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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달팽이 haru Dec 08. 2023

회상

6 미운오리새끼


23살 유정의 23번째 겨울


어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였다. 아침 일찍 6시에 일어났고 따스한 햇살을 맞이했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더 차가운 기온을 느꼈다.

여자 기숙사에서 학교 안 발레 강당 까지는 조금 멀었다. 정돈되지 않은 정원을 한참 거닐고 장미꽃 터널을 두 개 지나야지 다다랐다.

깊은 숲 속에 자리 잡은 그곳은 마치 마녀의 집처럼 보였다.

선택된 자 이외에는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듯, 가는 길에는 가시덩굴이 가득했고 5월이 되면 장미로 뒤덮여 있었다. 겨울에는 앙상한 가시 덩굴이 가득 에워져 으스스한 느낌까지 들었다.

나는 그곳을 매일 가야 했다.


장미가시로 뒤덮인 문 앞에 서서 나는 숨을 크게 한번 내쉬었다.

입김이 후 하고 나왔다.


나는 8살 때부터 발레를 했다. 그리고 그게 지금은 내 특기이면서 내가 해야 하는 숙명 같은 것이 되었다.

내 동생도 나를 따라 발레를 했지만 고등학생 때였나. 갑자기 진로를 바꾼다고 하더니 발레를 턱 하니 그만두었다.


하루아침에 말이다.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걸 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맞다. 나는 그렇게 발레라는 것을 잡아두고 놓아주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란~ 딴딴. 고지식한 클래식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업~ 다운~ 업~ 다운"


"뭐 해? 안 들어가고?"

내  절친인 지혜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나를 보고 의아한 눈빛을 했다.

눈앞이 어질 한 느낌이 들었지만 친구의 목소리에 잠에서 다시 깬 듯이 정신이 차려졌다.


"아.. 잠깐... 멍했어"

"갑자기?"

"엉.."

"뭐야~~ 잠 깨라~~ 오늘부터 특훈 이랬어~ 교수님 말씀 기억나지?"

"하..... "

"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혜는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교수의 눈빛을 보았는지 나를 앞으로 죽 밀어냈다.


온화한 조명과 은은하게 울리는 피아노 소리

내가 마치 호수가의 백조 한 마리가 된 것처럼 나는 우아한 몸짓을 한다.

사실은 애써 버티고 있는 오리새끼인데도...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한유정! 정신 못 차려!"

날카로운 굉음처럼 여 교수의 목소리가 내리 꽃았다


"아! 악!!!!!!!!!!!"


내 발목은 반대로 꺾여있었다. 주위는 흐리멍텅 해졌고 난 물속에 잠긴 듯 그렇게 꺼져갔다.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지만 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깊은 호수바닥으로 꺼져가는 듯했다.


난...



"네가 제정신이었다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지!"

천둥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내 다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지도 않으셨다.

그저 내가 발레를 못하게 됐다는 사실에 화를 내었다.


실로 망연 자실 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인데 말이다.


"후련해...."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와 버렸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어머니의 호통소리가 병실 밖까지 흘러나가 밖에서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후련하다고..... 못하게 되니 후련해 너무"


"하...... 이 못난 것!"


그 말을 남기고 어머니는 병실을 나가버렸다. 

아버지와 이혼하고 나서 나와 내 동생을 혼자 키우시며 희망이라곤 없는 분이었다. 

다만 내가 발레로 성공할 거라 생각하셨고 우리를 키워주신 할머니에게 효도하며 그렇게 자식 노릇 하며 살 줄 아셨을 거다. 

어렸을 적부터 시작 한 발레였고 나는 여러 번 국내 대회에서 각종 상을 타며 국립 발레 예술단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서든 이것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사고가 나서든 어쨌든 그만두게 돼서 속 시원하다는 그 속내는 아니 그 말은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피가 철철 나도록 나는 내 손을 쥐어뜯었다. 이깟 상처 하나 더 난다고 내 인생에서 내가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닐 텐데...


물위에 둥둥 떠서..하지만 물속에서 수없이 발버둥 치고있는 백조가 아닌 오리새끼였다.. 




"유정 씨?"


유정은 자신이 잠깐 멍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앞에 앉아있는 재욱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유정을 바라보았다.


"아~!! 진짜 맛있어 보여서 와 순간 멍 때렸네요! 하하"


"아.. 뭐야..."


"진짜 오랜만에 본 것 같아서 와~ 이 탱탱한 면발~~ 오우~"


"흠.... 괜찮은 것 맞죠?"


"아~ 진짜 괜찮아요! 가끔 멍 때려요 왜 그럴 때 없나? 순간정지 같은?"


"글.. 세요?"

재욱은 걱정 스런 얼굴로 유정을 다시 빤히 쳐다보았다.

유정은 재욱이 자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느껴 훗 하고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재욱도 다시 훗 하고 웃었다.

그런 재욱을 보고 유정은 왠지 싫지 않았다.


'날 계속 보고 있었던 건가?'


유정은 우동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코 끝을 찡긋 했다.


"와.. 진짜 살겠다. 우동으로 힐링되다니."


"인생 뭐 별거 없죠? 소소한 행복만으로도 살만 하잖아요?"


"오우.. 뭐야 이 어르신 멘트는?"


"흠.. 한 삼백 년 정도는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재욱의 농담에 유정은 정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웃자고요~~~ 웃자고~~ 아까부터 유정 씨 표정이...."


유정은 재욱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재욱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었다.


"뭐.. 암튼 어서 먹어요~ 여기 디저트도 끝내줘요~"


"와우~~ 디저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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