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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Dec 03. 2023

성 삼위일체

위니프레드 나이츠

영국에서는 여성 최초로 로마의 영국미술학교에서 공부할 자격을 얻어낸 나이츠의 그림은 마치 모형을 두고 그린 것 같은 신비로움이 특징이다. 그림은 이탈리아 발레피에트라에 있는 산티시마 트리니타 성지로 순례 여행을 가던 중 애니 엔 계곡 아래서 쉬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_작품 해설, 『365일 모든 순간의 미술』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Winifred Knights <The Santissima Trinita>, (1924-30) 출처: Wik



+ 하루키 감상

위니프레드 나이츠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1918.11.11). 깊이 매료되었던 이탈리아 프레스코화*를 본격적으로 연구를 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결과물인 그림, 사진, 글로는 만족할 수 없어 기회를 엿보다 결혼이란 이벤트를 계기로 이탈리아로의 여행 겸 성지순례를 추진합니다. 당시 여성이 여행을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굉장히 위험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위니프레드 나이츠는 오로지 믿음(카톨릭)과 예술가로서의 숭고(그림)를 실현시킬 프레스코화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낱말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많이 그려진 벽화를 일컫는다.


가족과 예비 신랑이었던 예술가 토마스 모닝턴을 설득해 이탈리아로 장기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탈리아 북부 피렌체, 베니스를 돌다 중부로 이동. 로마에서 1주일째 되던 날 어렸을 적(영국 런던) 매주 다니던 성당의 프란시스코 신부님이 로마에서 60km 떨어진 내륙 발레피에트라라는 작은 마을의 Chiesa di San Giovanni Evangelista 성당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녀는 기쁜 마음에 소식을 듣자마자 다음날 아침 새벽같이 준비해 발레피에트라로 출발했습니다.


숙소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한참을 달렸습니다. 가는 길의 거의 모든 도로가 파괴되었고,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고, 발레피에트라는 술래잡기 하듯 계속 달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해질 무렵.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온 위니프레드 나이츠 일행은 발레피에트라에 도착합니다. 차 문을 열고 땅에 발을 디디자,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부서진 건물. 부모 없이 울고 있는 아이. 팔이나 다리 없이 돌아다니는 남자. 여자들은 초점 없이 길거리 혹은 골목길에서 흰자와 이빨만 하얗게 빛을 내며 지나가는 남자들을 빤히 쳐다보고 웃습니다. 이렇게 외지고 작은 시골조차 전쟁의 상흔은 참혹했습니다. 너무 무서워 시선을 돌려 먼 산을 바라봤습니다. 회색빛 감도는 민둥산, 나무들이 듬성듬성 보입니다 ...



&



1. 위니프레드 나이츠는 절망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의 여인들의 삶에. 아이도 노인도 남성도 아닌 여성들의 불행함에. 아이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어머니로서 무력함, 전쟁으로 남편을 잃거나 불구가 된 부인으로서 슬픔,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로서 노인을 모시는 여자로서의 짐. 폐허 위의 세상에서 언제 꺾일지 모르는 꽃과 같은 처녀들 ... 


2. 나이츠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녀가 무릎을 꿇은 곳은 성당도, 성경도, 십자가도 아닙니다. 거리에 누워있는, 속살이 훤희 보이는 여인.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살만 남은 우산이었습니다. 나이츠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고,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염원을.


3. 그녀의 몸에서 염원들이 수증기처럼 증발해 하늘로 떠오릅니다. 하늘엔 염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구름의 형태를 띠기 시작합니다.


. . .


영국에 돌아온 나이츠. 그녀는 어느 날 흐린 하늘을 보다, 지난 여행 때부터 따라다니던 구름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이상하게 구름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자 그녀는 안료와 계란을 준비합니다. 템페라* 방식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아주 고되고 20세기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방식.


* 라틴어의 ‘temperare(안료와 매체의 혼합)’를 어원으로 하는 그림 물감의 일종이며 안료를 녹이는 용매로는 주로 계란이 이용되었다.


템페라 방식의 구도적 그림,에 담긴 염원. 구름은 서서히 빗방울이 되어 떨어집니다. 그녀의 그림 위로. 사라져 갑니다 ...

* 화가 - 위니프레드 마가렛 나이츠Winifred Margaret Knights(1899 - 1947, 영국)

[전기]


위니프레드 나이츠는 1899년 런던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가정주부였고, 일찍부터 미술에 관심을 보여 런던의 슬레이드 미술학교에 다녔습니다. 


나이츠의 초기 작품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라파엘전파의 영향을 받습니다. 


[중기]


슬레이드 미술학교를 졸업 후 나이츠는 계속해 자신의 스타일을 발전시킵니다. 그녀는 입체파와 미래파의 요소를 통합하였고, 이를 통해 현대적인 느낌을 더합니다. 또한 나이츠는 노동 계급의 곤경과 전쟁의 영향과 같은 사회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나이츠는 예술가였던 토마스 모닝턴을 만났고, 1924년에 결혼, 1926년에 아들을 낳습니다.


[후기]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이츠의 작품은 더욱 추상적이고 실험적이 됩니다. 그녀는 초현실주의 요소를 그림에 통합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무의식을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나이츠의 작품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반영하듯 어둡고 변덕스러운 분위기의 작품이 많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이츠는 서섹스의 한 농장에서 육체노동자로 일했고, 이 기간 동안 그녀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지만 작업량으로 인해 작품의 생산량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나이츠의 건강은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1946년 암 진단을 받고 이듬해 48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비평적 관점]


나이츠의 작품은 기술력과 디테일에 대한 관심으로 종종 찬사를 받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깊이가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근거로 종교적 또는 신화적 주제를 사용하는 그녀의 경향을 지적합니다.


나이츠의 작품은 생전에는 호평을 받았지만, 사망한 후에는 유명세를 잃습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미술사학자들과 비평가들에 의해 그녀의 작품이 재발견되기 시작합니다.



* * *


+ 회화 스타일


1. 구도


구도는 신중하게 계획되고 정밀하게 실행됩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몇 시간 동안 스케치하고 아이디어를 다듬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디테일에 대한 관심은 종종 인물과 사물의 복잡한 배열을 특징으로 하는 그녀의 작품에 분명히 드러납니다.


2. 색채


그녀는 그림에 깊이와 입체감을 더하는 대담하고 생생한 색상 선택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녀는 각 색조마다 고유한 감정적 울림이 있어 다양한 분위기와 주제를 전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3. 디테일


그녀는 그림에 질감과 깊이를 더하기 위해 길고 넓은 스트로크와 복잡한 디테일을 조합하여 사용했습니다. 이 기법은 그녀의 작품에 동시대 작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동감과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성경에 대한 이해와 사실성에 연연하지 않고, 그녀만의 독특한 분위기, 묘합니다.

출처 : Wikiart






"오늘은 급진적 사상을 지닌 성직자가 작곡한

파격적인 작은 무곡을 들어보자"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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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아래로 흐르는 감정은 세차게 휘몰아쳐 흐른다. _하루키

Padre Soler - Fandango - Jean Rondeau (live performance)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Winifred Knights - Wikipedia

[2] Winifred Knights 1899–1947 | Tate

[3]Winifred Knights: creating the image of an ideal world | Art UK

[4] Winifred Margaret Knights | British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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