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점포를 구해서 일을 배우는 첫날, 사장님과 나란히 서서 일한다는 게 걱정이 됐다. 나는 이전 점포에서 일하면서 사회불안 장애를 조금씩 넘어설 수 있었다. 그 과정은 아주 서서히 이루어졌다. 일을 시작하고 1년 동안은 손님들이 나가면서 서로 소근거릴 때 등골이 쭈뼛 섰었다. 퇴근 때까지, 퇴근 후 다음날까지도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고민에 빠졌다. 교대하는 잠깐의 시간 동안도 옆에 다른 근무자가 있으면 내 손짓 하나하나가 의식되어 어색하게 허둥거리곤 했다. 그랬으니 누군가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을 한다는 건 또 다른 도전이었다. 게다가 동료도 아닌 사장님이 지켜보는 곳에서 일을 한다니. 상황을 감지하지 못해서 해야할 일을 지나치거나 엉뚱한 말을 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공기처럼 나를 감쌌다.
- 어떤 게 나아 보입니까? 정답은 없습니다.
삼각김밥과 줄김밥 진열법을 가르쳐 주실 때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하는 것을 듣고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늘 틀리면 어떡하지, 사람들의 기대에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 속에 살아왔는데 맞고 틀리고가 없다고 말하는 상사가 있다니. 그때 알았다. 나는 유니콘을 만났구나.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환상의 사장님을 만났구나. 사장님은 일에만 프로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데도 프로였다. 상사로서 지시만 하지 않고 내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셨다.
그 후로도 사장님과 한두 시간씩은 같이 일했다. 사장님은 급한 일이 없으면 내 업무를 도와주고, 손님이 없으면 계산대에 선 채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실수를 해서 뒤처리를 사장님이 하게 될 때마다 사장님은 말했다. "관계 없습니다. 저도 실수 많이 합니다." 관계 없습니다. 그건 사장님의 말버릇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눈밭을 걷다가 모닥불을 피운 것처럼 마음이 따뜻했다. 사장님은 손님이 불평을 할 때조차 손님 편을 들지 않고 내 입장을 대변해 주었다.
주말 근무로 바뀌어 혼자 일하게 되기 전까지 나는 언제나 출근 직전 점포 앞 벤치에 앉아 5분 동안 호흡명상을 했다. 사장님 말씀에 잘 집중하고 적절히 반응하기 위해서, 내 기분을 다스리고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기 위해서. 시간이 부족할 때는 걸어가면서라도 최대한 명상을 했다. 그럼에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죄송할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사장님과 나 사이에는 신뢰가 쌓였다.
늘 정해진 멘트 외에 몇 마디 나누지 않는 손님들과도 신뢰가 쌓여 있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우리 점포 손님의 대부분은 주변에 사는 단골들이다. 2년 넘도록 매주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내가 실수를 해도 짜증내거나 불평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 봉투값을 빠뜨려 계산을 두 번 하는 사소한 실수뿐 아니라 상품 수량이나 종류를 잘못 찍어 집에서 다시 편의점으로 오는 수고를 끼쳤을 때도 그렇다. 불편하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면 다들 별일 아니라는 듯 넘겨주었고, 환하게 웃으며 "괜찮아요" 또는 정중하게 "아닙니다" 하고 받아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상대의 심정을 헤아리려는 사람을, 되도록 개선책을 찾아나가려 애쓰는 사람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의 결과보다 진심을 봐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렇기에 내게는 편의점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보내는 일 한 번 한 번이 오랜 마음의 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일과 같았다. 한 겹 한 겹 마음에 안전감을 쌓아가는 일이었다. 편의점은 재활의 장이고 연습의 장이었다.
이 점포에서 나는 말하자면 재활의 2단계를 밟아 나갔다. 이곳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일대일 만남에도 자신 없던 나는 새로운 인연들을 맺는 데에 지금껏 소극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편의점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일대일 독서모임에 도전할 수 있었고, 다음에는 용기내어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오는 모임에 나갈 수 있었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 1박 행사에 참여해볼 수 있었고, 새로 알게 된 친구들에게 내가 아는 것들을 가르쳐주는 연습을 했고, 마침내 다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사회불안 장애를 넘어서고 ADHD 증상도 약을 먹으면서 호전되었다.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나날이라면 평화롭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안정이란 이런 것일지도 몰라. 그런데 모든 게 나아졌다고 믿을 무렵, 진정한 난관이 찾아왔다. 가까운 사람들과 이별하며 재발한 우울증이었다.
