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없이 살기

by 하루결


작은 화장품 수납함을 사용했다. '미니 화장대' '화장품 정리함'이라는 명칭으로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는 흰색 플라스틱의 수납함. 화장품에 먼지가 쌓이는 게 싫어서 몇 해 전 장만한 뚜껑 있는 화장대였다.


미니 화장대는 위에 손잡이가 달려 있어 가볍게 들고 옮길 수가 있었다. 앞뒤로 여닫을 수 있는 투명한 칸에는 기초화장품과 클렌징 용품을 세워서 보관하고, 아래에 있는 네 개의 작은 칸에는 립스틱, 아이브로우,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같은 색조 화장품과 면봉, 화장솜, 속눈썹, 렌즈 등 갖가지 미용 도구를 보관했다. 거울도 의자도 없지만 화장품이 많지 않은 내게 이 작은 화장대는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외출이 줄어들면서 화장을 할 일도 덩달아 줄어들었다. 한동안 토너와 수분크림만 들락날락하자 이 화장대도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을 비우고 나니 화장품 살림도 간소하게 추려졌다. 기초화장품과 몇 가지 색조 화장품만 남기고 수납함을 모두 비웠다. 화장을 계속하더라도 이렇게 큰 수납함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꽉 들어찼던 화장대가 이제는 너무 커 보였다.


화장대가 없으니 토너와 수분크림, 바디로션을 방 한쪽에 있는 하얀 서랍 위에 올려 두고 사용했다. 새로운 화장대였다. 올려놓은 물건이 몇 개 되지 않으니 화장품에 쌓이는 먼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용 후 가볍게 한 번씩 닦아 주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또 한차례 변화가 찾아왔다. 기초화장품도 쓰지 않게 되면서 이 간이 화장대도 말끔히 비워졌다. 지금 이곳엔 책이 올라가 있다. 내 방에서 화장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예쁜 원목 화장대를 갖고 싶었던 적도 많았는데. 그 소망들은 다 어디로 흩어진 걸까? 신기한 일이다.


언젠가 다시 화장품을 쓴다 한들 화장대는 따로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욕실 선반, 주방 선반, 현관 선반, 서랍 위, 책상 위... 집 안 어디든 올려두고 쓰면 되니까. 갖가지 화장품에 대한 욕심도 예쁜 화장대에 대한 목마름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


'다시 화장을 할지도 몰라.' 내 마음을 나도 몰랐다. 티끌의 미련과 가능성으로 남겨 두었던 몇 가지 화장품과 먼지 쌓인 화장대를 정리하며 오랫동안 기약 없이 방치했던 유예 기간에 마침표를 찍는다.





안녕, 고마웠어.





없이 살기 61. 화장대
keyword
하루결 리빙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739
이전 16화스타일러 없이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