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기, 비건 라면, 비건 피자, 비건 만두, 비건 아이스크림... 비건 식단은 다채롭다. 육류와 해산물, 달걀과 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 없이 원하는 맛은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비건 시장이 확대되고 다양한 비건 식품들이 출시됨에 따라 비건 식단을 실천하기 시작한 사람들도 비건 음식을 경험하면 고기를 안 먹어도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제로 비건 가공식품은 채식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는' 비건과 비교했을 때 기름, 설탕, 가공식품을 제한하는 자연식물식을 엄격한 식이요법으로 생각하기 쉽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자연식물식을 계속하며 관점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자연식물식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었을 무렵, 비건보다 자연식물식이 더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글은 비건에서 자연식물식으로의 전환이 어려워 망설이고 있는 사람, 건강한 채식을 하고 싶은 사람, 지속가능한 식단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임을 밝힌다.
비건이 아닌 자연식물식을 하는 이유
식품성분표를 보지 않아도 된다
한 번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시중에 판매하는 비건 아이스크림을 검색해 봤다. 대부분의 아이스크림에는 우유가 기본으로 들어간다. 일반 마트의 아이스크림 매대에서 비건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굉장히 좁다. 아이스크림에서 우유만 빠졌다고 비건인 것은 아니다. 이름 모를 동물성 성분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조목조목 따져 봐야 한다. 우유가 원료인 성분만 살펴봐도 유청, 유지방, 유고형분, 카제인 등이 있다. 이렇게 비교적 쉬운 이름이라면 어렵지 않겠지만, 문제는 가공식품에 들어간 첨가제는 너무도 많고 복잡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유화제로 많이 쓰이는 L-시스테인, 글리세린지방산에스테르는 동물성인지 식물성인지 개별적인 확인이 따로 필요하다. 즉, 성분 표기만으로 이 음식이 완전 비건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비건인 줄 알고 먹었는데 알고 보니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그냥 모르고 먹어야 한다.
이렇게 음식을 먹을 때마다 비건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하니 사람들이 채식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음식을 앞에 두고도 어려운 이름부터 찾아가며 공부해야 하니까. 물론 음식에 대한 공부는 필요하다. 하지만 왜 음식을 먹으면서 이 음식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따져야 하는가? 애초에 알 수 없는 복잡한 이름으로 뭉쳐진 음식을 왜 먹어야 하는지부터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공장에서 찍힌 식품성분표는 불투명하고 불친절하다. 이름 표기만으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다. 나는 그걸 들여다보고 고민할 시간에 음식을 있는 그대로 씻어서 먹고 요리해서 먹기로 했다. 머리가 지끈 거리는 '이름 공부'는 진즉 포기했다. 자연식물식은 식품성분표를 들여다볼 일이 없다. 가공식품을 소비하지 않으면 이 모든 고민은 해결된다.
그냥 먹을 수 있다
식당에 가서 음식마다 고기 육수나 멸치 육수로 끓였는지, 우유나 달걀이 들어갔는지 물어가며 따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매번 비건 식당을 검색해 가며 찾지 않아도 된다. 자연식물식은 그냥 먹으면 된다.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으니 도시락을 준비하는 데 큰 수고로움이 들지 않는다. 집밥도 쉬워진다. 매 끼니 음식을 선택하는 데 큰 고민이 없으며 항상 내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더불어 외식 비용도 절감된다.
건강한 채식
채식이라고 해서 모두 건강한 음식인 것은 아니다. 각종 가공식품에 들어 있는 식품 첨가제들을 보자. 비건을 건강한 식단으로 규정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식물성 기름과 설탕을 비롯한 인공첨가물 때문이다. 지나치게 가공된 정크푸드로 식단을 채우면 비건도 건강에 좋은 식단이라 할 수 없다.
반면 기름과 설탕, 가공식품을 배제한 자연식물식은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바람직한 영양 식단이다. 단백질과 암에 대해 연구한 책 <무엇을 먹을 것인가>의 저자 콜린 캠벨 박사는 자연식물식이라는 식이 요법으로 심장질환을 치료할 수 있으며 당뇨 환자가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음식과 질병의 연관성을 밝히며 건강을 위한 균형 있는 식물성 식단으로 일반적인 채식이 아닌 자연식물식을 제안한다.
생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자연식물식을 하며 생활 쓰레기가 대폭 줄었다. 라면, 과자, 냉동 만두 등 각종 인스턴트식품부터 파스타 소스, 샐러드 소스 등 갖은 소스와 양념, 통조림, 캔 음료 등을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식생활에서 발생되는 쓰레기가 적다. 자연식물식은 생활 쓰레기도 최소화할 수 있는 식단이다. 내 몸 건강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지구 환경을 위해서도 최적화된 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를 열거했음에도 자연식물식은 여전히 제한적이고 엄격하고 자유롭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생각도 존중한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고 단언하지는 말자. 비건에게 자연식물식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우리가 음식을 선택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음식을 맛으로만 선택하는 사람, 종교의 이유로 특정 식습관을 고수하는 사람, 건강 상의 문제로 식이를 제한해야 하는 사람, 다이어트를 위해 닭 가슴살과 단백질 보충제만 먹는 사람, 동물권과 환경 보호를 위해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 등 저마다의 이유로 음식을 선택한다. 선택은 자유다. 그리고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자연식물식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내 입맛과 건강, 내가 추구하는 생활방식과 가치관까지 지킬 수 있는 식단이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나를 더욱 자유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