그 즈음 나는 마음이 힘들면 몸까지 기운이 쭉 빨린다는 걸 절절히 느꼈다. 계산대에 팔을 짚지 않으면 서 있기가 어려웠다. 심장이 아팠다. 배에 힘이 풀려 자주 쪼그리고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물건을 정리하다가 통로에 쪼그린 채 몰래 울었다. 울어야 살 수 있었다. 손님에게 돈을 받아넣다가 갑자기 눈이 붉어지고 목이 메는 일도 있었다. 사장님과 교대를 하고 나면 혼자 일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다행이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땐 공사구분을 생각할 여력도 없었다. 나는 호르몬의 노예였다. 웃음은커녕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가라앉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라도 내기 위해 애썼다. 손님들께 죄송하고 사장님께 죄송했다. 그래도 편의점에 나가서 일이라도 하고 있는 게 시간이 더 잘 갔다.
쉬는 날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그때도 나는 울음이 올라오는 것을 꾹꾹 누르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잠시 밖에 나가 전화를 받았다.
- 바람 씨, 요즘 몸이 안 좋아요? 예준이가 엄마랑 왔는데, 어제 이모가 몸이 아픈 것 같았다고 걱정하던데.
- ...정말 죄송합니다, 사장님. 요즘 좀 힘든 일이 있어서... 손님들께도 웃어드리고 해야 되는데... 신경 쓰시게 해서 정말로 죄송해요.
사장님이 CCTV를 찍어 아이의 사진을 보내주셨다. 잡담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초등학생 아이인데 나를 살피고 걱정했다니 뭉클했다. 한편 서비스직으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한 게 면목이 없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사장님이 대답했다.
- 그래서 얘기하는 게 아니고, 바람 씨가 안 힘들고 안 아파야 합니다. 손님들한테 안 웃어도 돼요. 마스크 껴서 뭐 티도 안나요. 바람 씨 마음이 편안해야지요. 바람 씨, 힘내세요. 다 지나갑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얘기할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하세요.
참았던 눈물이 터져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장이 직원에게, 손님들한테 웃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말해주는 마음은 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일에서의 성과보다 내 마음의 평안을 우선해 주는 마음이 인사치레만은 아니라는 것을 사장님을 아는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분발하고 싶었다. 사장님과 교대할 때 환하게 웃고 싶어서 점포에 들어가기 전에 웃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눈빛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평소에도 내 목소리와 몸 상태를 기민하게 감지하던 사장님이 내 기분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사장님은 자주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몸도 마음도 아프지 말고 빨리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바람 씨 힘내세요. 언제나 바람 씨를 응원합니다. 오늘도 힘든 몸으로 수고 많이 했습니다.'
문자를 받을 때마다 뭉클했고, 그 이상으로 너무도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두 달여를 더 고전했다. 공사구분 못하는 미숙한 사람은 정말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이미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내가 싫었다. 그런데도 불가항력이었다. 우울증이 얼마나 지독한 녀석인지 그때 제대로 맛을 본 것 같다.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사장님께 털어놓을까. 내가 사장이라면 몇 달간 업무 때마다 비실거리다 우울증이 있다고 고백하는 직원을 어떻게 생각할까. 당장 자르기까지는 못해도 적어도 그건 진상이고 밉상이다. 아무리 전에 일을 잘했어도 그럴 것 같다. 내가 정신차리지 못하는 것에 우울증이라는 핑계를 대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싶기도 했다. 모든 우울증 환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출근 직전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하루 14시간 이상을 누워있는 상황과 반복해서 지친 모습만 보여드리는 이 상태에 무엇이라도 전환점을 만들고 싶었다(나중에야 알았지만 이건 우울증 약의 부작용이었다). 계속 격려를 보내는 사장님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질려하실까 봐 두려웠고 그 두려움이 나를 더 침잠시킬까 봐 겁났다.
결국 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야 말았다. 빨리 회복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어서 나아질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장님은 내 메시지만큼이나 긴 답장을 보내오셨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군요. 말하고 싶지 않았을 텐데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요 바람 씨. 힘든 가운데서도 열심히 근무해줘서 고맙고 힘든 상황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말해줘서 고마워요. 어떻게 해야 바람 씨에게 도움이 될지... 큰 힘은 못 되어 드려도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바람 씨!'
