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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달팽이 haru Jan 19. 2024

눈꽃- 번외

12.눈이 내리지않는 소나무



눈발은 점점 더 거세 져 갔고 택시의 움직임은 점점 더디어져 갔다.


‘아가씨 비행기 시간은 괜찮은가요? 조금 천천히 가야 될 듯한데..’


 택시 운전수가 말했지만 유정은 여전히 알아듣지 못했다.

운전수도 이내 그녀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알았는지 작게 한숨을 내지 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욱이 말해준 그 언덕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스탑~! 스탑 플리즈! “


놀란 운전수는 동그란 토끼눈이 되어 뒤돌아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에요 아가씨  깜짝 놀랐잖아! “


“아 잠깐 기다려주세요! 저기만 다녀올게요~”

유정은 손짓발짓으로 소나무에 다녀온다는 말을 했지만 운전수는 알아채지 못했다.


“엥? 여기서 내린다고? 뭔 소리야 대체 공항까지 좀 더 가야 하는데?? “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운전수의 얼굴을 뒤로한 채 유정은 냅다 택시를 내려버렸다.

요금은 이미 재욱이 내어 주었고 유정은 내 려버렸으니 운전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기다리기 만무했다.

아니 기다릴까도 생각했지만 눈발은 거세 졌고 영업을 중단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뭐… 괜찮겠지.. 다른 택시도 있고’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 가까워져 인지 간간히 택시들이 보이긴 했다


그리고 운전수는 이내 차를 뒤로 돌려 가버렸다.


유정은 택시가 가버린 것을 뒤늦게 알아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 뭐야 가버렸네.. 역시 말이 안 통했나 어쩔 수 없지 뭐”


유정은 숨을 헉헉대며 소나무 있는 곳으로 발검음을 옮겼다.


‘아 왜 이렇게 멀어’


생각보다 거리가 있어 유정은 잠시 택시를 내린 것을 후회했지만.. 손에는 재욱에게 전해주고픈 러브레터가 들려 있었다.


“이거… 그냥 주고 올 걸 그랬나.. ”

괜히 장난 삼아 던진 말에 책임을 져야 하니 유정은 멋쩍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제 와서 무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번 내뱉은 말인데 지켜야지! 암~!”


유정은 기합을 한번 내뱉고 다시 한번 언덕을 올랐다.


언덕을 다 오른 유정은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보고 깊은 탄식과 감탄이 섞인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이게 대체…… 뭐야….”



눈앞에는 정말로 눈이 쌓이지 않은 소나무가 웅장하게 있었다.

눈으로 쌓인 언덕 위에 눈이 내리지 않는 소나무였다. 웅장하고 신비롭다고 해야 더 어울릴까. 마치 그곳 땅의 전부가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

모두 자기 것인 것처럼 힘 있게 뿌리내려있었다.


“말이 안 되잖아 이게. 어떻게 눈이 안 쌓여?? 마법인가? “


마치 마법처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유정은 도무지 믿기 지가 않았다.


재욱의 말이 맞았다. 말도 안 되는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재욱의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역시 거짓말하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유정은 그 소나무 주위를 빙 하고 한 바퀴 돌았다. 천천히 위에서부터 아래로 서서히 훑어보았다.


‘이상하다… 앞과 뒤가 똑같은 느낌..’

두어 바퀴 돌았을까. 소나무의 뒤로 가려는 찰나 유정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아! 깜짝이야!”


눈앞에는 머리에도 하얗게 소복이 눈이 쌓인 듯한 백발의 할머니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할머니는 유심히 유정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으며 자글자글한 주름사이너머로 눈빛은 심오하기 그지없었다.


“흠…. 이런이런…. 너무 멀리도 왔구나 너”


할머니는 말했지만 유정은 알아듣지 못했다.


“ 여기로 오지 말았어야지… 다시 보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어.. 삶이라는 게 사람 생각대로 그리 순조롭진 않단 말이지 “


할머니는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내뱉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만 받는 유정이었다.


“저기… 할머니 제가 일본어는 할 줄 몰라서…죄송해요 전혀 못 알아듣겠어요”


유정은 한국말로 말했지만 할머니가 알아들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말을 해야 했다. 왠지 말이다. 할머니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지만 왠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했을 뿐.


“아 할머니 이 소나무는 왜 이런 거예요?”

유정은 손짓 발짓을 해가며 궁금증에 대해 물었지만 할머니는 계속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유정이 들고 있는 러브레터였다.


“아.. 이거 헤헷… 사실 이거 여기 어디다 묻어두려고 온 건데.. 소나무가 너무 신기해서 깜박했네요. “

빤히 보고 있던 할머니는 유정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어쩐 건지 소나무의 위쪽 한편을 가리켰다.


소나무의 한쪽에 묶으라는 이야기인 걸로 눈치껏 알아 들었다.

“아.. 이거… 여기에 해도 된다는 말씀이신 거죠? “

그러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밝아진 유정은 이내 곧 할머니가 가리킨 소나무의 한편에 러브레터를 묶었다.

좀 더 위에 묶고 싶은 마음에 애써 뒤꿈치를 들어 한껏 팔을 들었다.


‘이쯤이면 재욱 씨 손에 충분히 닿겠지’


“유서를 남기게 됐구먼 그려. 근데… 가끔은 말이야 삶이 끝나야 연결되는 연이라는 것도 있지. 넌 참 특별한 아이구나 “


또다시 알 수 없는 말을 하나 싶었는데, 유정은 이상하게도 그 할머니 말을 이번에는 알아들었다.


‘뭐지?!’


“뭐라고요 할머니?!”


유정은 뒤 돌아 할머니를 찾았지만 이내 사라지고 난 뒤였다.


‘뭐야… 환청인가? 분명… 한국말로 들렸는데 갑자기… 근데 무슨 말이지? 유서? “


우르릉 쾅!!


그때 요란한 굉음이 들렸고 유정은 알 수 없는 외력에 인해 어디론가 쓸려 흘러가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악!”


외마디 비명조차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유정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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