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결 Sep 24. 2023

선물을 거절한다고 마음도 거절하는 건 아닌데


생일이 다가오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혹시 필요한 게 있느냐고. 나는 선물에 대해서는 미리 물어봐 주는 게 좋다고 말했던 터였다. 그런데 문제는 특별히 필요한 게 없다는 것, 더 이상 선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정확히는 지인들과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그만둘 참이었다. 계속해서 묻는 친구에게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고 다급하게 붙들었다. 안 그래도 할 얘기가 있었다고.


필요한 것은 내가 살 수 있다. 더군다나 새 물건은 되도록 구입하지 않고 중고거래를 하기로 결심했으니 선물이 반가울 리 없었다. 내 입맛에 맞는 선물을 요청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불필요한 소비를 지양하는 것도 환경을 고려하는 것도 좋지만, 내 마음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편안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절충안을 고심하기보다는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쪽이 서로에게 최선의 방법이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친구를 만난 날 선물을 주고받지 말자고 제안했다. 이 말을 꺼내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유는 '정 없어 보일까 봐.' 친구의 마음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동안 묵혀 왔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생일을 핑계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시간이 안 되면 축하 인사 한 마디면 충분하고, 잊고 지나가도 이해한다"며 진심을 전달했다. 그러면서 혹시 아쉽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말했다. "내가 주지 못해 아쉬운 것보다 네가 편한 대로 해주고 싶어." 자신의 아쉬움보다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친구에게 고마웠다. 역시 솔직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선물의 참된 의미를 알고 있는 친구를 통해 지난날의 나를 톺아 보게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 '주는 기쁨'을 이해한다. 지난 생일에도 선물을 거절하고 받지 않고서는 상대의 생일날이 되자 선물을 한 아름 안겨 주었다. 심지어 나는 포장 없이 선물을 받아도 괜찮으면서 줄 때는 예쁘게 담아 주고 싶어서 정성껏 손수 포장도 했다. 그때 느꼈다. '나는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큰 사람이구나. 이 행복을 나에게서도 타인에게서도 함부로 뺏어서는 안 되겠구나.' 그리고 내가 너무 일방적이었다는 것을, 주고 싶은 마음만 앞서 배려가 부족했음을 반성했다. 내 마음이 상대에게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나의 이중성을 발견한 동시에 이 일을 계기로 좀 더 나은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가까운 친구와는 선물을 주고받지 않는 방법을 숙고해 보자.' 그렇게 생각했건만 선뜻 행동으로 옮기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의견이 중요하고, 챙겨 주고 싶은 나의 마음도 비워야 가능한 일이었다.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야 이런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 나누는 대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엔 진짜 용기를 냈다. 고맙게도 친구는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주었다.


어느새 지인들에게 선물 하나조차 하기 까다로운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불필요한 물건을 들이는 걸 싫어하고, 지나친 쓰레기가 나오는 일을 피하고,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 무슨 선물을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해도 골치 아픈 일이다. 그런데 선물을 거절하면서 바뀐 생각은 반대로 더 편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매번 선물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좋다고 하는 사람이 적어도 부담되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돈이 없어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음엔 카페가 아닌 공원에서 보자며 친구와 헤어졌다. 꼭 어디를 가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잠깐 만나서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살면서 주고받아야 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선물을 주고받는지가 아니라 어떤 관계를 이어나가느냐가 아닐까? 그 중심에는 마음이 있다. 마음은 아끼지 말아야지.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 보고 싶었다, 잘 지냈느냐는 안부 인사, 너를 응원한다 같은 표현에는 인색하지 말자. 조금은 물건 대신 마음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다른 친구에게도 선물을 주고받지 말자고 얘기해야지. 또 한 번의 용기를 내기로 했다. 선물을 거절한다고 마음도 거절하는 건 아니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내가 손해 보고 사는 게 낫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