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상품을 기획하다.

by 하루


검색량 1,120.

상품 수 10,016.


숫자만 보면, ‘될 수도 있겠다’는 감이 왔다.

하지만 감으로는 못 판다.

직접 보고, 손에 쥐어봐야 진짜 판단이 가능했다.

상위 노출된 스토어에서 몇 개를 골라 샘플 주문을 넣었다.

배송은 빠르게 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박스를 열자, 반지가 투명 지퍼백에 덜렁 담겨 있었다.

설명서도, 브랜드 로고도, 종이 패키지도 없었다.

행운을 담았다는 말이 무색했다.


‘내가 이걸 선물로 받는다면 기쁠까?’

아니다. 기억에도 안 남을 것 같았다.

상품 자체보다, 그걸 대하는 태도가 실망스러웠다.

그 실망은 곧 아이디어로 바뀌었다.

‘내가 팔면, 다르게 팔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엔 상품만 봤다.

이제는 그 상품이 담기는 구성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상세페이지를 살펴봤다.

상품명 대부분이 이랬다.

“은반지 / 학업 반지 / 여자 반지 / 친구 선물 / 심플한 은반지”


문제는, 어디에도 ‘물고기’라는 단어가 없다는 거였다.

그림 하나쯤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물고기는 상징이다.

행운, 번영, 다산, 자녀의 성공…

동양권에서 오랫동안 좋은 징조로 쓰여 온 문양이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

아이의 합격을 바라는 엄마에게,

이 반지는 단순한 액세서리 이상의 의미일 수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판매자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많이 검색되는 모양이니까 올렸을 뿐이었다.


“내가 만들면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의미까지 함께 전달되는 상품으로.”

먼저 포장.

지퍼백은 안 된다.

고급스러운 종이 박스로, 선물처럼 전달하고 싶었다.

작은 종이봉투까지 함께 담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관리용 구성품.

은반지는 변색이 쉬우니 폴리싱 천을 넣고,

정품 은임을 입증하는 보증서도 준비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작은 응원 메시지를 담은 감성 카드도 추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다음은 상품명.

‘물고기 은반지’는 반드시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단순 나열은 안 된다.

검색에도 걸리면서 감성적으로 보여야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물고기 은반지 925 실버 수험생 선물 학업 모녀 우정 링”

‘검색에 걸리는 문장’과

‘사고 싶게 만드는 문장’은 다르다는 걸 느꼈다.

각 키워드를 연관검색으로 조회해보고,

키워드 도구에서 데이터를 확인했다.

이름 하나에도 설계가 필요했다.

이쯤 되니, 이건 단순한 판매가 아니었다.

상품을 하나하나 기획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있는 걸 가져와서,

그걸 어떻게 ‘예쁘게 보여줄까’만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고객이 원하는 마음을 먼저 상상했고,

그 마음을 어떻게 구현할지,

포장부터 구성, 설명, 이름까지 거꾸로 설계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팔 것인가도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수험생을 둔 부모

자녀를 응원하는 엄마

친구에게 작은 응원을 전하고 싶은 대학생

그들에게 이 반지는, 하나의 ‘메시지’였다.

가격은 너무 낮게 잡지 않기로 했다.

도금 제품과 경쟁하려면 끝이 없다.

정성 있는 구성으로 신뢰를 사는 전략을 택했다.

상품은 아직 등록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팔리고 있었다.

이건, 내가 만든 첫 번째 ‘진짜 상품’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팔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고 싶은 이유를 설계하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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