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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Nov 02. 202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2023년 10월 한국 개봉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ㅡ 1941년생. 현재 82세. 아동 문학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 영감받아 7년에 걸쳐 수작업으로 완성한 작품 ㅡ 아마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지막 영화일지도,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저자요시노 겐자부로출판양철북발매2012.06.15.

        

좀 조사를 해봤는데. 영감을 얻은 책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ㅡ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권유받아 읽고 감명받은 책 ㅡ 이지만 애니메이션 내용은 『잃어버린 것들의 책』의 내용과 더 가깝다고 한다.


잃어버린 것들의 책저자존 코널리출판폴라북스발매2010.09.10.


간단히 줄거리를 요약하면,


오랜 세월 병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엄마, 그리고 연이은 아빠의 재혼과 곧이어 태어난 이복동생, 이 모든 현실이 열두 살 소년 데이빗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결국 외롭고 화가 난 그는 현실에서는 눈을 돌린 채 다락방 침실에서 동화책을 읽으며 엄마를 그리워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어둠 속에서 책들이 소곤거리기 시작한다. 죽은 어머니가 사랑했던 신화와 동화 속에 빠져들면서 데이빗의 현실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뒤섞이기 시작한다. 온몸이 뒤틀린 꼬부라진 남자가 찾아와 조롱의 미소를 지으면서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국왕 폐하! 새로운 국왕 만세!”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다. 데이비드는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정원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_나무위키


뿐만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생 애니메이션 《왕과 새》의 영향 또한 크다고 설명한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전 작품들을 거의 다 본 사람으로 서사의 완성도 작화의 새로움보다는 '어떻게' 풀어나갔는지가 궁금했다. ㅡ 미야자기 하야오 본인도 밝힌 바와 같이 자신의 어린 시절의 회고적 성격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 궁금했다. ㅡ 극장 의자에 앉자,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점차 소리로 채워진다. 실루엣이 움직인다. 


<왕과 새> 폴 그리몰트 감독 애니메이션


"저는 한 점의 악의가 있어요. 제 머리의 상처는 저의 악의로 만들었어요" _마키 마히토(주인공)



+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간다. 새엄마 ㅡ 마히토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동생 나츠코와 재혼 ㅡ 에 대한 부정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던 마히토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나타나고, 저택에서 일하는 일곱 할멈으로부터 왜가리가 살고 있는 탑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히토는 사라진 새엄마 나츠코를 찾아 신비의 탑 안으로 들어간다. 또다시 잃고 싶지 않은 것. 왜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않고, 왜가리가 안내하는 이세계(異世界)의 문을 통과하는데,



"교활한 것은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야" _아오사기(왜가리)


?. 불타오르는 병원


개인적으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보여준 미적이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감정선이 진하게 녹아있는 장면이자 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1. 사랑하는 어머니가 화재로 죽는다. ㅡ 공습경보가 울렸고, 도쿄 대공습으로 인한 폭격이 자주 일어났던 시기 ㅡ

2. 불타오르는 병원과 어머니. 불길은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붉고 묽게. 마히토의 트라우마이자 그리움, 상실을 묘사한 붉은 불길(묘사)은 절절함과 절망 그 자체였다.

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전체를 관통하는 한 축인 . 곧 전쟁을 암시한다. 양면의 칼날. 피아(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는다. ㅡ 위정자들의 욕망이기도 하다 ㅡ 화마(전쟁)는 재앙일 뿐. 모두에게.


?. 이세계 입구와 출구인 신비의 탑


탑 입구 위에 적힌 문구 fecemi la divina potestate (라틴어로 '나는 신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단테 『신곡』의 지옥편 제 3장에 나오는 문구이다. 왜가리를 따라 이세계에 들어가고, 마히토는 모험과 이 입구부터는 현실 세계가 아닌 이세계로 들어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문구로 보인다.


