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결 Sep 21. 2023

요리를 포기했다

푸드 미니멀라이프


요리를 포기하자 음식이 더 맛있어졌다. 건강한 요리란 갖은양념과 복잡한 과정을 뺀 재료 본연의 맛과 영양을 살린 요리였다. 요리에서 양념과 기름을 걷어 내자 음식 본연의 맛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극적인 입맛에서 벗어나니 감춰져 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자연식물식을 접하고 경험한 사실이다.


나는 제법 요리 솜씨가 좋았다. 중학생 때부터 라면을 끓여 먹기 시작한 탓인지 주방과 친숙했다. 귀찮을 때면 라면과 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대신했지만 두부조림, 계란말이, 어묵볶음, 진미채볶음, 가지나물, 김치찌개, 된장찌개, 미역국, 오이냉국 등 반찬과 찌개, 국을 만들어 집밥도 잘 챙겨 먹었다. 떡볶이, 김밥, 김치볶음밥, 파스타, 볶음 우동부터 부침개, 잡채, 카레, 밀푀유 나베, 콩나물 불고기까지 웬만한 요리는 뚝딱 만들었다. 팬케이크, 크로플, 프렌치토스트... 디저트도 부지런히 챙겨 먹었다. 혼자서도 잘 챙겨 먹고 내 요리를 가족들에게 대접하기도 했다. 나는 요리를 좋아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바빠지면서 요리란 피곤한 일이 되었다. 집밥 대신 편의점 도시락,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아졌다. 요리가 마냥 귀찮았다. 돈만 지불하면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집 앞에 넘쳐 나는데 애써 요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내가 힘들게 일한 시간으로 매끼 식사를 사 먹었다. 그렇게 요리와 멀어졌다.


예전에 내가 했던 요리를 살펴보면 하나같이 기름진 요리라는 게 특징이다. 기름이 들어간 요리는 건강상의 문제도 있지만 가장 먼저 뒷정리가 번거롭다. 프라이팬도 닦아야 하고 가스레인지도 정리해야 한다. 기름때를 지워야 하니 설거지도 오래 걸린다. 요리를 할 때면 소스가 옷에 묻는 일이 허다했다. 양념이 튀지 않아도 옷에 베인 기름 냄새 때문에 매번 옷을 갈아입어야 했고 그만큼 빨래가 쌓였다. 나는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설거지와 빨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치러야 하는 과제인 줄 알았다. 그래서 요리가 버거워졌다. 쉬는 날까지 그런 수고로움을 떠안고 싶지 않았으니까.


불 앞에서 지지고 볶고 싱크대에 설거짓거리가 쌓일 만큼 부산을 떨어야,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만 맛있는 요리인 줄 알았다. 그런 집밥을 가족들에게 대접해야 하는 줄 알았다. 집밥이면 다 건강한 음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정성과 사랑을 담는다고 생각했던 요리가 사실은 가족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리였다. 기름과 갖가지 양념에 들어간 첨가물뿐만 아니라 그 요리를 하며 발생하는 유해가스는 요리하는 나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더 이상 불 앞에서 씨름하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음식에 이것저것 집어넣지 않기로 했다. 요리를 포기했다.



냄비 하나로 만든, 식감이 살아있는 가지밥




요리를 포기하자 식사의 만족감이 더 커졌다. 치킨, 피자, 짜장면, 탕수육, 포케를 시켜 먹고도 돌아서면 더 맛있는 음식을 갈구하던 내가 처음으로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만족을 경험했다.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입맛이 문제였다는 것을, 입맛만 바꾸면 단순한 음식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만족을 매일 매 끼니 누릴 수 있구나, 행복이 멀지 않구나를 깨달았다. 만족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을 매일 먹는 음식에서 찾게 된 것이다. 요리에 힘이 빠진 순간 집밥이 쉬워졌다. 2년이라는 시간을 외식 한 번 없이 보냈다. 나 하나쯤 먹여 살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요리에 담았던 정성을 제철 과일과 농산물로 채우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보다 조용히 과일을 냉장고 칸에 채워 넣었다. 깨끗하게 씻은 과일과 고구마, 감자, 옥수수를 삶아 식탁 위에 올려 둔다. 내가 가족들에게 기울이는 정성이란 이것이 전부다. 단출하지만 최소한 가족들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 훼손되지 않으며 가족들의 건강도 해치지 않는 식탁이니까.


이제 내가 매일 하는 요리라곤 냄비로 밥을 짓는 게 전부다. 귀찮으면 2~3일에 한 번씩 밥을 하고 밥 대신 고구마를 쪄 먹기도 한다. 실은 밥 하나면 되지 않을까? 갓 지은 밥에 반찬 하나. 추운 겨울엔 밥 한 그릇에 뜨끈한 국. 그것으로 충분하다. 밥에 김만 싸 먹어도 맛있으니 더 이상 욕심이 나지 않는다. 애써 보태지 않는다. 단출한 밥상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



복잡한 요리란 있어도
어려운 요리란 없다.



자연식물식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다. 요리란 자고로 쉬워야 하는 것이라고. '먹고' 사는 일이 어려워선 안 된다고 말이다. 요리가 가벼워지자 삶도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자연식물식?

(WFPB: Whole-Food Plant-Based diet)

: 통곡물, 과일, 채소, 콩류, 견과류, 해조류 등 식물성 음식을 최대한 정제, 가공하지 않고 먹는 식단


자세한 요리법은 이 매거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