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 안 나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요 며칠 양파가 들어간 음식을 먹은 터였다. 평소에는 오신채*를 먹지 않아서 몸에서 특별한 체취가 나지 않는 편이다. 양파는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채소지만 어느 순간 냄새 때문에 즐겨 먹지 않는 음식이 되었다. 이제는 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음식이랄까. 양파는 몇 달에 한 번 요리할 때 쓰는 게 전부다. 이번에도 거의 반년 만에 먹은 참이었다.
*오신채 : 불교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음식(마늘, 파, 부추, 달래, 홍거). 한국에서는 홍거 대신 양파를 금한다.
양파 같은 향이 강한 음식을 먹으면 체취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한 건 오신채를 먹지 않다가 오랜만에 양파를 먹고 나서부터다. 신기하게도 소변에서 바로 냄새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양파를 마지막으로 먹었던 건 지난겨울이었는데, 겨울에는 땀을 흘리지 않으니 체취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여름에는 땀 냄새에서 확실한 차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먹은 양파는 맛있었지만, 이렇게 몸에서 냄새가 나니 역시 자주 먹고 싶지는 않아진다. 이따금 특별한 요리를 할 때 먹도록 하자. 양파는 되도록 익혀 먹으려고 한다. 사실 양파는 요리에 활용하기 좋은 채소다. 양파만 넣어도 음식의 풍미가 달라지니까. 강한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나로선 양파가 최고의 향신료다. 게다가 양파는 풍부한 단맛을 가지고 있어 설탕이 따로 필요 없다.
풍미하면 마늘이 빠질 수 없지만, 왠지 마늘은 생으로 먹으나 익혀 먹으나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이었다. 마늘만 먹으면 속에서 가스가 찼다. 겨우 한 쪽을 먹더라도. 그걸 알게 된 후로 일찍이 마늘은 직접적으로 섭취하는 걸 피해 왔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 한들 내 몸과 맞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랴.
마늘을 안 먹으면 김치는 어떻게 하냐 물을 수도 있겠다. 평소 김치를 즐겨 먹지 않아서 큰 문제가 없지만, 마늘 없이도 얼마든지 김치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사찰에서는 김치를 담글 때 생강을 대신 사용한다고 한다. 아삭한 김치의 식감이 먹고 싶을 땐 채소를 소금에 절여 먹곤 한다. 갖가지 양념을 더하지 않아도 소금만 있으면 충분하다. 오히려 강한 양념 맛이 채소 본연의 맛을 가린다. 단맛을 원한다면 사과, 배, 감 등 과일을 함께 넣으면 된다. 지난겨울 무와 사과만으로 김치를 담가 먹어 봤는데 생에 처음 만든 김치의 맛이 아주 훌륭했다.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입맛 덕이 아닐까.
한국인이라고 다 마늘을 사랑하는 것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먹어 왔지만 내 몸과 맞지 않다는 걸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불교에서 오신채를 금하는 이유는 강한 향과 자극적인 맛이 정신 수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엔 음식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는데 실제로 경험해 보니 그 뜻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몸은 정직하다. 무슨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자극적인 향과 맛은 식사의 즐거움을 줄지는 모르나 마음을 쉽게 들뜨게 하는 법. 기분이 들뜨는 음식은 가끔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행히 슴슴한 음식이 입에도 몸에도, 그리고 마음에도 잘 맞다. 매일 먹는 담백한 음식 덕분에 차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없이도 살 수 있는 것 44. 오신채
- 없어도 괜찮은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