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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Aug 18. 2024

흑인의 역사

장 미셸 바스키아

1960년 아이티 계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계 어머니로부터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는 28살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 미술에 매우 큰 파장을 일으키고 그 영향력은 아직까지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4위를 차지한 이 그림은 바스키아가 불과 22세에 그린 작품으로, 당시 뉴욕은 뉴-페인팅으로 대변되는 포스트모더니즘, 그러니까 구상으로 회귀한 센세이셔널한 작품들이 새로운 물결을 이루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독해하는 데에 있어서 그의 민족성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흑인이자 이민자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발견하는 도상(icon) 들과 글씨들은 주의 깊은 독해를 요합니다. 스페인어로 쓰인 작품의 제목은 영어로 “The Great Spectacle”, 즉 “굉장한 볼거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는데요. 바스키아는 이 세 부분으로 된 작품에서 색, 선, 형태를 통해 감동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수천 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티는 바스키아를 예술가이자 역사가로 다루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발견하는 원시주의적 얼굴들, 키스 해링으로부터 영감받은 듯한 형태, 그리고 무엇보다 “SALT”, “SICKLE”, “MEMPHIS”, “SLAVE”, ‘HEMLOCK”등 직접 쓴 글씨들을 눈여겨봅니다. “SALT”, 즉 소금이라는 단어는 바스키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종종 등장하는데 소금은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물질 중 하나이죠. 그러면서 소금은 고대로부터 경제, 전쟁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습니다. 왼쪽 상단 끝에 보이는 “NUBA”를 크리스티가 해석하기에 따르면, 이집트 나일강 일대 아프리카의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가 자리 잡았던 지역인 “Nubia”를 잘못 쓴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또 가장 오른쪽 부분에 검은 사람의 형상에 노예를 뜻하는 영단어 “SLAVE”, 그리고 같은 뜻의 불어 단어 “ESCLAVE”를 썼다가 마구 지운 흔적도 보입니다. 이는 노예제 해방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MEMPHIS”는 미국 테네시 주에 있는 도시 이름이자 고대 이집트의 중점 도시 이름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미국의 멤피스는 19세기 노예제가 가장 활발하게 시행되었던 지역이기도 한데요. 작품의 가운데 부분 위쪽에 쓰인 글씨이자 작품의 제목, “EL GRAN ESPECTACULO”를 생각해 봅니다. 이 문구는 단지 제목을 넘어서 전체 작품을 정의합니다. 바스키아는 관람자에게 수수께끼를 내듯 이 모든 정보를 제시하지 않고 인종차별, 계급 차별, 지리적 우월성 문제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돌아봅니다. _아트맵 23.12.26


바스키아는 흑인 예술가로서 백인 우월주의로 가득 차 있던 당시 현대미술계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저항적 의식을 드러냈습니다. 인종의 역사적 구성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것이 바스키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죠. <흑인의 역사>는 그런 바스키아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표현 문제를 다루었던 방법을 완벽하게 보여준 걸작이라고 비평가들은 전합니다. 2023년 (소더비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미술품 베스트 10, 4위(약 872억원)에 낙찰됩니다. _CHICMENT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Jean-Michel Basquiat 〈El Gran Espectaculo (The Nile)〉, (1983) 출처: 크리스티



+ 하루키 감상


바스키아는 7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만큼 좋아한 것은 엄마와 함께 박물관 가는 것. 박물관에서 고대의 유물을 관찰하고, 역사책을 읽고, 자기만의 해석이 담긴 그림을 즐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부학 책을 읽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ㅡ 실제 1979년 그레이gray라는 록 밴드를 만들어 클럽에서 공연도 했습니다. ㅡ


1979년, 19세의 바스키아는 당시 유명인이었던 앤디 워홀에게 자신의 엽서를 팔기 위해 그가 자주 식사하던 W.P.A. 레스토랑을 찾아갑니다. 바스키아는 워홀을 발견하고 자신을 신진작가라 소개하며 자신이 그린 엽서를 (1달러에) 사달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미술평론가 헨리 겔드잘러(Henry Geldzahler,1935~94)는 ‘너무 어리다’며 흥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워홀은 그가 내민 <바보 같은 게임, 나쁜 생각(Stupid Games, Bad Ideas)> 엽서를 삽니다. (하기 그림)

<바보 같은 게임, 나쁜 생각(Stupid Games, Bad Ideas)> (1979)


(1928년생) 앤디 워홀Andy Warhol과 (1960년생)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는 그렇게 첫 만남을 갖습니다. 32년이라는 나이 차는 숫자에 불과할 뿐. 바스키아는 그동안 고수해왔던 그라피티를 포기하고 전통 회화 작업을 시작합니다. 단기간에 국제 무대에서 (젊은) 신성 예술가로 떠오릅니다. 바스키아는 주류 (백인) 예술계에 급속도로 편입되었고, 어느새 여자친구를 포함 주변은 백인만 있습니다. 부모의 이혼과 어머니의 정신병원 입원, 아버지, 형제들과는 연락을 끊깁니다. 외톨이 (흑인) 바스키아.


