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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Aug 02. 2023

게임 없이 살기


요즘은 게임을 하지 않는다. 게임은 오랜 시간 내 취미였다. 학업이나 일이 바쁠 때는 아니더라도 여유가 있을 땐 주로 게임을 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놀이터보다는 온라인 게임에서 어울려 놀았던 추억이 있지만, 게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성인이 된 이후였다. 대학생 때 휴학을 하면서 게임을 현실의 도피처로 삼게 되었다.


게임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당히 즐기면 건전한 취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정신적으로 유익한 활동인지는 모르겠다. 게임을 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반대로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니까. 농장 운영 같은 힐링 게임들과 다르게 승리와 패배가 있는 랭킹 게임에서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과 눈살이 찌푸려지는 욕설을 너무도 쉽게 내뱉는 사람들이 활개를 친다. 매너가 좋은 유저들도 있지만, 익명성에 숨어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비매너 유저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게임에 있는 차단과 신고 기능을 적극 활용했지만, 모욕적인 말을 듣더라도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다. 그런 점도 게임에서 마음을 떠나가게 만든 이유 중 하나다.


취업을 하고 일을 시작하면서 정신없이 바쁘고 몸은 축 나니 퇴근 후엔 그냥 쉬고 싶었다. 플레이 타임이 긴 PC 게임은 더욱 하기 어려웠다. 컴퓨터 앞에 앉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주말에 어쩌다 한 번씩 즐기곤 했지만 차츰 게임에 대한 흥미가 사그라들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한 게임은 농장을 운영하는 모바일 게임이었는데,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무료함을 달래며 혼자 소소하게 즐기는 정도였다. 그런데 모바일 게임에는 보통 매일 미션을 달성하면 보상을 주는 '일일 퀘스트'가 존재한다. 바쁘고 피곤할 땐 게임 속의 미션들이 귀찮은 존재였다. 현실 속의 일일 퀘스트도 버거운 터. 화면 속 작은 보상을 얻기 위해 습관처럼 폰을 들여다보는 걸 그만둬야지 싶었다.


결정적으로 게임에서 손을 떼게 된 건 책을 읽기 시작한 무렵이다. 독서의 재미를 알고 나니 책만큼 재미난 게 없었다. 지금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필사도 하고 낭독도 하고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감상을 정리하며 리뷰도 남긴다. 게임에서 캐릭터를 키우는 일의 재미와 만족은 짧지만, 독서가 주는 여운은 오래간다. 기록이 남고, 내 안에 쌓이는 내 것이 있다. 게임을 하지 않아도 무료하지 않은 건 게임보다 더 몰입하고 싶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나를 풍부하게 채울 수 있는 활동들로 여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렇게 글을 공유함으로써 경험을 나누는 일도 의미가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취미까지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의 내적 성장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게임은 순간의 즐거움만 제공했을 뿐, 나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어떤 결과물을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일상에서는 순간순간 나를 의미 있게 하는 것들로 채워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나를 느끼고 알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마도 게임과 멀어진 건 가상 세계로 현실 도피를 떠나는 것보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기술이 발달하면서 게임 업계도 가상현실 세계에 더욱 주목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제 내 시선은 더욱 내 안을 향한다. 로그인해야만 볼 수 있는 현실 같은 가짜 세계보다 '진짜 세계' 속 '진짜 나'와 함께하고 싶다. 화면 속 캐릭터와 배경을 꾸미는 대신 내가 사는 공간을 가꾸고 내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내 몸을 살피고 나와 대화하는 일이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기쁨이자 행복이었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즐거움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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