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책하는 히키코모리다. 히키코모리라고 해서 집에만 있지는 않는다. 중요한 일이나 필요한 일이 있으면 외출을 하는 히키코모리도 있다. 가끔 친구와 약속이 있으면 나갔다 오기도 한다. 물론 두문불출하는 히키코모리도 있다. 외출을 기준으로 히키코모리냐 아니냐를 구별한다면 외출을 하긴 하지만 집에서 은둔하는 시간이 대부분인 나를 설명할 수가 없다. 히키코모리 지수라는 게 있다면 밖을 나가는 데 큰 거부감이 없어진 나는 '옅은' 히키코모리일 수는 있겠다.
나는 원래 집에 있는 걸 좋아했다. 약속이 취소되면 기분이 상하지 않고 되레 반기는 사람이다. 외부 활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빼앗기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타입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나는 밖에 나갈 일이 없어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히키코모리라는 것이다. 빼앗길 에너지가 없어서 에너지를 스스로 갉아먹기라도 하는 모양인지, 아니면 인간은 태초에 밖으로 나가 움직이며 살아야 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인지 아무리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집에만 있으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건강이 나빠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긴 이후 외출에 제한이 걸리면서 신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우울증도 생겼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도 꽃처럼 햇볕과 바람을 쐬어 줘야 하는 존재다. 꽃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 두 발이 우리에게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한 달 넘게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게 일상이던 내가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한 건 몸 건강이 나빠지면서부터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먹고 자는 불규칙적인 생활습관과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 생겼다. 식사를 하고 소화를 시키는 데에는 걷기가 최고라고 해서 식후에 30분씩 걸었다. 소화가 안 되니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 전까지 눕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에는 집 앞을 뱅글뱅글 돌다가 집 근처에 있는 산책로를 발견한 뒤로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루트를 변경했다. 몸을 낫게 하려고 한 달 넘게 매일 산책을 하면서 밖으로 나가는 게 익숙해졌다. 손수 만든 집밥을 내게 먹여야 하니 장도 직접 봐야 한다. 마트 배송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가서 장을 봐 온다. 동네에는 시장이 두 군데가 있는데 산책 삼아 조금 더 먼 시장을 다녀오기도 한다.
산책은 어렵지 않다. 장 보러 가는 것도 산책이 되고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는 것도 산책이 된다. 도서관에 다니면서 바깥공기를 쐬기 시작한 것도 외출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줬다. 산책을 하면서 건강도 회복되었다. 하루에 조금이라도 걷고 나면 잡념도 사라지고 글을 쓰는 데 집중력도 올라간다. 산책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크다. 좋은 걸 알고 나니 절로 하게 된다.
산책과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걸 히키코모리라고 모를 리 없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나갈 힘도 없어서다. 마음의 문이 닫혀 있어서다. 우리가 열어야 하는 문은 현관문이 아니라 마음의 문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우리가 일으켜야 하는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게 뜻대로 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이야기도 "운동하라"는 흔하고 뻔한 잔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냥 산책하는 히키코모리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도 살 수 있다고.
그래도 혹시 이 글을 보고 여기까지 함께한 히키코모리가 있다면 추천하는 산책 시간은 저녁이다. 처음부터 한낮에 나가는 건 무리일 수도 있다. 특히 여름에는 강한 자외선 때문에라도 저녁에 나가는 게 좋다. 다른 계절에는 햇볕도 쐴 겸 아침이나 낮에 산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 앞을 5분, 10분만 걷는 것도 산책이다. 산책을 운동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말 그대로 가벼운 산책, 햇볕 쬐기, 바람 쐬기로 생각하자. 나를 환기시킨다고 생각해 보자. 나에게 신선한 공기를 맡게 해 준다고 생각해 보자. 나에게 밤하늘을 보여 준다고 생각해 보자. 나를 산책시키자.
사실 이런 생각은 다 필요 없다. 그냥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자. 일단 나가면 나간 김에 조금 더 걷다가 들어오게 된다. 걷는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지만 분명 어제와는 다르다. 나도 모르는 새 내 마음에 바람이 통하기 시작한다. 몸을 움직인다는 건 그렇다. 내 생각과 의지보다 더욱 명확하고 확실하게 생기를 띄운다. 몸은 움직여 주는 만큼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산책을 안 한 날보다 산책을 한 날이 확실히 기분이 좋다. 내 몸은 복잡하고 게으른 나보다 단순하고 정직해서 입력 신호를 그대로 송출한다. 자고로 몸과 정신은 하나이니 자연스레 머리도 맑아진다. 이 선순환을 믿어 보자. 그냥 걷자.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는 나도 산책을 나가기 싫을 때가 많다. 날씨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곤 한다. 그렇지만 밖을 나서는 걸음을 쉬어가더라도 멈추고 싶지는 싶다. 지난겨울에는 춥다고 방구석에서 한껏 움츠러들어 있었는데 그럴수록 더 춥고 마음도 추웠던 것 같다. 올겨울에는 겨울바람과 정면돌파를 해볼 생각이다. 따뜻한 햇살이 하늘에 걸려 있는 오후에 느긋하게 산책을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