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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Oct 07. 2023

고데기 없이 살기


중학생 때부터 고데기를 사용해 온 나는 외출하기 전 항상 머리를 스타일링했다. 머리카락 끝을 가볍게 말거나 머리 전체에 굵은 웨이브를 넣고 다녔다. 타고난 손재주에 오랜 고데기 경력을 자랑하는 나는 미용실에 가서 사진을 내밀면 "손님 이건 고데기예요"라고 하는 예쁜 머리를 손쉽게 연출할 수 있었다. 구불구불 제멋대로 삐져나오는 곱슬머리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고데기는 꼭 필요했다. 등교할 때, 출근할 때, 여행 갈 때, 어디든 챙겨 가야 하는 고데기는 내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휴대용 고데기는 일찍이 정리를 했고 웨이브를 넣는 고데기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최근 고데기를 사용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는 걸 알았다. 샴푸를 비누로 바꾼 후로부터 머리를 감고 말리기만 했다. 이제는 머리를 하지 않고 잘도 다닌다. 최근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른 터라 손질이 한결 수월해졌다. 머리를 말리면서 머리카락 끝을 손으로 잡아 안으로 말아주면 그럴듯하게 모양이 잡힌다. 평소 머리를 묶고 다닐 때가 많아서 머리 모양이 어떻든 크게 개의치 않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방치되어 있던 고데기도 슬슬 정리를 해야지 싶었다.


고데기를 정리하려는 부차적인 이유도 몇 가지 있다. 첫째, 전기를 사용한다는 것. 이왕이면 불필요한 전력 소모도 줄이고 싶다. 둘째, 머릿결이 손상된다는 것. 모발에 뜨거운 열을 가하기 때문에 헤어 에센스로 관리를 해줘야 한다. 머리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기 시작한 지 꽤나 시간이 흘렀기에 모발에 이것저것 발라가며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셋째, 화상 위험이 있다. 고데기를 사용하면서 이마랑 손이 몇 번 데인 적이 있다.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위험한 건 사실이다. 부주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을 굳이 열어두지 않는 쪽이 안전하다. 고데기를 사용하면 여러모로 감수해야 할 점이 많다.


무엇보다 자연스럽지 않다.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데 헤어스타일이 크게 기여하는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자연스럽게 연출해도 인위적인 모습인 건 매한가지다. 예뻐 보이기 위해 신체의 일부인 머리카락을 훼손하는 것도 실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래도록 괴롭혔던 머리카락을 쉬게 해주고 싶다. 그 노력으로 힘썼던 나도 쉴 차례다. 그리고 건강하게 머리를 기르고 싶어졌다. 그동안 외모 관리를 책임져 준 고마운 고데기를 깨끗이 닦아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해야겠다.





없이 살기 64. 고데기



에필로그


얼마 전 욕실에서 양치질을 하면서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미용실에 가지 않고 대충 자른 제멋대로인 단발머리에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이 예뻐 보여서 혼자 배시시 웃었다. 말갛게 웃는 얼굴도 예뻤다. 꾸미지 않은 내 모습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외모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수더분한 나를 받아들이게 된 걸까. 아무래도 어떤 모습이어도 나를 사랑하겠다는 강인한 믿음이 싹트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리 없어. 내게 불어온 이 간지러운 바람이 나는 제법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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