상징적인 장면이 나온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묘사한 이세계異世界

(좌) 아놀드 뵈클린(1827 ~ 1901, 스위스) <죽음의 섬>, (1880) 출처 : Wiki (우) 마히토가 이세계에 들어가자 처음 마주친 무덤이라 불리는 곳
철문의 위에는 "나를 배운 자는 죽는다"라고 일본어로 쓰여있다. 새로운 탄생의 의미. 배움 이전의 '나'는 죽는다.


탑 안은 아래 세계 탑 바깥은 위 세계다. 바다가 보이고 수많은 배와 검고 투명한(얼굴이 묘사되지 않은) 사람들, 와라와라(동글동글한 귀여운 생명체). 펠리컨들, 잉꼬들. 이 세계는 아직 완전하지 않은 곳이다.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 머무는 곳. 림보*를 비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


* 신곡의 지옥편 초반에 등장하는 림보는 기독교를 믿을 기회가 없었던 의로운 사람들이 머문다는 선조 림보(Limbus Patrum)라고 볼 수 있다. 세례 받지 못한 아기들도 여기 있다.


혼돈의 이세계는 마치 이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작품들의 몽타주* 같았다. 우당탕 한 이세계. 이곳이 파괴되면 지옥(더욱 무질서)만 있을 뿐. 마히토와 아오사기(왜가리), 키리코(와라와라를 돕는 어부)와 소녀 히미(마히토의 엄마 히사코)는 탑을 탈출한다.


* 프랑스어 ‘monter’(모으다, 조합하다)에서 유래한 용어로 영화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영화필름을 편집할 때에 따로따로 찍힌 화면을 떼어 붙여서 하나의 유기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영화 기법


?.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그대들(여러분)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마키 마히토라는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군수 업체의 경영자였던 아버지. 이른 어머니의 죽음. 일본 사회에 짙게 깔린 전쟁의 그림자와 가난한 일본 시민들. 전쟁은 자신의 가족에게 부를 가져다주지만, 마히토(미야자키 하야오)는 부조리함을 느낀다.


하지만, 자신의 불안정함(악의)을 인정하고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이유는 사랑과 우정이다. 사랑은 지켜야 하는 것. 우정은 함께(연대해) 부조리한 세상을 이겨내고, 때로는 세상을 바꾸며 모험을 하는 것.


아오사기(왜가리)는 말한다. 곧 잊어버릴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하지만 삶이 그렇다. 꿈같기도 환상 같기도 한. 그러한 세계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전 작품을 통해 말하는 주제가 있다.


"살아가야 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끝나자 엔딩 크레딧이 천천히 올라온다. 요네즈 켄시의 주제가 '지구본'이 흐른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나에게 묻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그대들(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트리비아 #trivia #나무위키 #뒷이야기 

ㆍ일본에서 7월 14일에 공개되었으며, 야후! 재팬과 Filmarks 등 일본 웹사이트에서 리뷰가 먼저 올라왔다. 성우들의 연기는 좋았으며, 영상미나 음악은 호평이다. 작화감독이 미야자키 작품은 잘 안 하던 혼다 타케시이고 미야자키가 작화 수정을 거의 안 했다고 하는데 혼다가 화풍을 기존의 미야자키 작품과 비슷하게 맞춰서 거부감 없다는 평이다. 그러니까 미야자키도 수정을 거의 안 했을 것이다. 작화는 미야자키 작품 중에서도 최고점을 찍었다는 평이다.

ㆍ반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평소엔 잘 안 하던 아방가르드 연출도 시도하고 자신의 과거 작품들의 셀프 오마주도 상당히 많이 넣었으며 편집도 자유분방하게 해서 구성이 산만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한 번 보는 걸로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이 많으며, 여러 번 봐야지 제대로 된 감상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 스스로도 극비 시사회 때 "분명 이해가 잘 안 되실 겁니다. 사실 저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요." 라고 말했었다고.

