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남이 들어왔다 2

(전지적 그의 시점) 33. 붙잡을까. 지금?

by 작가이유리

11화 연하남이 들어왔다 (brunch.co.kr)





오늘따라 유난히 따가운 햇살이다. 필리핀의 더위는 이제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유난히 오늘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터벅터벅 다이닝 한편의 사무실로 가서 일지를 살펴봤다.

그녀가 여기 머물 수 있는 날도 이제 3일. 리조트에서는 하루 반나절 밖에 안 남았다.


'가지 말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네'


그녀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서툰 고백으로 그녀가 날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건 의외로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그녀에게 반했다고 생각이 든 것도 한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을 말하는 게 여러 말이 필요할까..?

하지만 내 경우는 그저 '좋아해'라고 한마디만 필요한 게 아니니.. 두려운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가가고 싶어..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푸릇푸릇한 초록빛이 가득하고 반짝이는 바다 풍경도

너무 익숙하게만 흘러갔던 내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내 심장이 말도 못 하게 뛰고 내 시선은 그녀를 쫓아가기만 했다.


아.. 사람들이 왜 이 리조트에서 로맨스를 찾으려고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한 곳이다.


그전에 그녀의 마음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마음이 혼잡하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 몰라.

하.. 담배나 하나 펴야겠다.'


끊으려고 벌써 몇 달째 참고 있었는데 …. 심난하니까 안 되겠다.


그녀가 멀리서부터 다이닝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 얼굴 보면 또 긴장될 것 같은데..'


내가 보이지 않았는지 벽 한쪽에 걸려있던 액자를 뚫어져라 봤다.


100회 다이빙 기념 액자.

여러 사람들이 여기서 100회 다이빙을 하고 이름을 새겼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곳이 좋아서…다이빙이 좋아서 머물게 된 곳.


근데 이곳에서 내가 여자에게 이토록 빠져 버릴 줄.


- 굿모닝. 뭐 봐요?


아무 일 없는 듯이 다가가자.

들고 있던 담배를 다시 넣을까 하다. 안 돼 , 긴장돼서 이거라도 들고 있어야 될 것 같았다.


그녀에게 멀리 떨어져서 담배를 물었다.


- 아 담배 피우는구나?


‘?!‘


- 아.. 담배 피우는 남자 싫어요?

내심 아차 싶었다. 분명 싫어하니까 그렇게 물은 거일 텐데..


-좋진 않아.


‘아.. 망할..’


안 돼.. 여기서 담배를 다시 넣으면 너무 의식하는 것 같잖아.

나는 들고 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화제를 돌려야 했다.


-100회 다이빙하면 저기에 이름 새겨주거든요 3년 전에 나도 그랬고 저기 저위에


- 이름이 있네?

- 누나도 저기 이름 새기고 싶어요?

-그럼 뿌듯하겠다

- 여기 또 와야 되는데


-그렇게 되나?


‘정말? 정말 오려고?’


- 오면 좋겠다.. 벌써 마지막 날인가?


- 벌써 그렇게 됐네


실망감과 섭섭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담배를 피우다 나도 모르게 깊게 내쉬어 버렸다.


- 어 연기가 그쪽으로 가네. 미안


담배 피우는 게 싫으면 연기도 싫을 텐데.. 아.. 담배 피우지 말걸. 괜히 꺼냈다.


그녀는 아무래도 100회 다이빙에 관심이 생긴 듯했다.

다이빙이 좋아졌나? 아님 … 나 때문에 온다는 건 아니겠지..


아 맞다. 그녀는 아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이걸로 만회가 될까?


- 아침에는 아아 맞죠?


- 아 땡큐.. 근데.. 어제는 잘 잤어? 엄청 취했었잖아


‘갑자기 그걸 묻는다고? 어떻게 말해야 하지..’


- 아.. 취했었죠 많이.


전혀 취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져서 문제였지


- 취하긴 했어도 다 기억은 해요


‘ 지금이 타이밍일까?’


- 응 뭐를?


하.. 또 모르는 척.. 잊어버린 척..

그래도 부딪혀 보자.


- 나 아직 대답 못 들었는데..

……

저기..




불청객의 목소리


- 와~ 오늘 날씨 너무 좋다 오빠

어젯밤에 잘 잤어요? 영화 보다가 갑자기 가버리기 있기 없기~


‘앗.. 갑자기 그걸 왜 말하는데’


- 아.. 그냥 너무 피곤해서...

그리고 네가 이상하게 굴었잖아.


- 오빠 나도 커피 타주면 안 돼요?


‘커피 타주고 빨리 보내버리자’


- 아이스커피?


-음 더우니까 아이스 나 몸이 왜 이렇게 덥지?


- 그럼 에어컨 나오는 방에 가서 마셔.


- 오빠 오늘 브런치 메뉴는 뭐예요?


그만 좀 말 시키고 방으로 들어갔으면… 그녀와 난 아직 할 이야기가 있다고!


- 오빠 같이 영화 끝까지 보고 싶었는데 중간에 그냥 가버려서 나 좀 당황했잖아? 내가 그렇게 만든 거야?


- .... 왜 귀에 대고 말하는데?!


제이의 행동이 짜증이 났다.

제이는 돌발행동을 너무 자주 한다.

영화를 볼 때도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길래 그 자리를 떴다.

소민누나가 중간에 나가지만 않았어도..


이상하게 오해하면 어쩌지? 안 그래도 그녀는 내가 바람둥이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뭐 때문인지 모르지만.


- 꺄! 벌레야 벌레!!


호들갑스러운 제이가 이번은 소리를 질러댔다.

도마뱀을 보고 벌레라고 난리를 쳤다.


소민누나가 쯧쯧대며 걸어 들어왔다.

나는 도마뱀을 얼른 치워 제이가 소리치는 걸 그만두게 해야 했다.


- 필리핀에는 귀여운 도마뱀이 많아~~

소민누나가 혀를 쯔쯔 차며 다이닝으로 걸어왔다.


'귀여운...'

하 또 전날 밤 일이 떠올랐다.


'너무 신경 쓰인다..'


그녀가 쳐다보는 곳이 내가 아니라 저 먼바다 쪽이라는 게 더 신경 쓰인다.

자꾸 그녀에게 시선이 갔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전혀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훗... 나 혼자 착각 속에 빠졌던 걸까..'

어이없다는 생각에 괜한 헛웃음만 나왔다.


" 야~~ 그 제이 말이야~ 은근 밀당의 천재여~ 장난 아니야. 하 놔~ 질투심 유발 한번 해봐?

소민누나는 임자 있고.. 진아 누나를 좀 이용해 볼까??"


갑자기 어젯밤 준호 형의 말이 떠올랐다.


진아누나는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형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형은 내 눈치를 보고는 이내 수그러들었지만..


'가만.. 질투심 유발? '


그걸 내가 해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게 과연 먹힐까?

진짜 통한다면 그녀가 날 한 번은 돌아봐줄까?


제이가 타운을 나가자고 졸랐다.


내키지 않았지만... 미안하지만 제이를 좀 이용해 볼까 하는 나쁜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나쁜 남자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는 거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마음 좀 얻겠다는데...


내가 운전을 해주겠다고 하고 다 같이 나가자고 말했다.


그녀의 표정이 썩 좋진 않았다.


'같이 있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그녀가 날 한번 봐줄까.

제이가 아닌 그녀가 방으로 향해 가버렸다. 붙잡을까?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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