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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Oct 19. 2023

알람 없이 살기


알람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니, 질문을 바꿔 보자. 알람이 꼭 필요할까? "띠리링" 이른 아침 온 집안사람들을 다 깨우는 커다란 알람 소리, 라면의 면발을 사수하기 위해 재는 4분 타이머,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출발 전 때맞춰 울리는 친절한 알람까지 우리는 제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알람이라는 기능으로 미리 '때'를 준비한다.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간다.


최근 일기를 쓰기 시작하며 '몇 시에 밥을 먹었다', '몇 시에 무슨 일을 했다', '몇 시경 잠들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그 일을 몇 시에 했는지가 과연 중요한가.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매일 하루를 시간으로 쪼개어 살고 있다. 일상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숫자로 잘라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걸까? 이 글은 시간 속에 사는 현대인으로서 작은 반란을 꿈꾸는 이야기다. 이 글에서는 오늘날 모든 것을 숫자와 수치로 가늠하는 시대에 대한 소심한 반항으로 숫자를 최대한 표기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것만 숫자로 표기했음을 밝힌다.


아침 기상은 알람 없이 일어나고 있다. 제시간에 자기만 하면 늘 비슷한 시간에 일어난다. 조금이라도 늦게 잠을 자면 내일 하루의 시작도 따라서 늦어진다. 인간의 생체시계란 정확하다. 알람 없이 일어나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나의 수면시간이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를 측정한다.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맞춰 잠자리에 일찍 든다. 그러면 알람 없이도 일어날 수 있는 몸이 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오직 나의 몸의 시계를 믿는 것이다.


일찍이 스마트폰의 알람은 모두 꺼두었다. '무음 모드'를 사용하고 있다. 전화가 오면 울리는 벨 소리, 메신저와 문자 알람, SNS, 사용하는 앱의 모든 알람의 소리는 'off' 상태다. 내 폰이 유일하게 소리를 내는 건 재난문자가 왔을 때다. 그래서 가끔 큰 소리가 나면 온몸이 화들짝 놀라 곤두서곤 한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소리지만 그렇다고 끌 수는 없어서 켜 두고 있다. 거실과 집안 곳곳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전화벨 소리도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는 벨 소리에 부산하게 몸을 움직여 스마트폰을 찾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로 알려진 미니멀리스트 사사키 후미오는 하루 중 SNS을 사용하는 시간을 따로 정해두고 그 시간에만 사용한다고 한다. 중요한 연락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전화, SNS, 메신저의 알람은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일을 방해할 때가 많다.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는 것 같다면 나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스마트폰의 알람들을 꺼두는 방법을 추천한다.


이렇게만 보면 알람 없이 잘 지내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나도 타이머가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건 바로 밥을 지을 때다. 딱 10분만 재면 된다. 이따금 고구마를 찔 때 20~30분 시간을 잰다. 내가 하는 모든 요리에는 정량이라는 게 없지만 시간이라는 레시피는 존재한다. 요리할 때 시간을 재는 것 말고 내가 특별히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 없다. 음식의 맛과 식감을 결정하는 이 '시간'이라는 필수 조미료를 어떻게 하면 내 힘으로 첨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봤다. 타이머 없이 요리를 하기 위해 고안한 한 가지 방법은 그 시간 불 앞에서 지켜보며 멍 때리기! 그 시간에 명상을 해볼까 싶었지만 명상을 하다가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말 테니까. 더군다나 밥이 탈 새라 명상에도 집중이 되지 않을 터다.


이제는 전기밥솥에 밥을 짓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냄비와 타이머에 의존하고 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 두고 10분 동안 다른 일을 한다. 나는 여전히 시간의 틈에 살고 있다. 결국엔 시계를 보지 않고는 밥을 지을 수 없는 걸까? 스마트폰과 시계가 없으면 나는 밥도 못 먹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좌절감이 몰려온다. 만약 내가 몸으로 10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니, 정확히는 시계를 보지 않고도 밥이 된 때를 아는 것이다. 그러려면 쌀이 익는 동안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야 감각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재지 않고 오로지 밥이 익어가는 냄새와 소리, 나의 감각으로 밥을 지어 보고 싶다. "바로 지금이야" 하고 자신감 있게 불을 끄는 나를 상상한다. 타이머 없이 밥 짓기를 목표로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겠다. 재밌는 실험이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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