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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n 24. 2020

은행나무 집

귀향생활의 시작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수술을 한 엄마는 퇴원 후 아파트 생활을 오래 견디지 못했다. 6년 전부터 이번까지 세 차례의 수술을 하며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 엄마가 귀향을 택한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수순이었다. '고향'만큼 회복과 잘 어울리는 말도 없다.


엄마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충남 홍성의 한 농촌마을이다. 마당에 큰 은행나무가 있어 '은행나무집'으로 불리는 주택에는 엄마의 엄마, 또 그 엄마가 살았다. 3대를 거쳐 뿌리내린 집이었지만 조부모가 돌아가신 2018년부터는 비어있다. 엄마가 요양 차 혼자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서둘러 휴직을 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빈집의 냉기가 엄마의 마음까지 허하게 만들까 걱정이 앞섰다.


시골에 내려와 자세히 뜯어본 은행나무집은 촌집 치고도 잘 지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제법 넓은 마당을 거쳐 대문으로 들어오면 커다란 방 두 개와 부엌이 있는 안채와 안뜰 너머 사랑채가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헛간과 외양간, 광을 더하면 총 다섯 개의 크고 작은 건물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다. 장작으로 난방을 하던 시절 사용했던 아궁이와 민속촌에서 볼법한 가마솥도 그대로 걸려있다.


올해로 60살인 엄마는 이 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내가 그러했듯 엄마도 열아홉 이후로는 줄곧 집을 떠나 있었다. 직장을 찾아 떠났고, 결혼을 해 낯선 경상도 땅에 정착한 이후 잠시나마 ‘살기 위해’ 돌아온 것은 40년 만이다. 엄마는 먼 타향에서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좀처럼 엄마가 있는 고향에 오질 못했다.


엄마에겐 반가운 고향집이겠지만 나는 내심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내게 시골살이란 불편한 화장실과 많은 벌레들, 단절된 문화생활을 뜻했다. 자연을 좋아하는 편임에도 그 속에 오래 들어가 있기보다는 아직은 관망하는 편이 좋다. 그나마 복잡했던 도시생활을 환기시킬 기회가 될 것이라는 작은 기대가 없었다면 시골살이의 시작이 더 고달팠으리라.


이런 나를 엄마의 고향으로 불러들인 날, 엄마는 종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리 모녀가 돌아옴으로써 비어있던 은행나무집에도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제는 엄마가 없는 엄마의 고향에서 딸과 함께 지내게 된 감회를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래도 그 웃음에서 나도 모르는 행복을 엿본다. 은행나무집 곳곳에서 주름지게 웃는 엄마의 얼굴에서 만날 수 없는 엄마의 엄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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