사장님은 그런 분이다. 자물쇠 비밀번호를 3자리 중 1자리밖에 기억하지 못해도 기억력이 좋다고 칭찬하고, 퇴근할 때는 수고했다는 말을 최소 세 번 이상 건네고, 때때로 내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는 분. 주 14시간 알바에게 명절 선물과 밸런타인 초콜릿을 챙겨주고, 튀김 기름을 갈면 깨끗한 기름이라며 치킨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주고, 하루에 붕어빵 하나 어묵 하나라도 먹으면서 일하라고 채근하는 분이다. 일하면서 단 한 번도 결혼을 왜 안 하느냐,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 같은 건 한 적이 없으며, 오래 얼굴을 보지 못하면 안부 전화를 걸어 글은 잘 써지는지 묻고,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나 역시 할 수 있다며, 새로운 한 주는 나의 한 주가 되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적어보내는 분이다. 사장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직원으로 쓰기를 껄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노인을 적극적으로 고용하고, 돈을 많이 벌면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기부하는 게 꿈이라고 하는 분이다.
그렇게 내가 존경하는 사장님이라서, 그리고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나는 우울에 빠져 있는 내내 면구스러움에 몸서리쳤다. 보답은 못할망정 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아 하루라도 빨리 좋아지고 싶었다. 아무리 좋은 분이라도 이렇게 사장님의 인내심을 시험하다 결국은 잘리지 않을까 겁도 났다.
무척 다행스럽게도 나는 한 달쯤 더 지나 지독한 우울과 무기력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장님을 포함해 나를 계속 격려해 준 엄마와 친구들 덕분이다. 나아진 지 반년이 흐른 지금 평온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지만, 사장님께는 늘 죄송한마음을 가지고 있다.
버텨준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누군가를 버텨주는 마음. 사장님의 깊은 속마음까지 내가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그렇게 몇 달 간 힘을 실어주고 정신병자의 병밍아웃에 문장문장 정석 같은 위로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특히나 자신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럴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버텨준다는 것은 믿어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남에게 쉽게 자신의 짐을 나눠지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다해 분투하고 있음을 들여다봐주는 것이다. 고통의 진실성을 알아주는 것이다. 내 마음 같지 않은 그가 답답한 순간에도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겠지 생각하며 지켜봐주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애틋한 연인이어도, 가족이어도 그의 위기를 오랫동안 같이 버텨주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에게 조금의 변화도 없어보인다면, 심지어 변화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면 더더욱 힘든 경우일 것이다. 그래서 더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믿을 수 있게끔 신뢰감을 주어야만 우리는 누군가를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먼저 믿고 지켜봐준다면 그건 언제까지여야할까. 이것 역시도 정답은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신을 길바닥에 붙은 껌처럼 여기던 나는 나를 믿어주는 마음들로 인해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믿게 됐다는 점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로 인해서 다시 사람들을 믿게 됐다는 점이다. 4년 간 내 삶을 뒤흔들 정도로 힘든 일들이 많이 지나갔지만, 일하는 곳에서 진실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았다. 그 온기가 내가 딛고 설 발판이었다. 적어도 내가 정신적으로 가장 조그맣던 시기에 사회적인 나를 키워준 건 팔할이 두 점포의 점장님들이다.
- 경력 4년 반. 편의점계의 에이스입니다.
얼마 전 알게 된 사람이 알고 보니 편의점 점장이어서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내 소개를 했다. 그러고 나서 좀 놀랐다. 스스로 에이스래. 칭찬을 받으면 부정부터 하기 바쁜 내가 말이다. 사실 이건 타칭에서 자칭으로 건너온 거긴 하다. 사장님들이 다들 나한테 잘해주신다고 내가 말했을 때 편집자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
- 작가님 알고 보면 편의점계의 에이스인 거 아니에요?
어... 그런가? 하긴, 이번 사장님은 "100명이 와도 바람 씨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하셨으니까 에이스라고 해도 과장은 아니지 않을까. 이런 뻔뻔한 생각을 했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은 내가 편의점계의 에이스가 아니라 편의점계의 진상, 밉상이었던 때가 있었음을 아실 테니 저 자기소개는 그냥 말실수였던 것으로 하자. 아무튼 간에 중요한 건 그거다. 지푸라기인 줄 알았는데 동앗줄이었던 편의점을 만나, 절벽을 오르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 병에 병 잡고 병을 넘어서, 여기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