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를 쓰지 않고 겨울 코트 1벌을 제외한 모든 옷을 손빨래하고 있다. 벌써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이불 빨래를 할 때만 세탁기를 돌린다. 이렇게 모든 옷을 내 손으로 직접 빨아 입게 된 계기가 있었다.
우리 집 빨래 대장은 다름 아닌 구형 통돌이. 언젠가부터 쿰쿰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세탁기를 청소해야 한다는 것도 전용 세제가 따로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보다 확실하게 청소하려면 업체를 불러 세탁기를 분해해서 청소해야 한다는데... 어째 일이 커지는 느낌이다. 전용 클리너로 열심히 청소해 보지만 세탁조 안에 붙은 때처럼 찝찝한 기분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세탁기가 빨래를 깨끗하게 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세탁기가 못 미덥기 시작했다.
세탁기를 바꾸는 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집에서 입는 옷들을 하나씩 손으로 빨기 시작했다. 그동안 속옷과 몇 가지 외출복을 손빨래하는 정도였다면, 가벼운 여름옷부터 두꺼운 겨울옷까지 내가 직접 빨아 입을 수 있는 옷들이 차츰 많아졌다. 처음엔 두꺼운 겨울옷은 물기를 짜는 게 어려워서 세탁기의 탈수 기능만 잠시 빌려 썼다. 그러다 지금은 그마저도 안 쓰는 경지(?)에 이르렀다.
일단 자신 있다. 발로 빨면 되니까. 단 조건이 있다. 먼저 솜과 분리된 가벼운 이불 커버여야 하고, 이불을 넣고 빨 수 있는 큰 대야가 필요하다. 문제는 탈수, 제법 무거울 텐데 혼자 힘으로 가능할까? 기모가 들어간 옷 하나 짜는 것도 제법 힘이 드는데, 이불은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둘이서 잡고 빙빙 돌려야 될 것만 같다. 빨래 친구를 구해야 할까. 확인하려면 직접 해보는 수밖에. 아직 이불 빨래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 모든 옷을 손수 빨아 입으니 괜한 자신감이 솟는다.
세탁기가 있으면 확실히 편리하다. 그렇다고 해서 손빨래하는 일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가끔은 편하다.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이제는 빨래가 쌓여 있는 게 더 불편하다. 내가 하면 금방 끝날 일을 굳이 세탁기에게 일을 주려고 차곡차곡 모으고 싶지는 않다. 빨랫감을 적립한다고 포인트가 쌓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매일 조금씩 하면 '일'도 아니지만 모아서 한꺼번에 하려면 정말 '일'처럼 느껴진다.
세탁기 없는 생활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세탁기의 있고 없음 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당연한 존재였다. 요즘은 옵션으로 세탁기가 있는 집이 많지만, 이젠 내 소유로 세탁기를 들일 생각은 없다. 집에 세탁기가 있어도 지금처럼 이불 빨래할 때만 써도 충분하다. 여차하면 근처에 있는 세탁소와 빨래방을 이용하면 되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손빨래도 요령이 필요하다. 세탁기를 돌리듯 빨랫감을 모아서 한 번에 하려고 하면 몸에 무리가 가고 힘에 부친다. 매일 조금씩 나눠서 빨래를 하는 게 수월하다. 샤워하면서 빨래를 하거나 그때그때 바로 빨면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지금은 물을 아껴 쓰기 위해서 수건과 가벼운 옷을 2~3장씩 모아서 빨래를 하고 있다.
세탁기를 관리하는 수고로움이 없다
손빨래를 한 옷이 더 깨끗하다
세탁기 소음이 없으니 언제든 빨래를 할 수 있다
전기가 절약된다
운동이 절로 된다
빨랫감이 쌓이지 않는다
옷감 손상이 줄어든다
물을 아껴 쓰게 된다
빨래와 욕실 청소를 한 번에 할 수 있다
체력이 따라줘야 한다
매일 조금씩 하면 힘들지 않지만 몸이 아프면 하기 어렵다. 그때 가서야 세탁기가 필요해지는 게 아닐까.
빨래 마르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무래도 세탁기 탈수 기능만큼 물기를 제거하기는 힘들다. 아침 일찍 널어 말리면 웬만한 옷은 하루 안에 다 마른다. 두꺼운 옷은 건조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물기 제거(탈수)하는 게 어렵다
빨래를 짤 때 손목과 팔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세탁기의 탈수 기능만 사용하거나 소형 탈수기를 쓰는 방법도 있다.
실내 건조하려면 물기 제거를 확실히 해야 한다
밖에다 널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지만, 물이 떨어질 수 있으니 실내라면 베란다 같은 공간에 너는 것이 좋다. 물기가 빠질 때까지 욕실에 두었다가 널거나, 건조대 바닥에 수건을 받쳐 두는 방법도 있다.
이제는 빨래(관리)가 쉬운지가
옷을 고르는 기준이 되었다.
세탁기 없는 생활을 지속하려면 지치지 않아야 한다. 몸도 마음도. 적당히 힘을 쓰고 나머진 해와 바람에 맡기고, 가끔 힘에 부칠 땐 세탁기의 힘을 빌릴 것.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있다. 생활의 힘은 꾸준함에서 나오는 법! 만약 힘들었다면 당장 그만두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가장 먼저 빨래를 한다. 너무도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다.
손빨래를 통해 물건에서 벗어난 생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것은 단순히 물건을 비움으로써 얻게 되는 가벼움보다 더 커다란 것이었다. 세탁기에 대한 못 미더운 생각으로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나에 대한 미더운 마음을 갖게 해 주었고, 기계에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생활의 영역을 한층 넓혀 주었다. 물건을 없애고 버리는 일로는 얻지 못했던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일주일 살기를 하러 떠난 여행지에서도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손빨래를 했다. 이제는 어디서나 옷을 빨고 널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해와 바람'만 있으면, 세탁기가 없어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내 옷은 직접 빨아 입을 수 있다. 정말 '빨래 걱정 끝'이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는 건 물건에서 자립하는 일. 그것은 또 다른 자유와 해방이다. 세탁기 없이 빨래하기. 처음이 어렵지,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다. 생활은 그런 거다.
없이 살기 5. 세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