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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Aug 01. 2023

라면 없이 살기


라면을 먹지 않은 지 7개월이 지났다. 다이어트를 한 것도 아니다. 먹고 싶은 걸 억지로 참은 것도 아니다. 그냥 먹고 싶은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이상하다. 라면이 생각나지 않다니. 분명 지난해만 해도 이따금 생각나곤 했는데 이젠 정말 라면을 찾지 않으려나? 과연 연말까지 내가 라면을 먹을지 말지 혼자 내기라도 하는 양 스스로를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정말 그렇게 되면 상이라도 줘야지 싶다. 흡사 사람이 개과천선한 느낌이니까.


라면을 안 먹거나 못 먹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다. 특히나 우리 집에서는 라면이 떨어지는 일이 드물었다. 장을 볼 때마다 이번엔 무슨 라면을 살지 고민해야 했다. 5개입 라면을 종류별로 2~3개씩 사서 주방 선반을 채우는 게 일상이었다. 국물 라면, 짜장 라면은 기본이었고 여름엔 비빔면이 빠지지 않았다. 덕분에 라면을 자주 먹었다. 많이 먹을 땐 거의 매일 먹은 적도 있다. 라면 봉지에 적힌 조리법대로만 끓여 먹는 게 아니라 다양한 라면 요리를 해 먹었다. 라면으로 볶음면, 파스타를 만들어 먹거나, 라면사리를 떡볶이나 김치찌개에 넣어 먹기도 했다. 요리를 곧잘하는 편이었지만 만사 귀찮을 땐 라면이 제일이었다.


신기하게도 오래전 일로 느껴진다. 그럴 만도 한 게 라면을 사두지 않은 지 꽤 되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라면을 먹지 않기 시작한 건 벌써 2년 가까이 되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후로 인스턴트 라면을 비롯한 가공식품을 먹지 않고 식단 관리를 철저히 해 왔다. 식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하던 초반에는 가공식품을 의식적으로 멀리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레 찾지 않게 되었다. 그때 일을 계기로 식습관이 완전히 달라졌다. 가공식품을 배제하고 통곡물, 과일, 채소 등을 주식으로 하는 자연식물식을 하고 있다.


물론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더 먹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가끔 라면을 먹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나면 따라서 먹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라면이 나오는 영상을 일부러 보지 않으려 피하기도 했다. 원래 라면이란 건 누가 먹으면, 냄새를 맡으면, 절로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니까. 그만큼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자극적이다. 라면 맛이 그리워 몇 개월에 한 번씩 라면을 끓여 먹곤 했다.


오랜만에 맛본 라면에 대한 감상은 '맛있지만 역시 불편해!'였다. 라면만 먹으면 자동반사로 콧물이 나오는 터라 애초에 라면에 대한 인상이 좋을 수가 없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새삼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래, 라면은 먹고 나면 만족감이 떨어지는 음식이었지.' 비염이 있는 나는 라면을 먹으려면 각오를 해야 한다. 몇 젓가락을 먹고 나면 곧바로 콧물이 줄줄 흐르기 때문. 한 바탕 코를 풀고 나면 내가 식사를 한 건지 코를 푼 건지 싶다. 비워진 라면 그릇 옆에 수북이 쌓인 휴지를 보는 기분이란.


생각해 보면 오랜 시간 미련했던 것 같다. 순간의 맛을 포기하지 못했고, 건강을 살피지 못했다. 남이 끓여 준 라면이 제일 맛있는 걸 보면 매번 그렇게 맛있던 것 같지도 않은데. 습관이란 그래서 무섭다. 지금 내게 라면이란 '불편함을 감수하고 먹을 정도는 아닌 음식'이 되어버렸다. 먹고 후회하고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학을 떼게 된 게 아닐까. 라면이 아니라 '알면서도 먹는 나'에 말이다.


지금 내가 라면을 안 먹는 가장 큰 이유는 일회용 쓰레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평소에 장을 볼 때도 비닐이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으려 하고 있기 때문에, 한 끼 식사에 그만큼의 비닐 쓰레기가 나온다는 건 지금의 소비 패턴과 맞지 않은 일이다. 간편식의 편리함에 가려진 이면을 바로 보고 나니, 인스턴트 라면 한 그릇의 만족은 너무도 짧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식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라면을 여러모로 무서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라면을 먹을 때마다 비염 때문에 콧물을 흘리면서도, 불편해하면서도 먹는 내가, 그게 싫으면서도 또다시 먹고 싶어지는 라면이. 사실은 라면이 아니라 안 좋은 걸 알면서도 하는 내 모습이 싫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안 무서운 정도는 되었다. 이러다 또 라면이 먹고 싶어 질지도 모르지만. 아는 맛보다 더 무서운, 안 먹던 음식도 먹게 만든다는 '고향의 맛'으로 해외에 나가면 라면이 생각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그제야 필요한 음식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언제든 어느 때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을 터.


이제는 예전처럼 라면을 즐겨 먹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어렵게 찾은 건강한 입맛과 식습관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더는 맛으로만 음식을 소비하지 않으니까.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음식이 건강한 나를 만든다고 믿는다. 담백한 음식에서도 다채로운 맛의 세계가 있고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몸소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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