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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Oct 24. 2023

치킨 없이 살기


어쩌다 채식을 하게 된 사연


떡볶이 다음으로 좋아했던 음식, 가장 많이 시켜 먹었던 배달음식,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먹었던 음식, 이틀 연속 심지어 두 끼 연달아 먹기도 했던 음식, 신메뉴가 나오면 먹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던 음식,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눠 먹던 음식, 내가 사랑해 마다않는 음식, 그건 바로 치킨이었다.


그런 내가 치킨을 먹지 않게 되다니, 정확히는 먹고 싶어 하지 않다니. 이 변화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글로 쓰기로 했다.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이기도 해서. 나는 왜 치킨을 시켜 먹던 손을 멈추었는가.


발단은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죽도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 체기를 달고 사는데 치킨이 가당키나 했겠는가. 신물이 올라오는 날 육류와 기름진 음식을 멀리하고 내 손으로 만든 음식만 먹었다. 덕분에 건강을 회복했고 그때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자연식물식을 해오고 있다.


자연식물식을 시작한 뒤로 치킨을 먹었던 적이 몇 번 있다. 한 번은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은데 내가 떠올린 맛있는 음식의 대명사란 만만한 치킨이었고, 가까운 치킨 가게에 들러 포장을 해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어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즐기려던 기대감은 이내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이제 기름과 자극적인 양념이 불편한 입맛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달 후 어느 날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식은 프라이드치킨을 몇 조각 집어 들었다.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고 '내가 치킨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어난 터였다. 그렇게 베어 문 치킨은 '먹을 수는 있는데 또 먹고 싶지는 않은 맛'이었다. 식은 치킨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수개월이 지나 양념치킨이 먹고 싶은 건지 치킨에 묻은 양념이 먹고 싶은 건지 헷갈려서 일단 먹어 보기로 했다. 한 입에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고 짭짤한 빨간 양념의 맛이라는 걸 알았는데 그 소스마저도 물려서 혼이 났다. 치킨을 먹고 난 뒤 속이 니글거려서 어지럽기까지 했고 실로 오랜만에 속이 부대끼는 경험을 하면서 다시는 이 음식을 입에 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맛본 치킨의 맛은 모두 예전에 즐겨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내가 왜 치킨을 좋아했는지 의문까지 갖게 했고, 앞으로는 맛으로라도 치킨을 찾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안겨 주었다.


이후로 치킨이 더는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은 치킨을 봐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 요즘 치킨이 얼마나 가격이 치솟았는지는 모르지만 '저 돈이면 고구마 10kg 한 상자, 일주일 먹을 과일을 사는데'라며 대충 치킨 한 마리 값이 일주일 치 식량으로 머릿속에서 자동 환산이 되곤 한다. 집에서 가족들이 치킨을 뜯고 있으면 가장 먼저 치킨을 포장한 일회용 쓰레기가 눈에 들어오고 기름이 연상되는 것이 전부다.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지만.


병아리가 치킨으로 튀기기 좋은 알맞은 크기로 자라기까지 맞아야 하는 많은 항생제와 성장 촉진제, 지저분한 사육 환경, 상품이 되어야 하는 몸에 흠집을 내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잘려나간 부리들,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산 채로 분쇄기에 갈리는 수평아리들, 좁은 닭장 안에 갇혀 살아가는 생명의 삶을 애써 상기시키지 않아도 이제는 치킨이 음식으로 와닿지 않는다. 흔히 채식으로 전환하며 으레 겪는 고초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고기를 두고 '먹고 싶다'와 '먹지 말아야 한다'로 싸우는 큰 내적 갈등 없이 나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채식에 정착했다.


먹어야 할 이유보다 먹지 말아야 할 이유가 많은 음식, 더 이상 맛있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된 치킨 그리고 소고기, 돼지고기보다 닭고기를 좋아했던 나와 이별했다. 이 글은 송별회에 떠나가는 치킨에게 보내는 헌사 같은 것이다. 지난날 이 몸의 살과 피가 되어 주었던 치킨들에 감사를 담아 이 편지를 띄운다. 내 사랑은 여기까지지만 추억 속의 음식이 되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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