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꽃.
그녀의 손가락에는 작은 꽃 하나가 피어 있다.
하루키의 선물이었다.
하루키는 버스 정류장에서 퇴근하는 그녀를 기다렸다.
둘이 걷는 길의 햇살은 왜 그리 빛나는 걸까?
커다란 사거리를 건너자,
빨간 소화전 아래 토끼풀꽃이 보였다.
마치 누군가 그곳에 작은 봄을 숨겨둔 것 같았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거친 소음들,
쌩쌩 다니는 차들 틈에서
용케도 피었다.
당당하기까지 하다.
글로리아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하루키는 그녀 뒤에서 웃는다.
유난히 피곤한 날이었다.
하루키는 버스에서 내리는 글로리아에게 반지꽃을 내밀었다. 방긋 웃음이 났다. 반지꽃에 어떤 마법이라도 걸었던 걸까? 시간이 지나도 계속 웃음이 나.
글로리아는 작은 보석함을 열었다.
반지 하나,
목걸이 하나,
귀걸이 한 쌍…
하나 이상 갖지 않으려 노력했다. 두 개가 되는 것이 무서웠다. 이 정도야 뭐 어때로 시작한 욕심 때문에 처음의 하나마저 잃기도 했다.
하나면 돼.
하나뿐인 하루키.
하나뿐인 반지꽃.
하나여서 더 소중해.
그날 밤 감사의 기도는 평소보다 길었다.
늦잠이었다.
다급하게 나가면서도 반지꽃을 끼는 것은 잊지 않았다.
버스가 지하철역 사거리를 크게 좌회전해서 들어오는 것을 보곤 비명을 질렀다. 글로리아의 비명이 사자후도 아닐 텐데, 신기하게 버스는 평소보다 오래 기다려주었다. 숨을 고르며 출근 지문을 찍고 사물함 앞에 섰다. 반지꽃을 주머니에 넣고 조리복으로 갈아입었다. 여자의 미모 따위 하향평준화 해버리는, 단지 위생과 안전만을 위한 갑옷을 걸치고 더운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첫 출근은 작년 늦봄이었다.
출근 일주일 전에 오리엔테이션차 인사하러 들렀다.
오, 주방에 창문이 있어!!
예전 반지하에서 일했던 곳을 떠올리며 글로리아는 자신의 인생 속, 몇 안 되는 행운에 기뻐했다.
급식실 주방의 시간은 너무도 빨리 간다.
글로리아는 자신보다 큰 국솥을 닦으려고 허리를 숙였다. 머리에 피가 쏠린다. 체중을 수세미 위에 올려서 닦아낸다. 오늘 메뉴는 튀김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트렌치는 너무 무겁고 길었다. 청소를 하려고 들어 올리거나 내리다 손가락이 끼이곤 했다.
땀을 훔치며 글로리아는 생각했다.
아, 방학이 언제였더라?
방학이 있긴 했던가.
그 긴 시간은 쏟아진 쌀포대의 쌀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몇 권의 책을 읽었나.
글을 쓰긴 했었나.
산책은 했던가.
베란다에서 운동기구를 꺼내두고 눈알 운동만 했다.
시간도 짜임새 있게 쓰던 사람이나 잘 쓰나 보다. 돈처럼.
창문을 닫으면 청소도 끝이다.
샤워를 하다 보면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멍이 가득하다. 하루키가 보면 걱정하겠는걸? 파스로 가려야겠다. 오늘 메뉴의 CCP만 작성하면 된다. 글로리아는 메뉴의 조리순서를 떠올리며 빈칸을 채웠다. 위생과 안전을 위해 매일 기록해야 한다.
귀찮냐고?
괜찮아. 글로리아는 기록을 좋아하니까.
사물함을 열었다. 희미하게 반지꽃 향기가 풍겼다.
너는 나와 함께 있어.
하루의 고단함을 껴안은 채, 조용히 피어 있는 반지꽃.
글로리아는 원피스로 갈아입고 반지꽃을 손가락에 끼웠다. 원피스는 하루키가 좋아했다. 글로리아도 몸을 조이지 않으면서 여성스러움까지 챙길 수 있는 원피스가 입을수록 좋았다.
조리복은 왠지 갑옷 같고, 여자이기보다 조리사, 조리실무사로 불리기에 딱 맞는 외모로 변신시킨다. 어깨 근육이 붙어 점점 역삼각형의 건장한 몸이 되어가고 있다. 치마라도 입지 않으면 여자로 안 보일 것 같다.
나는 내가 여자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원피스를 입을 거야.
글로리아는 무슨 대단한 결심라도 하듯 그렇게 마음먹었다.
퇴근을 찍고 글로리아는 팔랑거리며 뛰어간다.
비록 원피스 속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지만,
하루키를 만날 생각에 발걸음은 너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