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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May 09. 2023

커튼 없이 살기


이사를 오고 나서 내 방 창문에 커튼을 달지 않았다. 처음엔 귀찮아서 미루어 두었던 일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쓸모가 없어졌달까. 이제는 정말 커튼이 필요가 없다. 커튼 없이 지낸 지 어느덧 2년.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방에 커튼이 없어도 되다니! 꼭 창문을 블라인드와 커튼으로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분명 이사를 오자마자 커튼부터 다는 게 순서인데, 그게 당연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커튼을 달지 않으니 벽에 못을 박지 않아도 되고 못 자국을 염려할 일도 없다. 더는 커튼을 세탁하지 않아도 되고, 커튼의 먼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매일 같이 커튼을 걷지 않아도 된다. 그런 수고로움이 싹 사라졌다.


커튼이 꼭 필요하다면 추운 한겨울의 얘기이지 않을까? 매서운 한파가 찾아오면 가벼운 이불을 옷걸이에 고정시킨 다음 창틀에 걸어 두기도 한다. 그렇게 외풍을 막는다. 한결 따뜻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확실히 어두워서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젠 커튼 없는 창이 더 익숙한 몸이 되었다.






하얀 레이스 커튼이 있지만 더는 창을 가리고 싶지 않다.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예쁜 플라워 패턴의 커튼도, 짙은 색의 암막 커튼도 이제는 지나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보기 싫었던 창틀의 색깔도 지금은 정답기만 하다.


더 이상 빛에 예민해서 잠 못 들지도 않는다. 해가 뜨면 자연스레 눈을 뜨는 아침이 더없이 좋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한다. 커튼이 없으면 시간의 흐름이 선명히 보인다. 저녁부터 캄캄한 밤에도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으로도 방 안이 훤히 보일 때가 있다. 도시의 불은 그렇게도 밝다. 내가 애써 불을 밝히지 않아도 될 만큼. 아침에 스미는 햇살과 저녁의 희미한 빛을 벗 삼아 지내고 있다. 이 작은방에도 빛이 늘 함께하는 걸 느낀다. 커튼으로 가리고 살았다면 낮이 오는 줄도 밤이 오는 줄도 몰랐을지 모른다.


아마 이 집을 나가기 전까지 이 방엔 커튼이 달리지 않을 거다. 그대로 두어야지. 빛이 그대로 스미도록. 낮과 밤의 경계에서 나를 가리지 않도록. 그것을 모르고 지내기엔 너무도 아쉬운 빛이 내 방 창문을 두드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활짝 열어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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