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이 힘든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관계가 퇴사의 이유인가?
첫 직장 영화사도 3개월, 마지막 이벤트 회사도 3개월 만에 퇴사. 조직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3개월이면 뭐 시킬 것도 없는 애다. (하하) 사실 직장 다녔다고 어디다 얘기하기도 쑥스러운 기간이다.
회사 생활이 어려운가?
마지막 회사는 경력사원으로 들어갔는데, 어느 날 출장 갔다 오니 명문대 출신, 해외 유학파 MBA 출신의 나이 어린(?) 여자 상사분이 내 기획안을 엎어버렸더라. 나의 찌질함은 자존심에 치명타를 줬고, 대표가 나에 대해 평가하는걸 우연히 엿듣게 되면서 도저히 회사에 다닐 수가 없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했고, 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회사에 뭘 기대하는가?
이벤트나 영화사처럼 화려해 보이는 업종을 좋아했다. 남들 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일을 하면 내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똘끼나 감성적인 부분이 그런 일만 하면, 또는 그곳에서 일만 하면 멋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벤트, 광고, 여행사, 해외무역 이런 직종을 선호했다.
실제로는 그런 일은 오히려 사람 만나는 일이 더 많이 생긴다. 회사에서 월급 받으며 일을 하다 보면 업무능력 이상으로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능숙하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선호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직장에서 일하면 내 마음대로 일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착각을 했다.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나를 바꾸고 싶어 했고 화려하고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나를 바뀔 수 있는 건 나에 대한 마음, 즉 믿음이 바뀌어야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살아가는 의미를 일과 생활에서 매일매일 확인하는 삶을 살 때, 잘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그렇게 생각한다.
불나방처럼 화려한 불빛을 쫒아 영화사나 이벤트, 여행사를 기웃거리며 살았다. 가장 오래 다녔던 곳은 출판사이고 마케팅, 영업을 했다. 책을 만드는 곳에서 일했지만 책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성향에 대한 규정을 하지 않고 살다 보니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며 살았다.
어떤 삶을 살고 싶었나?
자유로운 삶? (후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애플 노트북, 모닝커피 한잔, 샌드위치, 고층 건물 사이로 걸어가며, 큰 유리창 너머로 한강이 흐르는 걸 쳐다보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는 것 같다.
신입사원이 가능한 워킹 라이프 인가?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한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이미지를 소모하면서, 나 자신을 그 속의 주인공에게 투사한 걸까? 자기 정체성이 없으면 이런 상황이 되는 걸까? 안타깝게 귀한 청춘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현재 하는 일에는 만족을 하는가?
유통 경력 10년. 수입 유통을 하며 자유로운 삶을 꿈꿨다. 워라벨을 유지하며 살았는데, 경제적인 측면에서 변동폭이 심해지면서 만족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다.
10년이면 전문가 아닌가?
2010년부터 시작해서 3년 정도 재미있게 일했다. 매출도 꾸준히 상승하기에 성취도 있었다. 루틴 한 업무를 반복하면서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성장을 하지 않으면서 연명만 했다. 1년을 똑같이 10번 반복하는 루틴 한 삶을 살았기에 10년 내공을 쌓을 수 없었다. 아이디얼 성향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해가야만 하는 성향인데, 그런 사실을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나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 의미를 일과 생활에서 매일매일 확인하는 작은 성취를 쌓아가려 한다. 이러한 일상의 꾸준함이 10년 정도 쌓이면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는 WPI 심리 전문가가 될 것이라 믿는다.
2번째 글을 쓰면서 바로 생각이 바뀌어 버린다. 역시 난 변덕쟁이. 며칠 전 독립 서적의 아이돌 #브로드컬리 조퇴계 편집장 강의를 들었다. 해방촌 산 중턱에 있는 #독립책방 #별책부록 , 브로드컬리 책을 워낙 좋아하지만, 편집장이 책을 만드는 의미가 느껴지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생각 없던 독립서적을 만들고 싶어 졌다. 첫 번째 글은 별생각 없이 그렇게 시작했다. 나 스스로 인터뷰를 하는 느낌을 가지려고 다이소 3천 원짜리 삼각대에 아이폰 7을 올려놓고 5분 정도 인터뷰 영상을 찍었다. 오호. 요거 은근히 실감 난다. 밥 먹으면서 찍다 보니 밥알도 튀고 하는 희한한 영상..ㅋㅋ 유튜브에 올릴 수도 없다.
아무튼 그 영상을 녹취를 했다. 왜? 1년 넘게 녹취를 하다 보니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녹취를 하는 게 효과적이다. 녹취한 내용에서 조사를 좀 덜어내고, 존댓말을 반말체로 바꾼다. 이런 걸 윤문이라고 하나? 지극히 개인적인 넋두리도 좀 걷어낸다. 진짜 쓸 말이 몇 개 없는 거 같아서, 다시 몇 개 주워 담았다. 역시 편집은 편집 전문가가 필요하다. (언젠가 편집 전문가를 만나리라 믿는다. 연락 기다려요. 호호)
녹취한 걸 보다 보니, 딱 잡아냈다. 인터뷰하면서 나 스스로 슬쩍 거짓말로 포장을 하고 있었다. 오호. 이런. 놀라운 인간의 기만술. 떼끼. 저 위에 내용에 있지만 당시 명문대, 해외 유학파. 여자 상사, 어린 상사 요런 부분이 무지하게 불편했다. 요걸 인터뷰에서는 말하지 않고 인간관계가 힘들었다고 에둘러 얘기했다. 떼끼. 잡아냈다. 그리고 쓴다.
어제 #독립극장 #인디스페이스 에서 #기억의전쟁 을 단출하게 봤다. 전쟁의 피해자로 살아온 우리들이 베트남 전쟁에서는 가해자의 입장에 있고, 그 피해자들 있음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개인에게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나 역시 외면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숱한 시간이 있다. 이제 그 시간을 하나하나 만나며, 확인하고 화해하려고 한다. 만 천하에 이런 걸 공개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이 찌질한 기억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본다.
독립서적이나 출간이니 하니 틀에 나를 구속하지 말자. 그냥 쓰면서 즐겁고, 나와 대화하는 묘한 기분을 느낀다. 편집자가 없으니, 이 글을 읽는 구독자 여러분이 모두 편집자님이십니다. 호호... 가감 없는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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