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림보 달팽이 haru Sep 23. 2024

4.혼자살아남은아이

"거기….누구 있어..요?”


갑자기 그 때 안경이 탁하고 떨어지더니 으슥하게 어두운 그 문을 통해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아..안녕하세요?”


수상해 보이는 한 남자가 안경을 털털 털어내며 잡아 들어 올렸다.


“누구세요?!” 

수아는 경계심을 풀지 않고 그 남자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또 다시 물었다.


“아.. 조문 왔다가..임 수아 양 이시지요? 임 회장님 따님 분”

남자가 자상한 어조로 말해 살짝 경계를 풀었다. 


“아..네.. ”


본 적 없는 남자의 얼굴이었다.

남자는 안경을 한번 치켜 들어 올리더니  스윽 하고 바라 보았다. 

그 눈빛이 어쩐지 다정이라기 보다는 날카로워 보였달까. 어쨌든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안타까운 일을 겪게 되었군요. 어서 범인을 찾기 바래요”


‘뭐?! '


사람들은 이번 사건이 살인 사건이 아니라 사고라고 했다. 그저 태풍에 휩싸이게 되었고 자연의 힘을 막지 못한 안타 까운 사고… 그런데 범인을 찾으라니?


“아저씨 뭐에요?! 범인을 찾으라니 뭐 알고 있는 거에요?“


남자는 머뭇 거리다 명함을 하나 내밀었다.


“아 나 이런 사람이에요. 한성신문 기자.. 그저 내 직감이긴 하지만. 사고는 아닐 거에요”


수아는 그가 내민 명함을 받아 들고는 이름을 읽어 내렸다.


“조 규한..기자님..경찰도 그냥 사고로 마무리했어요 어떻게 범인을 찾을 수 있겠어요?”

그렇게 말했지만 내심 이 아저씨가 뭐라도 힌트라고 가지고 있길 바랬다.


“흠.. 그건 정말 아쉽게 되었군요.. 아무래도 권력 앞에선 공권력도 무너지는 법이니까.“


“칫…하나 마나 한 소리 하시네요..

나 혼자 살아 남았는데.. 난 지금 아무것도 할수 없는 그냥 어린애라구요!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을 거에요! 아무도…흐흑…“


수아는 울화가 치밀었다. 그런 말 나 할거면 여지를 주지를 말던지.

남자가 난감한 표정을 하고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이런 상황을 모두 지켜 보고 있던 이윤은 생각에 잠겼다.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만 살아 남은 저 소녀의 마음을 자신이 헤아리지 못한 걸까. 과연 혼자 살아 남은 것이 잘 된 일 인 건가? 선문대할망이 그토록 책망했던 이유가 단지 생명의 반을 잃고 소녀를 살렸기 때문 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가.. 혼자 살아 남았다는 건…소녀에게 더 큰 시련을 준 것일까..”


이윤의 눈가에 촉촉하게 눈물이 맺혔다.


“엇 뭐야?!“

그러자 그런 자신에게 놀라 황급히 눈물을 훔쳤다.


‘내가 왜 저 소녀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야!?’


윤은 소녀를 구하고 난 직후 한라산이 보이는 제주도 앞 바다에서 선문대할망의 잔소리를 한참 들어야 했던 그 때를 떠올렸다.


“윤아 네가 니 생명의 반을 준 것이 예삿 일이 아니 란 것은 하나 말해 두마. 이때 까지는 신  상괭이의 오롯한 힘으로 죽지 않아야 할 사람들을 구한 것이겠지만 이 소녀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단다. 원래 이 바다에서 그날 죽어야 할 운명이었어. 그런데 네가 천기를 완전히 뒤집어 어긴거야. 신의 힘이 들어간 그 소녀가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원래 니 생명이었던 그 힘이 소녀와 너의 운명을 어떻게 만들지 상상이나 해봤니? 넌 그 소녀와 말 그대로 일심동체가 될 것이야.

