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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Nov 09. 2023

어묵 없이 살기


채식을 시작하고 내가 아쉬웠던 건 어묵이었다. 떡볶이에 들어간 어묵만이 아니라 어묵 자체를 정말 좋아했다. 떡볶이에는 꼭 어묵이 들어가야 했고, 반찬으로도 어묵볶음을 즐겨 먹었다. 잡채를 만들 때도 고기 대신 어묵을 썼고, 라면을 먹을 때도 어묵을 넣기도 했고, 어묵을 잘게 썰어 우동 면발과 함께 볶음 우동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어쩌면 고기보다 어묵을 더 좋아했는지 모른다.


집에서 혼자 먹는 별미가 있었다. 추운 겨울 납작한 사각어묵을 길게 접어 나무젓가락에 하나씩 어묵꼬치처럼 꽂아서 끓는 물에 넣어 몇 분 익힌 다음 꺼내어 간장에 찍어 먹곤 했다. 퍼지지 않은 탱탱한 식감의 어묵을 선호했다. 따로 육수를 내지 않아도 어묵은 가볍게 익혀 먹기만 해도 맛있었다. 맛도 좋고 저렴한 사각어묵은 장을 볼 때면 한두 개씩 꼭 장바구니에 담아 오는 식재료였다. 그만큼 어묵을 좋아했던 내가 2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어묵을 입에 대지 않았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가끔은 어묵이 생각나곤 했다. 사실 먹고 싶어서 못 참을 만큼, 밤새 생각나서 미칠 만큼 그리운 음식은 아니다. 내가 그리운 건 어묵의 맛보다는 그 음식과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향취라는 걸 안다. 손쉽게 먹던 정겨운 맛에 대한 그리움이고, 추운 겨울 길거리 분식점에서 먹는 뜨끈한 어묵 국물과 계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익숙함의 잔향에 사뭇 그리워지는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내려놓음으로써 부스러진 사소한 미련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그리 아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정말 먹고 싶으면 참지 않고 먹도록 나를 내버려 두었다. 나를 괴롭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비건 어묵도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니 먹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껏 어묵을 먹지 않았다는 건 그리 힘들지 않았다는 뜻이고 결국에는 그리 원하던 게 아니라는 뜻이다.


처음엔 기름과 밀가루로 만든 가공식품이어서 먹지 않았다. 지금 내가 어묵을 먹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어업이 미치는 해양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 때문이다. 어묵이 포장된 일회용 쓰레기가 나오는 것도 불편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애써 먹지 않은 게 아니라 이런 이유들 때문에 자연스레 먹고 싶지 않아졌다. 더 이상 맛있게 먹을 수 없을 뿐, 그저 내 마음이 편치 않을 뿐이다.


고기는 아쉽지 않아도 어묵은 조금 아쉬웠노라 고백한다. 하지만 소, 닭, 돼지들이 고기가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듯 물살이들도 물고기가 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내게 먹여주던 사랑이 바다 생명에게 조금은, 아주 조금은 옮겨 간 게 아닐까.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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