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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Oct 12. 2023

스타일러 없이 살기


독립하면 가장 먼저 장만하고 싶었던 것은 스타일러였다. 빨래에 진심인 내가 외출복을 관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는 가전이었으니. 일찍이 외출복은 대부분 손빨래를 해온 터라 귀가 후 부지런히 빨래를 해야 했고 쉬는 날까지 빨래 전쟁을 치르느라 진이 빠진 터였다. 스타일러는 빨래 더미에서 나를 구원할 (머)신으로 보였고 마음속 위시리스트 목록에 첫 번째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겨울 코트를 제외한 모든 옷을 손빨래하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었다. 마냥 귀찮고 버거운 일로만 여겼던 빨래가 두 해가 지나며 어느새 나를 돌보는 기본 행위이자 하루의 소중한 의식이 되었다. 내 손으로 주물주물 옷의 때를 벗기고 물기를 짜고 햇볕에 널어 말린 뒤 해가 지기 전 잘 마른 보송한 옷을 걷어 캐기는 일. 일상을 가꾸는 사소한 일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를 몸소 배웠다. 옷의 가짓수를 줄이고, 세탁기에 의지하지 않는 손빨래를 통해 자립을 이루면서 스타일러에 대한 부푼 꿈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환경을 생각한 스타일러?


스타일러가 환경 보호를 한다고 광고하는 것을 보았다. 세탁기로 옷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물과 세제를 많이 사용하고 옷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배출되어 환경 오염을 일으킨다고 말이다. 반면, 스타일러를 이용하면 한두 번 입은 옷을 드라이클리닝을 하거나 매번 빨지 않아도 되고 소량의 물만 사용하여 스팀으로 살균, 소독하며 쉽게 관리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스타일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일으키는 환경 오염, 스타일러를 사용하면서 전기를 소모하는 것, 그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소모와 환경 오염, 그리고 스타일러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환경 오염은 왜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어떤 제품을 환경과 지속가능성과 연관 지어 말할 때는 그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이점뿐만 아니라 생산되고 폐기되는 과정까지 따져 봐야 한다.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폐기될 것인가의 논의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최근 여러 브랜드에서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가져다 쓴다. 소비자들의 죄책감을 덜고자 하는 이러한 마케팅은 진실을 보는 눈을 교묘하게 가린다. 스타일러가 정말 환경을 생각하는 물건인가? 그리고 정말 필요한 물건인가? 현명한 소비자라면 그것부터 물어야 한다.




땀에 젖거나 오염되지 않은 옷이라면 햇볕과 바람에 가볍게 말려 입으면 된다. 빨래 횟수를 줄이고, 세탁을 할 때는 최대한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 세제를 사용하고, 자연 건조를 하는 것. 유해 물질을 발생시키는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한 옷을 줄이고 친환경 소재의 옷을 입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옷에 음식 냄새가 배는 게 싫다면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문제의 가장 쉬운 해결은 그 원인부터 제거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세탁기도 스타일러도 건조기도 필요치 않다. 나 하나 입히는 데 물, 해와 바람 그리고 조금의 노동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기계에 모두 빼앗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인간 생활의 기본인 '의식주(衣食住)'에 '의(衣)'가 들어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옷을 손으로 빨아서 햇볕에 말려 입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시에 편리함이라는 이름에 빼앗긴 생활의 주권을 되찾는 일이다. 나는 옷을 더 줄이기로 했다. 내 손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옷이란 더 이상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니까.





없이 살기 66. 스타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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