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구석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다. 미니멀리즘을 만난 건 내 인생의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밤낮과 계절 변화, 시간의 개념이 없는 히키코모리가 그렇듯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느 날처럼 유튜브 세상을 헤엄치고 있던 내게 미니멀리즘이 다가왔다.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간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만족감이 크다'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낼수록 행복하다'. 미니멀라이프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은 가히 충격이었다.
'어떻게 적은 것으로 만족하고 살아가지?' 믿기 어려웠다. 동시에 믿고 싶었다. 어쩌면 그동안 행복이 먼 존재로만 느껴졌던 이유는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가질수록 행복하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낡은 관념이 스러지는 순간이었다. 미니멀리즘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 시기 내게 미래란 없었다. 이룬 것도 없었고 이루고 싶은 것도 없었다. 가진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짐으로 느껴졌다. 모두 포기하고 싶었다. 오늘도 없었다. 그랬던 내게 '살아가는 데 많은 것이 필요 없다'는 사실은 그 어떤 위로보다 온기가 느껴졌다. 이 모든 짐을 하나둘씩 내려놓고 내게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일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내 삶을 내가 하나씩 채워갈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끝이 없는 긴 터널 속에서 출구를 찾은 듯했다.
나도 이제 이렇게 살 테다. 많은 것을 비우고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가는 미니멀리스트들처럼 앞으로의 삶을 가볍게, 홀가분하게, 단순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지난한 과거를 뒤로 하고 새로운 삶을 꾸리고 싶었다. 그렇게 미니멀리즘이 내 삶에 스며들었다.
유튜브 영상에서 접한 미니멀리즘 관련 도서를 하나둘 찾아 읽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미니멀라이프를 접하면서 애써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미니멀리즘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되었다. 나는 마치 스펀지처럼 미니멀라이프에서 새로운 삶에 필요한 자양분을 흡수했다.
가장 먼저 생활 습관의 중요성을 배웠다. 매일 깨끗이 씻고 청소하는 습관, 식사 후 바로 설거지를 하는 습관, 정리 정돈이 몸에 밴 습관이 새로 자리 잡았다. 내 몸과 생활공간을 단정히 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나와 집을 돌보는 일이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이 되었다. 집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좋은 집, 넓은 집이 아니라 좁고 작은 집이어도 예쁜 인테리어로 꾸미지 않아도 내게 필요한 것들만 갖춰져 있다면, 내 손길로 깨끗하고 단정한 집을 유지한다면 남부럽지 않은 안락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미니멀라이프를 통해 미래에 대한 불안도 사라졌다. 미래보다는 오늘을 생각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를 중심에 두게 되었다. 어떤 이름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보다 내가 그 일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내 일상을 지켜나갈 수 있는지가 보다 중요해졌다.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많은 돈을 벌려고 애쓰기보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생활로도 충분한 만족을 얻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자 내게 맞는 생활방식이라는 것도.
무엇보다 가장 큰 결실은 나의 기준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내가 세운 기준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나의 기준점을 먼저 생각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어릴 때 나는 주관이 뚜렷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막상 어른이 되어 보니 호불호만 강한 사람이 되었다.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이리저리 휘둘렸다. 생각이 많고 차분한 성격이긴 하지만 주변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분주히 움직였을 뿐 정작 내 생각을 깊게 파고들지는 못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내게 정말 맞는 일인지를 충분히 심사숙고하는 일에는 서툴렀다. 중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주관이 뚜렷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선택과 결정은 늘 어렵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흔들리더라도 나의 중심, 본질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미니멀리즘은 본질을 가리는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미니멀라이프를 통해 나는 제법 용감해졌다.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고 보다 유연한 사람이 되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뭐든 직접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만 추구하던 내가 미니멀라이프라는 새로운 길에 들어서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사람이 되었다.
살아가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이 사실 하나만으로 내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