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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에 Aug 13. 2022

5. 오디션

이사무는 어릴 때 크게 수술한 이력이 있어 병역 4급 판정을 받고 훈련소에 입소하였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그곳에서도 학벌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였다. 조교들은 수시로 "서울대 손들어. 4년제 대학 손들어"를 외쳤다. 그들이 고급 인력이라고 판단했는지 전공이 뭔지 물어보고는 훈련시간에 다른 임무를 부여했다. 이사무는 건축공학이 전공이라서 일주일에 한 번씩 조교들이 나누어주는 판에 표를 그리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시간에 힘든 훈련을 받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훈련소에서 나와 근무지인 구청에 와서도 학벌에 따른 차별을 경험하게 되었다. 담당 공무원이 버스에 올라와 한 명씩 이름을 부르고 부서와 업무를 알려주었는데 주 업무는 행정보조였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내근직이었다. 알고 보니 먼저 이름이 불린 이들은 4년제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교통지도과 소속으로 사계절 내내 밖에서 일하는 외근직이었다. 이사무는 세무과 소속으로 민원 창구에서 세금고지서를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곳에서 28개월 일하면서 이사무는 공무원에 대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되었다. 세금이 체납되어 압류를 풀어달라고 담당공무원에게 욕을 하며 침을 뱉는 트럭운전사, 손가방에 벽돌을 가져와서 위하는 조직폭력배 등을 보며 공무원 생활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바로 옆 창구에 있던 건축과 직원과 계장님은 이사무가 건축전공인 것을 알고 친절하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특히 건축계장님은 외모도 뛰어나고 젊은 나이에 계장이라는 직급을 달고 있는 것이 멋져 보였다.

공익근무 기간 동안 이사무는 압구정동에서 경험한 힙합 열풍에 빠져 퇴근 시간만 되면 신촌에 있는 마스터플랜이라는 힙합클럽으로 직행하였다. 그곳에서 힙합 공연을 보면서 이사무도 유명한 래퍼가 되어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뜻이 맞는 친구들과 힙합그룹을 결성하고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다니던 대학까지 자퇴를 하고 음악에 올인한 친구와 듀엣으로 오디션을 보기로 했다. 먼저 스튜디오를 예약해서 함께 만든 세 곡을 녹음하여 데모 음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음반을 우편으로 마스터플랜에 보냈다. 얼마 후 드디어 마스터플랜 관계자에게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마스터플랜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오디션 음반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일단 1차는 통과하셨어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2차 오디션은 클럽에서 오프닝 공연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가능하시겠죠?"

"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일단 1차 오디션은 통과하였고 2차 오디션은 클럽에서 오프닝 공연으로 합격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드디어 이사무의 생애 첫 공연 날짜가 잡힌 것이다. 그것도 꿈에 그리던 마스터플랜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그날부터 이사무는 홍대 앞 연습실을 빌려 주말마다 몇 시간씩 공연 준비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공연 날이 되었다. 공연 전 이사무는 동경하던 마스터플랜 소속 래퍼들과 함께 대기실에 있었고 그들과 같은 무대에서 공연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 오늘의 오픈 공연이 시작됩니다"

"여러분들께 처음 인사드리는 그룹입니다"

"Q~~ ZIN"

드디어 이사무가 속한 그룹의 오프닝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장은 언제나처럼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이사무는 걱정과 달리 전혀 긴장하지 않고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이사무는 'Last One'과 '다시 또 시작이란' 총 2곡을 무사히 마치고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다음으로 인피닛 플로우, 데프콘 등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사무는 그동안 바라던 꿈이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혹시 최종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후련한 기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마스터플랜에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마스터플랜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오디션 결과 말씀드릴게요. 안타깝지만 우리 클럽에서 같이 공연하지 못하게 됐어요. 열심히 하셨는데 이렇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후에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도 힙합클럽이 새로 생겨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오디션 겸 공연을 하였는데 마찬가지로 합격을 하진 못했다. 이사무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힙합 음악은 좋아하는 취미로 남기기로 마음을 먹고 대학에 복학신청을 하였다. 돌아보면 그때의 시간이 이사무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삶을 즐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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