너의 영혼이 소녀에게로 가고 소녀의 오롯한 마음과 감정이 너에게 그대로 전해 질 거란 말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이고..… 나는 짐작도 하기 싫구나“


그때는 선문대할망이 어려운 말을 잔뜩 늘어 놓는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듣기 싫은 잔소리라 여겨 귀에 담아 듣지 않았지만 원채 총명한 상괭이의 머리라 모든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걸 말한건가… 소녀가 우니까..화를 내니까 머리 속으로 그 감정이 다 전달이 되. 나도 마음이 아프잖아… 이를 어쩌지?!”


먼가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됬다는 생각을 하며 후회를 하는 이윤이었다.


“야 임수아!”


멀리서 수아의 고모가 수아를 불렀다.


“상주가 자리 안 지키고 뭐하니? 

매서운 고모의 말에 수아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눈물을 황급히 훔치고 기자 아저씨가 뒤돌아 가는 모습을 빤히 바라 보았다.


“누구야? 저 사람은? 아는 사람이니?”


“아..아뇨.. 그냥 조문 오신 분이래요..”


“앞으로는 누구든 모르는 사람하고는 말도 섞지 마라. 괜한 풍문에 휩쓸리니까.”


“네..”


아버지의 누이인 임미숙, 그녀는 골든 그룹의 자회사 골든 호텔의 수장이었다. 골든 그룹에 속해 있지만 그룹에서 하는 사업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다는 조건으로 호텔을 가졌다. 

이미 여러 나라에 체인점을 두고 있는 골든 호텔은 꽤나 그 평판도 좋았고 그 명망을 이어가고 있었다. .


그때 검은 색 밴 한대가 장례식 장 쪽으로 들어오더니 끽 하고 멈췄다.

젊은 남자가 빠릿하게 차에서 내려 휠체어를 탁 하고 꺼내었다. 

백발의 노인이 힘겹게 차에서 내리더니 지팡이를 지지대 삼아 들고는 천천히 걸어 휠체어에 탁 하고 앉았다. 

이번에는 곱상해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휠체어를 천천히 끌어 조문객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수아의 고모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수아의 외할머니 였다. 딸을 잃은 어머니 치고는 외할머니는 상당히 차분 했다. 장례식장에서 10년 만에 만난 손녀를 안아주지도 않았다. 수아의 어머니 또한 출가 외인으로 오랜 세월을 어머니와 연을 끊고 살았다고 했다.

휠체어에 앉아 가만히 장례식장을 휘 한바퀴 둘러보고는 이내 곧 밖으로 나가 버렸다.


“몹쓸 것들이 앉아서 지 멋대로 떠들기나 하고 에잇..”

수아의 외할머니는 인상을 찌푸리며 혼자서 한탄섞인 말을 했다.


수아가 인사를 하려고 할머니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는 수아의 뒤에 서 있던 고모 임미숙을 쓱 한번 째려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너희 고모는 ...임미숙은 임회장의 죽음으로 인해 아마 차기 회장자리를 넘보려고 할 것이다. 임회장이 살아 있었을 때에 적어 두었던 서약서는 무시한 채 말이다. 

하지만 김기두가 있는 한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야. 너는 나와 함께 가자. 수아라고 했지?”


“아..네 할머니.”

거즘 10년 만에 인사하는 할머니였다.


"장례식이 끝나면 넌 나와함께 가자꾸나. 유 비서."

할머니는 자신의 비서로 보이는 남자를 불렀다.


"일 잘 마무리 하고 애 데리고 와. 짐이랑 다 챙겨서 "


수아가 외할머니 집으로 가게 된 것은 정확히 장례식 이후 일주일 만이었다.

그대로 외할머니 댁으로 가 살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원래 건강이 좋지 않으신데다 간병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라 수아를 적극적으로 부양하기엔 힘들었지만 상속 재산 뭐 여러가지 복잡한 서류 정리를 위한 답시고 일부러 고모 임미숙이 수아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내는 수아가 자신의 집으로 오는 것을 극심하게 싫어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고 회사를 물려 주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었고 수아의 아버지와도 거즘 15년 정도를 보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동생이 죽었다고 그 딸을 부양하기에는 그녀의 그릇은 너무나도 작았다.


