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날이 훨씬 더 많은데도 사랑타령하는 친구가 있다. 죽기 전에 열렬히 사랑을 해보고 싶다며 꿈꾸는듯한 표정을 짓는다. 맑고 맑았던 소녀 때도 하지 못한 일을 지금은 할 수 있을까? 철이 나다 못해 세상이 훤히 보여 속물이 되어가는 자신이 안타까운 나이다. 이 나이에 사랑이 찾아온다면 메디슨 카운티의 메릴 스트립이 되는 거겠다. 상상만으로도 부정맥을 부추기는 일이다.
알토란 같은 자식을 둘이나 놓고서도 여전히 시선과 마음이 허공을 배회한다. 생활의 여유가 과해 집안 일도 남의 손에 맡기고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걸 다해도 허무하다. 이런 집일수록 속썪이는 사람도 없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차고 넘쳐 아무리 비싼 쇼핑을 하고 와도 쇼핑백을 풀지도 않은 채로 환불하기 일쑤다.
현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병을 얻은 친구들이 힘들어 눈물짓는 상황에 건강도 하늘을 날듯하다. 원래 하고 싶었던 것도 없고 이루고 싶어 안달이었던 적도 없다. 수월하기가 이보다 더할 순 없다. 이런 삶이 실제로 주어지면 무료해서 급성 도파민을 찾아 헤맨다. 일상이 쫄깃쫄깃한 산너머 산이 더 좋은 건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옛날엔 결혼이 목적이었던 때도 있었다. 조건부 만남에 삶을 던지고 책임과 허무로 삶을 채우고 나이가 들어간다. 사랑이 그리 쉬우면 모두가 사랑이라는 기억으로 꿈같이 살아갈 터이다. 세상 제일 어려운 것이 사랑이다.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헌신이 주재료니 더하다. 나를 내주고도 즐거워야 사랑이 성립할 터이니 그런 것이다. 그런 사랑조차도 어느 지식인은 자신의 이기심이라 불러대니 누가 자신을 던져 눈먼 사랑을 할 것이며 그 사랑에 목을 맬 것인가.
친구의 사랑타령에 네 사랑이 문제가 아니고 서른이 목전인 아이들의 사랑이 문제라 했다. 당연히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려야 할 나이인 아이들은 주변 누구도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취업이니 생계니 하며 사랑이 뭐냐 묻는 것 같다. 생계가 문제가 아닌 경우엔 더 큰 일이다. 출발하기도 전에 동력을 읽은 자동차 같다. 반짝거리는 외형에 최고의 스펙이지만 달릴 마음은 없다. 스포트라이트 밑에 전시용 삶이 즐비하다.
고속도로의 주행에 놀라도 보고 죽지 않을 만큼의 위험함에 경기도 나야 정상인 나이에 전시된 유리창 안에 온전히 놓여 움직일 생각이 없다. 비바람 따위, 땀방울 같은 건 모두 간접체험이면 족하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러간다. 현재는 가고 지난 기억이 된다. 아무런 흔적도 실수도 상처도 남지 않은 온전한 과거. 안도를 느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모른다. 그렇게 쌓인 지루한 천국들이 모여 내일의 지루한 미래를 낳는다. 시키는 일에 몰두해서 원하는 결과를 내주고 다시 편히 제 자리에 안주한다. 참을 수 없는 지루한 날들이다.
자신을 서서히 잃어가는 자리에 공허함이 들어차고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며, 자신을 찾아가라고... 뒤늦게 깨달음이 온다. 부딪히고 깨질 수 있는 모든 곳을 보호막으로 감아놓고 절대 이곳을 벗어나지 말라고 한다. 숨 막히는 지루한 천국에 산 대가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가 조금 멀미가 나지만 깨어있으라고, 스스로 내딛는 도로에 답이 있고 길이 있다고 알려준다. 불시에 들이닥치는 그 위험을 헤치며 가는 그 길이 비록 타인의 눈에는 충분해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온몸을 타고 오르는 경험으로 각인되는 순간임을 기억한다.
사랑이 특별한 게 아니다.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부딪히고 깨지며 얻어내는 감동의 결과물이고 인내의 소산이다. 즐거운 관심이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애정이다. 무덤덤한 일상과 안전지대에서는 가질 수 없는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젊은 날에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무모함이 자산이 되어 남은 날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상처든 영광이든 그 벅찬 감정을 경험해 보는 시간, 지옥이라 한 들 겪어 볼 만한 감정이다. 두려워서 피하고 푹신한 길만 걷다가 다리가 풀려 넘어지는 날까지 그리워하는 것이 그 '사랑'이니 말이다. 가슴뛰는 날이 그리운 날이다.
https://youtu.be/dmEU6-UQSgU?si=Z6Y723txCOYrmi4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