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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달팽이 haru Dec 22. 2023

회상

8. 도망치고 싶지만


2011년 3월 11일

일본


쾅쾅쾅!!! 펑!!


알 수 없는 굉음이 주위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소란스럽게 뛰어다니며 몸을 피했고 주위는 고함소리로 가득했다.


"It's over there!!! It's that building!"


백인의 한 중년 남자가 무너지고 있는 높은 빌딩을 가리켰다.


"Oh my god! Oh my god! "


”信じられない!”


"早く!逃げろ!"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망을 치면서도 무너져가는 건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잿가루와 시멘트 가루가 사방에 흩날리고 성난 불길은 높은 건물을 순식간에 휘어 감쌌다.

검은 화마가 옆의 빌딩까지 집어삼킬 기세로 거세게 들이닥쳤다.

땅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고 온 세계가 화마에 쌓여 사람들은 뒤엉켜 도망가기 바빴다.

앰뷸런스 소리가 가득 한 도쿄 중앙지구 병원 앞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여있었다.

다친 사람들이 가득했고 절규와 고함소리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형~!!! 형!!!!"


21살의 재욱

나는 형과 함께 미국 유학 중이었다. 형의 졸업 전 마지막 방학, 일본 곳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대학 졸업을 하면 바빠질 테니 그전에  어렸을 적 추억이 담긴 일본으로 간 여행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헉헉 하는 소리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I'm looking for my brother! 아 아니...兄貴を探してます! 彼は韓国人です!”

"he's Korean. he's about 187cm tall!  His name is.....하아..하아.. だから 身長が"

나는 가빠르게 숨을 들이켰다. 혼란한 상태에서 영어와 일본어가 마구 뒤엉켜 쏟아져 나왔다.

엉망진창인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형을 찾아야 했다.


 다친 사람들로 가득해 아비규한이 돼있는 응급실에서 형을 찾으면서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 大丈夫ですか!?"


의사로 보이는 한 일본남자가 정신이 혼미해져 털썩 주저앉아있는 나를 발견해 다가왔다.

숨이 가빴지만 의사 손을 붙잡았다.


"I'm looking for my brother!"


"あ、日本人じゃないんだ。are you Korean? right? There's one over there"


난 이윽고 정신을 차려 의사가 팔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멀리서 보이는 실루엣이었지만 그는 확신했다.


'형!?'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순식간에 모든 게 지나갔다. 싸늘히 죽어있는 형의 시신. 울부짖는 가족들.

그 속에서 모든 걸 상실한 듯한 눈으로 형의 주검을 봐야 하는  자신.

그렇게 알 수 없는 자연재해로 하나뿐인 형을 잃었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울부짖으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지만  시간은 그때 그 자리에 멈춘 듯했다.


19살의 형과 18살의 나, 둘도 없는 친구였다.

걱정을 한가득 안고 유학길에 올랐지만 형이 있어 든든했다. 형과 함께였기에 이겨 낼 수 있었다.

 그 모든 걸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형이 옆에 있어서였다.


"나 혼자... 어쩌라고.... 형.. 흐흑...."


눈물을 훔치는 내 손에는 그때 상처가 남아있었다. 사고가 있었던 날 형과 떨어져 있었다.


"진짜 안나갈거야?"

"더 잘래...여행인데 좀 여유롭게 하자 응?"


형에게 투정을 부리며 침대에서 뒤척거렸다.


"으이고~ 그러게 못하는 술을 왜그리 마셔. 너 좋아하는 베이글이랑 커피 사가지고 올게. 좀더 자"

언제나 상냥하고 따듯한 형이었다.


"땡큐~~횽아~~"


나는 그런 형을 너무도 사랑했다. 친구이자 유일한 내 형제. 형은 내게 있어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날 그아침..

잠을 더 잔다고 호텔에서 뒤적거리지 않아야 했다. 혼자 나서는 형을 따라나서야 했었다.


무너져 있는 빌딩. 어질러져있는 잔재 속을 파해 쳤다.


"제발 여기 있지 마라 제발!"


형을 사고 현장에서 보지 않았으면 하고 백번 천 번을 빌었다.

하지만...


"형이 그렇게 된 데는 너의 책임은 없다. 자책하지 말어. 자연재해다. 재앙이야. 그 속에서 살아남은 너라도 있어 다행이다 생각해.."


싸늘한 그 말이.. 아버지의 말이 너무나 모질게 나의 심장을 찔렀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이라니.... 잔인하잖아."


"너는 니 할 일 하고 졸업하고 한국으로 바로 들어와. 아버지 도와라. 이제 너밖에... 남은 게 없으니"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2011년 3월 , 일본의 도쿄 한복판에서 후쿠시마 발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봄이 아닌 다시 추운 겨울 어느 날로 되어 버린 그 해였다.



조용한 우동가게 안.

둘은 디저트와 함께 나온 따듯한 찻잔에 손을 갖다 대었다.

재욱이 손에 있는 상처를  만지작 거렸다.

유정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발견했다.


"그 상처는 뭐예요?"


그녀가 또 천진난만한 얼굴로 재욱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이건..."


