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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력 하는 마음

자신의 쓸모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

by haru

이력의 사전적 정의는 지금까지 거쳐 온 학업, 직업, 경험 등의 내력이다.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작성하기 시작한 이력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이력 하다 보면 평범 or 평범 이하인 것처럼 느껴져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머쓱해져 급하게 Backspace를 누른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 어디 내놓기는 애매하고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도, 움츠러든다.


SNS와 유튜브에서는 합격을 위한 이력서 작성법에 대한 콘텐츠가 넘쳐 나고, 그중에 괜찮아 보이는 내용들을 큐레이션 해서 배운 틀에 맞추어 작성해나가다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력서와 자소서 속에는 내가 아닌 타인이 보이기도 한다.


인사담당자의 눈에 들기 위해, 수많은 경쟁자들 속에 채용되기 위해 적어 내려가는 꾸며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진짜 반 가짜 반일 것이다. 누가 더 잘 포장하느냐가 역량의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훈련이 되어지고 형식과 내용도 정해진 틀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 낙오되고 싶지 않아서, 평균은 되고 싶어서였던 때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성실하지 않은 적이 없고, 늘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 같은 공허함이 들 때, 내가 가진 역량과 이력으로는 원하는 기업에서 일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자각했을 때, 자존감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해질 때 우리는 쓸모가 없는 인간이라고 낙인찍힌 것 같은 절망에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그 ‘소속’을 위해 이토록 에너지와 감정을 쓰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뒤로하고 오늘도 일단은 이력 한다.


스스로가 “어디 다녀?”가 아닌 “무슨 일해?”라는 질문에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답할 수 있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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