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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달팽이 haru Dec 29. 2023

작별

9. 다시 만날 수 있을까.

by.haru








어느새 밤이 어스름 깔리고 눈길을 걷는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사복사복… 거센 눈발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눈송이가 차분이 떨어지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동안에 둘은 말이 없었지만 왜인지 그 고요함이 뭔가 모르게 평화롭고 편안했다.


“오랜만이다.. 이런 느낌..”

유정이 나지막이 속삭이듯 말했다.


호텔을 향하는 길에는 가로등 한 두어 개가 희미하게 길을 비치고 있었지만 어두워서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유정은 재욱을 앞질러 가다가 그만 발이 미끄러졌다.


“앗! “


그 순간 재욱이 유정의 팔을 잡아 올렸다.


“괜찮아요?!”


“아… 네네 괜찮아요.. 뭐 이 정도 가지고 호들갑은…”


어둠 사이로 재욱의 당황한 표정이 역력히 드러났다. 걱정이 반 근심이 반 당황한 기색이 반.


‘이 사람은 얼굴에 다 드러나네’


“하.. 놀래라.. 어두워서 조심해야 돼요..

그러니까,, 조심해야 되니까 … 내 팔 잡고 갈래요?”


재욱은 멋쩍은 듯 팔을 유정에게 건넸다. 팔짱을 껴라는 말인데 어쩐지 꽤 어색해하는 재욱의 행동이 그냥 귀여워 보였다.

그리고 그의 멋없는 멋쩍은 그 제안이 유정은 싫지가 않았다.


“그래요 안전상의 문제니까! 대신 꽉 잡을 거예요”

유정은 재욱의 팔을 꽉 끌어안았다.


“와… 절대로 넘어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팔로 전해 지네요 “


재욱은 농담 섞인 말로 말했다.


"그럼요! 나 넘어지면 재욱씨가 책임져요"

"내가 왜?"

"그야....팔짱껴라고 한 건 그쪽이니까"


유정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둘이 천천히 호텔로 향하는 그 길이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이 걸어갔다.



어느덧 호텔 앞에 다다르고 둘은 문 앞에 섰다.

유정은 재욱이 배웅을 해주는데 뭔가 뭉클한 느낌을 받았다.


‘오늘.. 즐거웠다....’

그런 생각을 하니 유난히 행복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욱은 왠지 흐뭇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런 유정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떼었다.


“저.. 오늘.. 오늘 고마웠어요 “

놀란 듯한 얼굴로 유정이 되물었다.


“ 네? 뭐가요.. 오히려 내가 … 내가 고마웠죠.. 혼자 온 여행이었는데.. 덕분에 외롭지 않았어요 “


그때 호텔에 있었던 요시가 문밖으로 나왔다. 잠시 놀란 듯 재욱을 보며 물었다.


“후~~ 춥다 추워~~~ 어랏? 재욱! 오늘 쉬는 날이잖아? 호텔에는 웬일이야? “


재욱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아 그러니까.. 그게”


요시는 유정과 재욱을 번갈아 보며 이내 장난기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데이트~~ 데이트~~?”


그러자 유정과 재욱이 동시에 대답했다.


“노! 노노!!”


“이이에! 요시상 그게 아니라”


재욱은 손사래를 치며 요시에게 데이트가 아니었다고 표시했다.

동시에 대답한 유정과 재욱은 놀라 서로를 쳐다봤다.


‘뭐야… 너무 격하게 아니라고 하네..’


유정은 내심 속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왜였을까. 데이트였다고 말하길 원했던 걸까.

그런 마음이 든 유정은 괜히 어색해졌다.

그리고는 재욱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아. 오늘 덕분에 잘 먹고 관광도 잘했어요!”


마치 손님이 여행사 직원에게 대하는 것처럼 정중했지만 차가웠다.

그리고는 휙 뒤돌아 들어갔다.


‘하… 너무 티 났으려나?’


유정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재욱을 등지고 뒤돌아 선 뒤였다.


'응? 잠깐! 이러고 간다고?! “


재욱은 순간 뭔가 자기가 실수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요시를 보며 실패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요시는 그런 재욱이 귀엽다는 듯 왜?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 뭔가 실수한 느낌..."

재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른 아침 재욱은 일할 채비를 하고 프런트로 나왔다.


“흠.. 오늘 체크아웃하는 손님이.. 몇 팀이지.. 아…”

pc화면에 보이는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한유정.. 맞다..오늘 … 가는구나 ‘


그날 이후로 이틀이 지났지만 유정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재욱은 이틀간 휴무였고  그도 마찬가지로 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했기에 여러모로 바빴다.


‘한국에서 볼 수 있을까..?’


재욱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날 밤 이후 어색하게 뒤 돌아 가 들어가 버린 유정이 계속 생각났기 때문이다.

기분이 상한 채 헤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얼굴을 봤어야 했는데…'


째깍째깍 시간이 덧없이 흘러갔고 이내 오전 11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재욱은 어디론가로 전화를 했다.


“아.. 여보세요? 나가시상 부탁이 있어요”

............................


정확히 11시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고 이윽고 유정이 체크아웃할 시간이 되었다.

드르륵드르륵…

유정이 또다시 자신의 몸집만 한 캐리어를 들고 프런트로 내려왔다.

재욱이 쭈뼛거리며 유정을 맞이했다.


“음음”

목소리를 가다듬는 재욱이었다.


“손님, 편안한 여행 되셨습니까?”


“네 뭐.. "

유정은 그날 밤처럼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안녕히 계세요.. "


“엇! 잠깐!”

