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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달팽이 haru Jan 05. 2024

작별

10. 시리도록 추운 겨울







어스름하게 밤이 깔린 마을

재욱은 마지막 근무를 하고 근처 식당을 찾았다.


“이랏샤이~ 재욱!! 오늘 마지막 출근이었지? 어때 기분이”


“네~ 아~ 뭔가 홀가분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렇지~ 아니 난 좀 아쉽네 ~우리 마을에서 이 잘생긴 얼굴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말이야~”


너털웃음을 짓는 인상 좋은 사장이 재욱에게 자리를 안내한다.


곧이어 호텔에서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 몰려 들어왔다.



“아~ 사무이~ 춥다추워 재욱~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어 내가 쏠게”


“오~~~”


사람들이 일제히 감탄사를 내뱉는다.

재욱은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렇게 말하니 진짜 돌아가는 게 실감이 나네요..."


갑자기 또 가게 문이 탁 열리고 동네 아저씨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그러게 말이야~ 그 시간에 거긴 왜 가 가지고~”


“그려. 아니 웬 아가씨가 당한 모양이야~”


‘아가씨?’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하는데 재욱은 문득 ‘아가씨’라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호기심이 많은 직원 나가세가 아저씨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래요? 아가씨는 뭐고?”


한 아저씨가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아니~ 요 위에 거기 있잖아. 나무 있는데~ 아까 거기서 산사태가 났어.

오늘 눈이 좀 왔어야지. 농가가 엉망이 됐어~근데 누가 당한모 양이야”


‘?!’


재욱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 다급하게 물었다.


“나무요? 나무 있는 곳이라는 거죠?!”


“응? 그려.. 거길 뭐 구경할 거 있다고 거길 갔나”


재욱은 심장이 마구 쿵쾅 거렸다.


“누가 다쳤데요?! 구조대는요?!”


“응~ 누가 다쳤는가 죽었는가 아무튼 경찰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유정 씨!!’


재욱은 그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사람들은 놀라 연신 수군거렸다.


‘제발…!!’


재욱은 제발 아니길 바라며 속으로 외쳤다.


'아닐 거야. 유정 씨가 아닐 거야'




사고 현장


사람들이 소란스럽고 경찰이 왔다 갔다 한다.


재욱은 빠르게 주위 상황을 스캔했다.


'산사태가... 하필 왜 이곳에서'


재욱은 마음속으로 몇 천 번은 말했을 거다.


상태를 보니 여러 사람이 다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주위에 있던 농가에 피해가 가서 집만 파손된 상황.


사이렌 소리가 주위에 시끄럽게 퍼져나갔다.



눈사태가 나서 눈을 파느라 꽤 애를 먹었는지 사람들이 지친 모습이었다.



어떤 사람이 들 것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그곳에 시선이 고정된 재욱.


들 것에서 어떤 이가 실려 구급차로 옮겨졌다.


재욱은 발밑에 떨어진 낯익은 팔찌를 발견했다.

재욱이 유정에게 준 그 팔찌가 틀림이 없었다.


주위는 공허한 공기가 맴돌았고 재욱은 그 자리에서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1달 뒤, 삿포로공항.

재욱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속을 밟았다.

그의 뒤로는 영결식에 쓰일 법한 검은색 리무진과 한 소녀가 울면서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미모의 중년 여성도 함께였다.

슬픈 얼굴을 하고 누군가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니.. 보내고 있었던 걸까.


재욱은 그 광경을 눈치채지 못했다.


비행기 안, 재욱은 손에 움켜쥔 하얀 종이를 펼쳤다.

잉크로 쓴 글씨가 다 번질 정도로 젖은 흔적이 또렷했지만 그는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너무 즐겁게 지내다 가요. 앗. 내 러브레터 발견 한다면.....!

만나면 선물 줄게요. 진짜로 멋진 걸로. 우선 내 연락처.

서울 오면 연락해요! 사진도 보고 싶고.. 재욱 씨도 보고 싶을 것 같아요.

내가 말했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져요. 그게 어떤 방법으로든..

당신이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 지길 바라며.

우리는 다음에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겠죠?

유정

추신- 나도 당신의 친구였으면 좋겠어서.


재욱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시렸다. 시린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며칠 되지도 않은 그날들이 영화한 장면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또다시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사라져 버렸다는 죄책감을 안게 되었다.


'난... 정말 이대로 제대로 살아갈 수나 있을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라..

그게 나한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가봐요 유정 씨....'


시리도록 추운 겨울 재욱은 또다시 누군가와 이별을 했다.

다시 봄이 올 것 같지 않아 너무도 슬프고 아린..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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