는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도전한 여러 사업에 나는 실수를 인정하긴 했지만 진정으로 실패를 인정한 적은 없었다.
나는 뼈속 깊은 곳 까지 우리의 선택들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시간은 처절하고 외롭고 비참했지만 그 시간 없이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후회의 시간과 함께 나는 혼자서 참 많이 울었다.
다음으로 내가 한 행동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되짚어보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남 탓이 아닌 내 탓으로 모든 일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더 이상 정미소에는 투자하지 않을거야. 더 이상 투자는 없어. 정미소는 지금 모습 그대로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자.
여보는 앞으로 정미소에만 집중해. 여기서 최대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봐.
나는 따로 내 일을 할 거야.
그 일이 지금은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독립적으로 내 수입을 만들어 볼게.
각자 각자의 수입원을 만들어 보는거야.
나는 이제 더 이상 정미소에는 관여하지 않을테니 여보가 알아서 꾸려나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