차기 회장 까지 노리고 있을 테니 수아의 존재는 그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쭈뼛쭈뼛하며 들어간 그 곳은 한눈에도 으리으리해 보이는 정원수가 박힌 넓은 마당을 지나야 했고 한참 뒤 겨우 현관문에 도착했다.

스르륵 문이 열리더니 왠 아주머니가 할머니 대신 수아를 반겼다.


“네가 수아구나? 어서 오렴”

인자해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수아를 반겨주었다.


거실로 보이는 넓은 곳에 할머니는 여전히 휠체어 탄채 창 밖을 바라 보고 있었다.


“아..안녕하세요. 할머니”


”그래“

짧은 인사 였다. 그 것 말고는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다.


어머니와 다르게 온화하지 않은 얼굴, 매서운 표정에 사람을 내리 깔아 보는 눈매 ,할머니의 집도 어색했지만 할머니의 모습 자체가 그녀에게는 넘어가지 못하는 큰 벽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엄마의 방으로 쓰였던 그 집에서 제일 큰 방은 이제 수아의 방이 되어있었다. 

분홍색으로 다시 도배를 한 듯 했지만 책상과 침대, 모든 물건들이 다 엄마가 썼던 그대로였다. 


"엄마 물건들이...가득하다.."

'아마도 이 방을 그대로 놔 둔걸 보면 많이 그리 워 했던거 아닐까..'


방을 휭 둘러 보다보니 드레스 룸 쪽에 덩그러니 수아의 짐이 들어있는 캐리어 두 개가 놔두어져 있었다.

정말 조촐한 짐이었다. 


드레스 룸 에는 이미 많은 옷 들이 즐비 하게 걸어 져있었다. 할머니는 말은 무심하게 하시지만 나름 손녀를 위해 신경을 쓰신 듯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할머니는 항상 휠체어를 탄채로 정원에 나와있었다. 정원에 많은 꽃들과 나무를 돌보는 것이 유일한 낙 이였고 할 일이었다. 

원래 무용수 였 던 할머니는 오래 전에 다리를 다치셨고 그 바람에 30년 넘게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다. 수아의 어머니도 어렷을 적부터 발레를 해 오랫동안 국립 발레단에 몸담고 있었지만 아버지 임회장을 만나게 되면서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딸년은 얼굴이 이쁘면 안돼. 인생 망치는 지름길이거든”

할머니가 늘상 혼잣말을 하던 말이었다.

재벌 총수의 아내로서, 두 딸의 엄마로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호수 위의 백조가 아닌 물 아래에서 발버둥 치는 오리처럼 그렇게 위태로웠다고 한다. 

이것은 수아가 할머니의 넋두리를 매일 들어서 알게 된 사실 이었다.

그 넋두리라는 것도 함께 식사를 하면서 마주앉아 들은 것도 아닌 정원수를 돌보며 혼자 중얼거리시는 걸 주어 들은 것이었다.


수아의 15살의 해는 그렇게 지나갔고 어느 덧, 첫눈이 내리면서 몸이 시릴 정도로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그리고 수아는 또다시 이별을 맞이 했다. 


“할머니 비록 오랫동안 지내지 않았지만 감사했습니다”


수아와 할머니의 마지막 인사였다. 수아는 살면서 몇 마디 나누지 않은 것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할머니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결국 요양원으로 들어가야만 했고 곧 사망 소식을 접해 듣게 되었다. 다른 가족이 없었던 할머니의 장례는 한 해에 두번째로 겪여야 했던 이별 이었다.


큰 정원이 있는 그 집은 수아 혼자 살기 만무하다며 수아고모인 임미숙이 재산 처분을 도맡아 진행 했다. 

무슨 수를 썼는지 수아에게 돌아온 건 그저 낡은 캐리어와 그녀의 옷 가지 몇 개 뿐이었다.


“학교는 다니게 해주마. 대신 나대지 말아라”


고모의 한마디는 그녀를 뼈속 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추운 겨울인데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보다 더 시리고 매몰찼다. 

철커덩 

차가운 기온 만큼 차가운 철문이 수아의 눈 앞에서 굳게 닫혔고 이는 곧 그녀가 이 집 밖을 도저히 벗어 날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렸다.

이전 03화 3. 가족몰살사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