ㆍ스즈키 토시오의 말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진해서 복귀를 선언했을 때, 자신은 여태까지 미야자키가 이룬 업적들 때문에라도 예전에 하던 제작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신선한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그렇다면 스튜디오 지브리 사상 전례가 없는 최장의 제작 기간과 최대 수준의 제작비를 쏟아부어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작화 매수(프레임)도 기존 지브리 애니보다 높다고 한다. 또한 다수의 스폰서들이 공동 투자하는 기존의 제작위원회 방식이 아닌, 제작비 전액을 스튜디오 지브리가 부담하는 자주 제작 독립 영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이라고 한다.

ㆍ2023년 7월 14일 개봉인데도 불구하고 당시 2022년 12월에 포스터를 공개한 것을 제외하면 어떠한 예고편도 나오지 않았고, 사전 인터뷰도 없었고, 별다른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 스즈키 토시오는 이렇게 신비주의 마케팅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다수의 예고편을 공개하고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는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 혹은 제작위원회의 방식과 정반대로 가고 싶었다고 하며, 정보 과잉의 시대에서는 조금이라도 정보를 흘리면 그것만으로도 관객의 재미를 빼앗아갈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NHK 인터뷰 스즈키는 그래도 포스터는 한 장 더 그리려고 생각했지만 미야자키가 최초 공개한 포스터가 너무 굉장하다고 생각하여 그것만 공개하자고 해서 포스터도 1장 이외에 더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ㆍ영화감독 히구치 신지는 누군가를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자기 인생을 애니메이션으로 연마했다며 칭찬했다.

ㆍ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같은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로서 최고의 작품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사람의 인생을 그림으로 표현한 한 편의 예술." 이라면서 "영화 팬보다는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라고 평했다.

ㆍ만화가 무라타 유스케는 "82세의 나이로 이런 생명력 넘치는 영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전율한다. 믿을 수가 없다." 라고 평했다.



인상impression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감독한 장단편 애니메이션은 총 15개. 이제 또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추가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ㅡ 단편 애니메이션 빼고는 다 봤다. ㅡ 솔직한 감상으로 난해했다. 또 애니메이션을 본 후 자료를 찾아보고 아 그랬구나 싶었다. 스토리, 연출 등 개인적으로 특별한 건 없었다. ㅡ 다만 화재 장면만큼은 엄지 척! 굉장한 미적 느낌을 받았다. 인상적이다. ㅡ 사전에 배경지식을 알고 감상하기를 권한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거장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창작품을 극장에서 볼 수 있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덧,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제가 地球儀(뜻은 지구본).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켄시의 100번째 노래. 1990년 대생 일본 가수 중 가장 좋아하는 가수다. 주제가가 정말 좋다. 강추한다!


(중략)

季き節せつの中なかですれ違ちがい 時ときに人ひとを傷きずつけながら

光ひかりに触ふれて影かげを伸のばして 更さらに空そらは遠とおく

風かぜを受うけ走はしり出だす 瓦礫がれきを越こえていく

この道みちの行ゆく先さきに 誰だれかが待まっている

光ひかりさす夢ゆめを見みる いつの日ひも

扉とびらを今いま開あけ放はなつ 秘ひ密みつを暴あばくように

飽あき足たらず思おもい馳はせる 地ち球きゅう儀ぎを回まわすように

계절 속에서의 엇갈림 속에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빛에 닿아 그림자를 뻗어 하늘은 더욱 아득히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해 잔해를 넘어가

이 길이 향하는 곳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

언제나 빛이 비치는 꿈을 꿔

지금 문을 열어젖혀, 비밀을 파헤치듯

질리지도 않고 떠올려, 지구본을 돌리듯이

.

.

.

☞ 하루키의 영화 생각

1. 영화는 시詩라 생각합니다.
2. 평점을 매기지 않습니다.
3. 감상은 미니멀을 추구합니다.




* 영상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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