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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에 Aug 13. 2022

6. 공시생

대학에 복학하고 이사무는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건축공학과를 선택한 것은 건설업에 종사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사무의 아버지는 건축전공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말씀하셨었다. 이사무의 어머니 역시 건축보다는 치의대에 가서 치과의사가 되기를 희망하셨다. 그런데 이사무는 매일 병원에서 아픈 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의사가 되기도 싫었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주로 만나야 하는 검사나 변호사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서점에서 건축잡지를 보게 되었다. 어릴 적 반지하집에 살 때 나중에 크면 정원이 있는 멋진 단독주택에서 큰 개를 키우며 살고 싶었던 소망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그 집을 설계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건축공학과를 선택한 것이다.

복학 후 첫 방학에 큰 기대를 품고 선배들이 일하는 설계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데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겠다는 이사무의 꿈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무너져 내렸다. 존경하던 선배들은 건물의 창의적인 디자인을 하기보다는 오토캐드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밤새 도면을 그리는 엔지니어에 더 가까워 보였다. 결국 좋은 집안에서 자란 해외 유학파 건축가가 디자인을 하면 국내 4년제 대학을 나온 졸업생들은 공장에서 상품을 찍어내듯이 도면을 생산해내는 단순 반복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급여 수준도 100만 원 후반대의 열정 페이에 머무르는 수준이었다.

이사무의 다른 선택지 중 하나는 대형 건설회사 입사였다. 실제로 이사무의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대기업 입사를 위해 학점을 관리하고 영어시험을 보며 스펙을 쌓고 있었다. 건설회사에서 현장근무를 할 경우 연봉은 부족하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 이사무도 정기적인 소득 없이 사업의 재기를 준비하는 아버지와 어렵게 생계를 책임지고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건설회사에 들어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이사무의 성향상 매일 거친 일용직 근로자를 상대해야 하는 건설회사가 맞지 않으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보라고 제안하셨다. 이사무도 구청에서 공익근무를 할 때 건축과 계장님을 보면서 공무원의 삶도 괜찮겠구나 생각을 했었기에 일단 학원을 알아보았다.

그렇게 이사무는 기술직 공무원 시험 수험생들에게 가장 평가가 좋은 종로구 인근의 학원을 등록하고 공시생의 삶을 시작했다. 일단 목표는 최단시간 내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아르바이트도 못하고 학원비와 교재비까지 많은 돈이 들어가니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사무는 많은 고민 끝에 2년 정도 사귀던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녀는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통화를 하면 도저히 헤어질 수 없을 거 같아 문자를 보냈다.

"난데.. 우리 그만 헤어지는 게 좋을 거 같아"

"갑자기 왜? 내가 미국 가는 거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건 아니고. 나 내년 시험에 꼭 합격해야 돼서 정말 공부에만 올인해야 할 거 같아. 미안해"

"그래도 이렇게 문자로 얘기하는 건 아니지. 만나서 얘기하자"

"정말 미안해. 나 이미 결심을 해서 어쩔 수가 없어"

"오빠랑 이렇게 헤어지고 싶진 않았는데.. 알았어..."

이사무는 2년 넘게 만난 여자 친구에게 문자로 이별을 통보하는 것이 얼마나 예의 없는 행동인지 알았지만 당시 상황이 너무 절실했기에 그녀에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만약 정말 인연이라면 훗날 이사무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에 다시 만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후 모든 지출을 최소화했다. 점심은 매일 김밥 한 줄로 때우고 저녁은 학원 앞 가장 저렴한 백반집에서 해결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정말 힘들고 우울할 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맥도널드의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가끔씩 쉬는 시간에 학원 근처에 있는 인사동을 걸을 때면 해맑게 웃으며 즐거운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이사무도 훗날 공무원이 되면 반드시 여자 친구와 그곳에 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추억하겠노라 다짐했다.

학원 과정이 다 끝난 이후에는 집 근처 독서실에서 고등학생들과 함께 열공을 했다. 친구들이 하나, 둘 대기업 건설회사에 입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올수록 더욱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도 건설회사로 갈걸 그랬나? 계속 불합격하면 어떻게 하지. 사람들이 다 나를 실패자로 보겠지?"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이 들수록 이사무에겐 더욱 절실함이 생겼다. 그 절실함으로 매일 잠자는 시간 7시간과 밥 먹고 잠시 쉬는 시간 3시간을 제외한 14시간을 공부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음 해 봄부터 국가직 9급, 서울시 7급 시험을 봤다. 결과는 모두 불합격이었다. 시험을 직접 경험해보니 몰라서 틀리는 문제보다는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풀지 못하는 문제가 많았다. 직접 경험해보니 합격, 불합격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관리였다. 그래서 이사무는 그때부터 실제 시험시간에 맞춰 문제를 푸는 연습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 국가직 7급 시험을 보았다. 연습한 대로 모르는 문제를 잡고 고민해서 시간 부족으로 쉬운 문제를 틀리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전체 과목 모든 문제에 고르게 시간을 배분해서 내가 맞출 수 있는 문제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였다. 공무원 시험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이고 결국 커트라인 근처에 대부분 수험생의 성적이 몰릴 것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1~2개 문제만 더 맞히자는 생각으로 시험을 치렀다. 

필기시험의 결과가 발표되는 날 이사무는 긴장이 돼서 컴퓨터 화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만약 떨어진다면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할 것 같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한쪽 눈만 겨우 뜨고 합격자 명단을 보았다. 그러다 화면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서 이사무의 수험번호를 발견했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직 최종 합격이 아니라 필기 합격일 뿐이었다. 다음날부터 공무원 시험 카페에 들어가 면접시험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했다. 면접시험은 워낙 수험생이 많다 보니 3일에 나누어 치르게 되었는데 이사무는 3일째 날짜에 배정되었다. 그런데 1일 차 면접이 끝나고 카페에 기출문제에 대한 정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사무는 모든 유형에 대해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프레젠테이션을 할 내용을 기출문제별로 정리해서 시간에 맞는 발표를 준비하고 개인 압박면접에 대해서도 맞춤형 답변을 준비했다. 시험 당일 다행히 준비한 대로 문제가 나와 미리 연습한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압박 면접 마지막 질문을 받게 되었다.

"만약 공무원으로 합격하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자라면서 반지하 또는 원룸에서 힘들게 자랐습니다. 제가 만약 건축직 공무원이 된다면 건설교통부로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업무를 하고 싶습니다"

면접시험이 끝나고 이사무는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제 부모님의 인생이 아닌 이사무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해 건축직 공무원 경쟁률은 200대 1에 근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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