유정은 가만히 기다리다 재욱의 눈치를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 봐요. 팔에 여기 나 엄청 큰 상처 있어. 8살 때였나.. 엄마한테 발레 하겠다고 떼쓰다가

흠... 집에서 뛰쳐나가서 문방구 쪽으로 달려 나갔어요. 그때 오토바이가 와서 빵~

그때 나 죽을 뻔했잖아요. 근데 이렇게 상처만 남고 끝난 거예요. 다행히"


조잘 대며 말을 이어가는 유정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 재욱이었다.


"그리고 여기 잘 안보이긴 하는데 귀 뒤쪽에도 작은 상처. 흠.. 그리고 다리에도 상처... 가 하나 있고.."


"누가 누가 상처가 많은지 배틀하자는 거예요?"


"배틀? 하하.. 재밌다.. 그러네... 나 상처 많다고 자랑 중이었네"


"난 이거 손에 있는 상처 이거 하나 에요. 근데 이게... 너무 크게 남았어."


"크구나.... 근데 사람은 다 상처가 하나 두 개쯤은 있더라고요... 근데 그거 안 지웠네요? 너무 잘 보여서 지우고 싶었을 것 같은데"


"안 잊을 려고요. "


"뭘요?"

유정은 또 해맑게 물었다.

재욱이 머뭇거리다 이내 입을 뗐다.


"상처 난 이유?"


"흠.... 상처 난 이유 생각하면 계속 아프지 않아요? 그 아픈 데가 자꾸 쿡쿡 쑤시는 것 같고."


"흠... 생각해도 아프지 않을 때까지 놔두려고요"


"와.. 자학 수준인데?"


"그런가?"


둘은 눈을 마주쳤다.

유정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나한테 잘 있냐고 물어요."


"무슨 말이에요?"


"그냥... 그런 상처에 너무 집중하면 턱끝까지 숨이 찰 때가 있잖아요. 난 그렇거든요.

그래서... 자꾸 나한테 말 걸어요. 잘 있냐고 뭐든.. 괜찮다고."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러갔다.

유정은 머쓱한지 어깨를 끌어올리며 해맑게 다시 웃었다.


"상처 보면서 바보처럼 울고 그러는 거 아니죠? 막 옛날 생각하면서?"


"바보처럼 이라니요~"


"훗... 그러지 말라고요. 매일매일 나한테 잘 있냐고 도닥여주고 잘 지내라고 인사도 해주고요. 그래야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런 상처 같은 거 생각 안 하면서요. 왜 생긴 상처인진 몰라도"


"와.... 나 유정 씨 나이가 가늠이 안되네~~ 혹시 엄청......."


"뭐요? 엄청?"


"흠... 엄청..... 몇백 년 산...."


"이거 봐~ 진지한 이야기 앞에서 장난치는 스타일~"


"아닌데?"


"맞아요. 나 사실 몇백년산 꼬리 아흔개 달린 구미호 후훗"


재욱은 웃기다는 듯 웃어젖혔다.


"와.. 처음이다! 그쪽 그렇게 웃는 거요. 소리 내서 웃을 줄도 아네?"


"유정 씨가 너무 웃기잖아요"


"내가 웃겨요?"


"뭐 그쪽이 너무 심각해 보이니까"


유정은 다시 자세를 고쳐 말했다. 재욱의 눈과 마주쳤지만 잠시 조용한 침묵을 가졌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래야 할 것같았다.


재욱은 한참 웃다가 이내 유정의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 웃게 해 주네요. 사람 기분 좋게"


유정은 다시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뭐... 내가 좀 그런 면이 있죠?"


"흠... 기분 좋게 해 줬으니까 나도 유정 씨한테 보답을 해야겠네요"


"뭘 또? 사진도 찍어주고 맛집도 알려주고 지금도 너무 좋은데?"

지금도 너무 좋다는 유정의 말이 또 다시 재욱을 기분 좋게 했다.


"좋은데 알려줄게요. 여기 "


재욱이 자신의 카메라를 들어 찍은 사진들을 넘겨 보였다.


설원이 가득한 언덕에 소나무가 덩그러니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나 멋져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진심 이거 그림 아니에요?"


"멋지죠? 이 동네에 있어요. 꽤 가까운데... 같이 갈래요?"


하지만 밖은 이미 어스름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아.,.. 근데.. 너무 어두워졌는데.."


"아... 그러네..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지..."


재욱은 아쉬워하는 유정의 얼굴을 보았다.


"아무래도 날 밝을 때 낮에 가야 할 텐데... 지금은 좀... 위험할 것 같기도 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겠어요. 지금 못 간다는 거"

유정은 정말로 아쉬웠나 보다. 지금이라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 표정에 가득했다.


"아쉬워서 어떡하죠?"


"다음을 기약해야죠 뭐"

재욱은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과연 이 여자와 그 곳을 갈수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유정이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선 뒤에 다시 만날 수나 있는 것일까.


"다음이라....다음이 있긴 한가요?"


유정이한쪽 눈을 찡긋 하며 대답 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 지리라. 그게 어떤 방법 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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