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도쿄 시부야의 한 편의점에서 시급 980엔을 받으며아르바이트를 했다. 근처에 소형 주거단지와 공사장이 많아 수십 개의 도시락이 금세 동났던,점심시간이유난히 바쁜 지점이었다. 문제의 그날도 점심장사 채비에 한창이었던 것 같다. 한 손님이 다가와 편의점 안 화장실 안에서 사람이 나오질 않는다며 말을 걸었다.
나는 그 손님의 뒤를 이어 화장실 앞에 서서 몇 번이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누가 있는 건 같은데. 굳게 잠긴 문 안에선 아무런 기척이 나지 않았다. 그 시간이 30분을 넘자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일본인 동료가 갑자기 사색이 돼 뛰어왔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혹시 죽은 거 아니야?"
그는편의점 화장실을 빌린다며 들어간 손님이 목숨을 끊은 사건이 며칠 전 뉴스에 나왔다고 했다. 그때부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죽었으면 어쩌지'부터 '경찰에 먼저 신고해야 하나'많은 생각이 스쳤다. 예닐곱 살 위였던 그 동료는 문을 열어보라며 자꾸만 내등을 떠밀었다. 하는 수 없었다.
'딸깍' 열쇠로 살며시 문을 열었을 때. 그 틈에는 믿지 못할 광경이 있었다. 적어도 40분 이상을 화장실 안에서 보냈을 한 사람이 양변기 위에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한 손에는 먹다 만 빵을 든 채였다. 그는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고 난 후에야 잠에서 깼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단 한 칸의 좁은 화장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 뒷모습을 보며 갓 스무 살이던 나는 간절해졌다. '성공하고 싶다.'
그때 떠올린 막연한 성공은 직업적 성취였던 것 같다. 보기에 번듯한 직업, 가난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직업, 내 고단함이 불쌍히 여겨지지 않을 직업이 갖고 싶었다. 다행히도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기자는 그 범주에 있는 듯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 마음 한편에 감춰놓은 성공에 대한 욕심까지 채울 수 있는 직업. 나는 지금 그럭저럭 꿈을 이뤘다.
"노숙인들 말이야 추워서 공중 화장실 변기 칸에 들어가서 잔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느 날 노숙인을 취재하던 선배가 말했다. 왜인지 10년도 더 지난 그해 여름 시부야 편의점 화장실에서 마주한 손님의 모습이 스쳤다. 그 고단함을 불쌍히 여겼던 내가 떠올랐다. 물론 이제 나는 혹시 손님이 죽었을까 떨었던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다. 기사를 통해 노숙인들의 어려움을 전하거나, 전문가들을 통해 그럴싸해 보이는 해결책을 이야기할 수도 있게 됐다.
나는 성공했을까. 원하는 것은 됐지만 사실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직업이 아니라면 돈일까. 더 큰 명예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월급이라는 안위에 쫓겨 속이 텅 빈 문장을 꾸역꾸역 쓸 때의 나는 편의점 화장실 앞에서 멀어져 가는 손님을 보던 그 마음과 다르지 않다.
은행나무집으로 내려오기 얼마 전이었다. 원치 않는 글을 쓰느라 밥 먹을 시간이 나지 않았다. 카페에 들어가 눈은 노트북에 둔 채 빵 한 조각으로 배를 채우다 결국에는 목이 막혀 컥컥 대고만 그런 날이었다. 화장실에서 쪽잠을 자야 했던 손님의 고단함을 불쌍히 여길 자격이 내게 있을까. 고단하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내 하루를 남들이 불쌍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