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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달팽이 haru Dec 14. 2023

회상

7. 러브레터처럼








"혹시 근처에 갈만 한 곳 있어요?"


"어떤 종류요?"


"종류?"


"아 그...러니까 쇼핑 목적, 아님 사진 찍는 스폿? 뭐 그런 거 있잖아요?"


"흠.... 그냥 들어가긴 아쉬우니까..."


그리고 한참 동안 유정은 말을 잇지 않았다.

뜨끈한 우동에서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그냥 들어가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재욱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한복판의 멋들어진 야경이 보이는 남산타워라던가 세련된 가로수 길 같은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니


'보통 데이트라면 밥 먹고 무얼 해야 하지?'

'데이트' 재욱은 별안간 떠오른 데이트라는 말에 갑자기 낯 뜨거워졌다. 

'아 내가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야~옹"


둘이 앉은자리에는 작은 창 하나가 있었는데 그 너머로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소복이 쌓인 하얀 눈 위를 마치 이불 속인 것처럼 뒹굴고 있었다.

유정은 그것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럴 때 있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싶을 때?"


유정의 시선이 가는 곳을 따라 재욱도 밖을 쳐다보았다.

아기 고양이가 여전히 바닥을 뒹굴며 야옹 거리고 있었다.

무심결에 재욱은 그 모습을 보고 훗 하고 웃었다.


"어. 지금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하다고 느꼈죠?"


"지금?"


"응! 지금"


재욱은 자신을 응시하며 생긋 웃고 있는 그녀를 한참을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이 여자는.

여전히 아리송하고 의아한 느낌이 들었지만 유정의 말에 쉽게 대답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흠... 솔직히 말하면..."


"솔직히 말하면?"


되돌림표인 듯 유정은 재욱의 말을 되짚었다.


"유정 씨 앞에서 아무 생각이 없진 않고... 누군가와 같이 맛있는 거 먹고.. 뭐 이만하면 행복하죠"


"............"


재욱은 순간 말실수를 한건 아닌지 자신이 한 말을 다시 되내어 봤다.


'딱히 실수한 건 없는 것 같은데'


"혹시 펜 하고 종이 있어요?"


"응? 갑자기? 아.. 음.."


재욱은 주위를 한번 두리번거리다 가게 사장님에게 다가가 종이와 펜을 빌려 왔다.


"이런 거면 돼요?"

유정은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펜과 종이를 받아 들었다.


"아~ 주 좋아요"


"갑자기 이건 왜요?"


"영화 러브레터 봤죠?"


"봤죠"


"내용 기억나요?"


"흠.. 딱히?"


"치.. 뭐야... 여 주인공 얼굴만 봤네 "


"아니거든요~"


"뭐~ 영화 따라 해보려는 건 아니고"


"재욱 씨가 알려준 장소에 내가 이걸 숨겨 놓으려고요. 아닌가 묻어두는 건가? 힛"


갑자기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을 하고서 순수한 웃음을 던지는 유정이었다.


"네? 뭐 보물찾기 그런 거예요?"


" 내가 그쪽한테 편지를 좀 쓸까 해서 나중에 나... 가고 난 다음에? 찾아봐요 "


"못 찾으면요?"


"뭐.. 못 보는 거지. 내 러브레터를 "


'?!'

이 여자는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재욱은 귀를 의심했다.


"러... 뭐요??"


유정은 재욱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갔다.


"앗! 보지 마요~! 지금 보면 안 돼"


"근데... 눈 속에 넣어두면 다 젖을 텐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해요 걱정 마시라고"


재욱은 유정이 팔을 내두르며 재욱이 보려 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밖에는 여전히 소복소복 눈이 내리고 있었고 따듯한 우동은 그새 식어가고있었다.

밖의 풍경이 점점 어스름 해지고 있을 때였다.


"자자!~ 디저트 나왔어요~"

가게 사장이 예쁘고 아기자기한 바나나푸딩을 가지고 나왔다.


"와~~~ 너무 이쁘다!! 소 큐트!!! 사장님 최고예요~"

유정이 글을 쓰다가 바나나푸딩을 보고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조금 전까지 분명 뭔가 생각이 많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던 유정이었다.

재욱은 유정의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녀가 무엇 때문에 

혼자서 아무 생각 없이 기분이 좋아질 곳을 찾는지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건 현재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의미하니까.

재욱도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하지만 그건 분명하게 느꼈다. 유정도 재욱과 있는 것이 싫지만은 않다는 것.


'러브레터라니...갑자기 훅 들어오네'


하지만 재욱의 얼굴에 어렴풋이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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