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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Nov 27. 2023

시인이 된 히키코모리


나는 시를 쓰는 히키코모리다. 글을 쓰면 작가이고 시를 쓰면 시인이다. 그리하여 나는 시인이다. 시집을 내거나 등단한 적은 없지만. 시인이 되는 데 인정과 자격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2023년 어느 봄날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쓰면 된다. 세상을 담는 눈과 시상을 글로 옮기는 일 말고 무엇이 필요한가.


내가 시를 쓰게 된 연유는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 '시를 쓰게 되었다'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시를 쓰고 있었다.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시를 쓰며 해소되는 감정들이 있었다. 우울시계가 켜지면 나는 시로 도망을 간다. 어디에도 두지 못하는 마음을 시에 놓고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시라는 새로운 안식처가 생겼다. 정처 없이 떠돌던 나는 그렇게 시라는 언덕에 안착했다. 그 언덕에 올라 나직이 혼잣말을 하다 내려오곤 했다. 시는 내게 일기장이었다.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그리운 얼굴들을 시로 그렸다. 시를 쓰니 살 것 같았다.


시 짓기는 글쓰기보다 앞서 시작한 일이다. 그렇게 시작한 취미가 지금까지 이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문학에 대한 동경 혹은 허영, 한낱 감성 놀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저 시상이 떠오를 때, 시를 쓰고 싶을 때, 시가 써내려 가질 때만 시를 썼는데 어느덧 나는 100편이 넘는 시를 썼다. 잠시 잊혔다가도 시를 붙들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나는 시를 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시인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좀처럼 흩어지지가 않았다. 시를 쓴다는 게, 문학을 한다는 게, 예술을 한다는 게 사치는 아닐까 고민했다. 삶을 뛰어넘는 예술이란 없다고 단언해 온 터라 나의 신념과 욕구 사이에서 갈등을 빚곤 했다.


내 마음이 묻는다. 이 정도는 바라도 되지 않겠느냐고. 내가 나에게 이 정도는 원해도 되지 않느냐고. 이따금 시 한 편 쓰고 살아가겠다는 게 그리 큰 욕심은 아니지 않느냐고. 나 바라는 것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도 되지 않느냐고. 시를 쓰고 살며 삶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면, 시를 쓰고 살며 나 하나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감히 허락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나 시 쓰며 살아가게 해달라고 내가 나에게 빌어 본다. 어느새 시에 대한 애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이것도 욕심일까 의심하고 줄다리기를 하면서도 시를 놓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상 정면돌파를 해보는 수밖에. 신춘문예에도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그리 중요치 않다. 나는 이미 시인으로 살고 있으니까. 내 이름 석 자 적힌 시집 한 권 없다 한들 아무렴 어떠한가. 나는 시를 쓰며 살아가련다. 시와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내 삶이 곧 시가 되고 내가 쓴 시처럼 살아가는 게 나의 소망이다. 또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내가 쓴 시 한 편 두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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