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모임은 딱히 필요하지 않다.
진실 혹은 진실
엄마 모임의 진실
내 옆에는 어떤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나는 결혼을 하기 전에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친구라고는 5명남짓이다.
그것도 오래된 고향 친구이거나 동창 친구이거나 이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고향이 아닌 타지 에서 했고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서 친구를 사귈 기회가 거의 없었다. 아니 그럴 기회를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는 타지에서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으면서 지역 맘카페에서 몇몇 알게 된 엄마들과 알고 지낸 게 다인데, 이것도 지금은 커넥션이 다 끊겼다.
코로나 이후로 달라진 삶이다.
어떤 엄마들은 종종 엄마들 모임에 정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다.
그 모임을 빠지면 마치 혼자 왕따를 당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자. 엄마 모임이란 게 당최 왜 필요할까?
나는 둘째를 낳고 집에만 있다 보니 기분이 우울해지고 쳐지는 것 같아 동네 여자들이 모여서 하는 영어모임에 나가보았다.
총 8명이 모였는데 그들 모두가 누군가의 엄마였고 그중 5명은 심지어 아기띠로 아이를 메고? 오는 엄마도 있었다.
사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까지 나는 영어모임에 열정 적이었는가?
영어를 엄청 하고 싶었는가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모여있는 엄마들은 영어가 아닌 ‘육아고충’에 대한 수다에
더 열정 적이었다.
그러면서 진행되는 스토리 라인은 항상 똑같다.
육아고충->남편험담->시댁험담->왕년에 나는->후회 와 한탄
그런 수다들을 다 듣고 있자니 어느 날은 머리에 총 맞은 것처럼 탕 하는 소리가 들리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 것 같은데’
4번 정도 모임에 갔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참석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들은 영어모임에 포커스를 두기보다는 그저 아줌마들의 수다와 동네 친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깨달은 것은 그런 수다를 위한 만남은 필요 없는 에너지 소비만 가져올 뿐 결국 남는 것은 허탈감이다.
나는 전직 통역사여서 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루 8시간 이상을 쉼 없이 통역업무를 했다.
그래서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에너지 소모가 큰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수다를 떠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큰 아들이 아기였을 때부터 만남을 가져온 엄마 모임이 있었다.
걔 중에서는 서로 마음이 안 맞아 모임이 안 나오게 된 사람도 있었고 만나면 없는 사람 험담 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만나면 자기 자랑 하기 바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사실 내키지 않은 모임이었는데 아이를 위해 친구를 만들어주자는 명목을 내세워 만남을 지속시켜 갔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시작되고 그 관계들은 정리되었다.
코로나가 막 시작되고 시끌벅적거릴 때 엄마들은 또 아이들을 동반해서 모임을 가졌고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전염병이 심각하게 돌고 있다는데 다 같이 만나서 밥 먹고 수다를 떨자니 그것도 아이를 동반해서 말이다.
당시로선 내 기준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이 참에 모임에 나가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 만남을 거절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모임의 엄마들과는 만남은 사라졌다.
그렇다. 얇디얇은 인간관계의 끝이다.
시작되고 5년이 넘은 모임이었지만 이 또한 쓸데없는 만남이었다는 증거였다. 불필요한 인간관계가 정리가 된 것이 코로나가 시작돼서 유일하게 좋은 점이었다.
진짜 친구와 그렇지 않은 사람?
엄마가 되고 나면 옛 친구 아니면 엄마들 모임으로 인한 인간관계로 나뉘게 된다.
거의 대부분 아이가 다닌 어린이집 동기이거나, 유치원 동기이거나 하면서 친분을 쌓게 된다.
하지만 옛 친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 어느 정도 가면을 쓰고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에 동감하는 엄마라면 꽤나 엄마 모임으로 인해 고심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모든 스트레스의 원인은 결국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직장에서든 사회에서든 학교에서든, 엄마 모임에서든.
그러니 현명한 사람이라면 진짜 내 곁에 둘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구별할 줄 알아야 된다.
여자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현명해져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니 여자뿐만 아니라 인간 통 들어라고 바꾸자.
모든 방면에서 현명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그중에서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현명하고 냉정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내가 엄마라는 것에 포커스를 더 맞춘다 하면은 에너지 소모가 큰 불필요한 인간관계가 과연 나에게 또는 우리 아이에게 필요할까? 유리할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그 인간이 싫은데 우리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글쎄다. 내 주위를 봐도 내 경우를 봐도 그런 모임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지금 같은 정보의 바닷속에서 살면서 아이에게 필요한 고급 정보를 동네 언니 또는 동생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내가 조금만 부지런하면 알아낼 수 있을 것이고
너무 외로움을 많이 타서 친구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그 외로움을 사람으로 풀지 말아 보는 건 어떨까? 그러다가 꼭 상처받는 사람은 본인일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온라인으로도 얼마든지 친구를 사귈 수 있다.
몇 달 만에 전화를 해서 “별일 없지? 나 오늘 저녁 뭐해먹을까 고민인데 너는 뭐 해 먹을 생각이니?” 무심하고 갑작스러운 안부와 질문에도 너무나 당연하게
“음~ 나는 김치찌개 할 생각인데 오늘 기분도 그렇고 칼칼한 게 당기네~”
라는 대답이 돌아오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그런 관계. 그게 진짜 친구가 아닐까?
“왜? 기분이 안 좋아 무슨 일 있었어?”
진짜로 걱정해 주고 친구가 뭐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는 건지 정말로 궁금한 그런 사이가 찐 친구라 생각된다.
옆에 있는 사람이 이런 사람인지 생각해 보자.
만나기만 하면 자기 자랑에 바쁜 사람, 도통 내 이야기는 듣지 않고 본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 불평불만 가득한 일을 산더미처럼 가져와 내 앞에서 호소하거나 늘어놓는 사람.
만약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면 사실상 그 관계에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내 인생에 있어 별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니까 말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 인생에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과감히 끊어버려야 하는 유형이 있다
바로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이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나는 상대방을 위해 호의를 베풀었는데 정작 상대방은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항상의 위라고 생각하며 나를 이용하기만 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나는 되고 너는 안 돼라는 이기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많다.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서 잘못된 사상으로 나를 상처 줄 수 있다.
솔직한 것과 무례한 것을 구분 못하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솔직한 성격이라고 내세우면서 무례한 말과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 정작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른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무례한 사람이 있어 그에게 상처 입었다면 고쳐 쓰려하지 말고 냉정하게 끊어내야 한다.
이렇듯 내가 멀리 해야 하는 사람은 무례함을 보이는 사람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못된 사람을 안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엄마 모임에는 이렇게 곁에 둘 필요 없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반대로 내가 친구로 둬야 하고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내가 실수했을 때 좋게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이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잘 돼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 언제나 내 곁에서 머물러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인간관계는 내 운에 관련되서도 직결되는 문제이니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내 삶이 크게 뒤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곁에 좋은 사람이 많이 있으면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내 기분도 좋을 뿐 아니라 같이 성장 할 수도 있다.
나쁜 사람이 있으면 나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고 내 미래가 어두워질 수도 있다.
주변 인간관계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좋다
40대가 되고 보니 내 주위에 불필요한 관계들은 다 부질없다.
마음이 맞는 친구 한두 명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