뒤돌아 가려는 유정을 멈춰 세우고 재욱은 머뭇 거리다 결심한 듯 말을 했다.


“그날은 …그러니까 그날은…. 제가 뭐 실수한 거 있었을까요?”


이게 아니었는데…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재욱은 미안하다 사과하려고 했었다.


“ 실수요? 아뇨....수고하세요 ”

유정은 다시금 새침하게 대답하고는  호텔문을 나섰다.


“아…”


그때 호텔 문 앞으로 택시하나가 들어서서 유정 앞에 멈춰 섰다.


“오죠상~ (아가씨) 택시 부르셨죠?

유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택시 운전수를 쳐다보았다.


호텔 밖으로 재욱이 뛰어나왔다.


“여기, 제가 불렀어요.  나가시상 손님 … 공항까지 모셔다 주세요”


“아~ 욱! 갑자기 불러서 놀랐잖아~ 이 아가씨 애인이야?”


능글맞은 얼굴로 택시 운전수가 둘을 번갈아 보며 재욱에게 뭔가 말했지만

유정은 관심두지 않았다.

둘의 대화의 분위기로 봐서 이 택시 운전수도 재욱을 아는 눈치였다.


“되게 마당발이네… 여기저기 아는 사람 천지네”

괜스레 조용히 투덜거렸다.


유정은 우동을 함께 먹던 날, 재욱과 함께 호텔 근처 시장을 둘러봤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온 동네 사람의 인싸인 듯 모두와 반갑게 인사했다.


‘나도 당신한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손님 중 한 사람이겠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유정은 이상하리 만치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치.. 짜증 나..’

재욱은 이윽고 택시 문을 손수 열어 주었다.


“ 뭐예요 이 동네 택시 안 다니는 거 아니었어요?”

유정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 있긴 해요. 눈 많이 오는 날은 이쪽으로 잘 안 들어와서 그렇지”


재욱은 유정의 눈치를 살폈다. 좋아하는 건지… 아님 기분이 나쁜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하.. 어렵다..’


“이럴 필요는 없는데..”


유정은 섭섭한 마음과 동시에 고마움을 느꼈다. 두 마음이 공존한다는 게 웃기지만 그때까지도 자신의 마음이

어떤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음.. 제가 데려다주고 싶었는데,, 사실,,, 오늘 근무라..

자기 몸집만 한 캐리어 끌고 고생할 거 생각하니…"


“불쌍해서요? 됐네요 뭔 걱정이람. "

유정은 새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재욱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그가 보고 싶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분명했다.


재욱이 유정의 앞에서 뜸 들이며 힘들게 입을 뗀다.


“음.. 저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고객 개인정보라.. 근데 제가.. 음.. 음.. 번호를 외워버렸어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뭐요?”


“다음 달에 한국 들어가거든요. 전화해도 돼요?”

머뭇거리던 재욱이 이내 결심한 듯 빠르게 내뱉었다.


“…………”


“아 그리고 이거… 호텔 안에 기프트 샾에서 산 거긴 하지만. 뭔가 기념될 만한 거 주고 싶어서..”


재욱의 손에 작고 반짝이는 천연 석이 박힌 팔찌가 들려있었다.


“어?! 이거!”

유정이 기프트샾에서 눈에 넣어둔  바로 그 팔찌였다.


" 뇌물 아니고! 제 마음~! 그러니까… 한국 들어가면 꼭 만나요"


유정은 그래도 내심 기분이 좋아 팔찌를 받아 들었다.


‘이러면… 미련이 남잖아. 홀가분하게 돌아가고 싶었는데..’


“어쨌든 고마워요…"


유정은 택시에 올라탔다. 그리곤 문을 닫았다.


재욱은 실망한 듯 고개를 떨쳤다.


“하아…”


택시가 출발하려다 멈추고 이내 유정이 창문을 내리고 재욱을 향해 외쳤다.


“저기~ 저번에 말해줬던 거기 말이에요! 어차피 공항 가는 길에 있죠?”


재욱은 우동 집에서 유정과 대화를 했던 것을 떠올렸다.




‘저기~ 언덕 너머에 진짜 신기한 나무 한그루가 있어요. 주위에는 눈이 막 쌓여있는데 아무리 눈이 와도 이상하게 그 나무에만 눈이 안 쌓여’

‘에이~ 그런 게 어딨 어요! ‘

‘내가 왜 거짓말해요~ 진짜 있으니까 말해주는 거지. 주민들만 아는 명소랄까 ‘

‘흠… 거기가 어딘데요?’





“거기 가보려고요? 음… 비행기 시간은 괜찮아요?”


“어차피 좀 남았어요. 가는 길에 한번 확인해 보지!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와~ 사람 말 진짜 못 믿네~~~ 가봐요 그럼~”


“저번에 내가 쓴 러브레터!! 꼭 찾아요!"


유정이 빠르게 말을 하고 다시 창문을 올렸다.


‘러브레터?!’


재욱은 다시 생각이 났다. 가락국수 가게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러브레터를 썼다.

어떤 건지 모르지만 그녀는 아마 그곳에 숨겨둘 모양이었다.


너무 빨리 말해서 못 들었을까? 유정은 택시를 타고난 뒤 고민했다.


‘ 아.. 다시 내릴까? 다 들었나..? 아.. 괜히 긴장해 가지고…’


하지만 재욱은 똑똑히 다 들었다.


“아.. 러브레터…. 찾을게요!! 그러니까…그러니까 한국에서 딱 기다려요!.”


재욱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몰랐다. 그게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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