바스키아는 가끔 (헤로인에 취하지 않은) 맑은 정신일 때 종종 자신의 10대 시절 그림일기를 보곤 합니다. 우연히 발견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본) 고대 이집트 전시회에 대한 글과 그림. 10대의 바스키아가 적은 한 글을 발견합니다.


"기원전 3150년, 상이집트의 나르메르가 하이집트를 정복하며 이집트를 하나로 통일했다. 최초의 통일 왕조는 이집트 제1왕조가 되었다. 당시 제1왕조는 흑인들이 만든 고대 문명국가. 하지만, 이집트 제1왕조는 더 가난한 흑인들을 노예로 두었다 ... "



&



1. 나는 하늘에 떠 있다. 비행기나 기구를 탄 것도 아니고,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하늘에 떠있다. 눈앞엔 새하얀 안개 구름뿐, 손을 움직이자 손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몸이 움직였다. 구름 속이 답답해 서둘러 구름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 거대한 강이 보였다. 사막과 피라미드가 보였고, 강에는 수많은 배가 떠다녔다. 


2. 자세히 보기위해 가까이 가려 하자 일정 부분 이상은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사람들을 관찰했다. 모두 흑인이었다. 그리고 ... 복장이 특이했다. 크게 로브와 튜닉을 걸친 부류와 하의만 걸친 부류로 나뉘었다. 사방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와 고성, 채찍, 비명 소리도 들렸다.


3. 깨달았다. 이곳은 고대 이집트의 도시라는 것, 바다 같이 넓은 강은 나일강이었다. 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로브를 입고,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튜닉을 입은 병사들은 누비아족을 채찍과 고성으로 부리고 있었다. 피라미드 축조 공사중이다. 실로 웅장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ㅡ 흑인의 역사》 그림 상단의 문장 "EL GRAN ESPECTACULO"(웅장한 광경)라는 문구 인용 ㅡ 


4. 문득 눈에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맺힌 것 같다. 5천 년이 지난 지금도 (흑인의) 노예의 역사는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주인이 왕조에서 백인으로 바뀌었을 뿐. 넘친 눈물은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방울이 떨어져 바닥에 떨어지자  소리를 냈다.


꿈에서 깼다.

* 화가 -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 - 1988, 미국)

+ 전기(1960 ~ 1978)


장 미셸 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어머니와 함께 박물관과 미술관 등을 다녔고,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대해 깊은 매력을 느낍니다.


그는 뉴욕의 진보적인 학교인 시티 애즈 스쿨에 입학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합니다. 하지만 바스키아가 열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하였고, 바스키아는 어머니를 보살피는 한편 방황이 시작됩니다. 11살 되던 해 바스키아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에 능통하게 됩니다. 바스키아는 집을 나와 길거리에서 생활하기 시작했고, 직접 만든 엽서와 티셔츠를 팔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그는 '사모(SAMO©*)'라는 가명으로 그라피티를 그리며 주류에 반항과 비판을 합니다.


* "SAMO"라는 말은 바스키아와 그의 학교 친구인 알 디아즈 사이의 사적인 농담으로 시작되었으며, "Same old Shit"이라는 문구의 약어입니다. 그들은 SAMO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면서 "SAMO© AS AN ALTERNATIVE TO GOD"와 같은 시적이고 풍자적인 광고 슬로건을 새겼습니다.


+ 중기(1979 ~ 1980)


이 시기 바스키아는 뉴욕 예술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SAMO© 그라피티가 인정 받으면서 바스키아는 뉴욕 다운타운 예술계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는 거리 예술에서 캔버스 작업으로 전환하였고 독특한 스타일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1981년 PS1에서 열린 뉴욕/뉴웨이브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전국적으로 주목받습니다.


바스키아 작품은 열광적이고 원초적인 에너지와 텍스트, 추상, 구상적 요소의 통합이 특징입니다. 그의 예술은 권력 역학 관계, 인종 격차, 역사적 내러티브에 대해 이야기하며 소외된 관점을 대변하는 인물로 차별화됩니다.


+ 후기(1981 ~ 1988)


1983년부터 시작한 앤디 워홀과의 협업은 그의 경력에 중요한 순간이 됩니다. 바스키아는 유명해집니다. 하지만 이 시기 바스키아는 헤로인 중독과 개인적 어려움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그는 자신의 예술적 실천을 멈추지 않았고 죽음, 정체성 등에 대한 탐구도 계속했습니다. 바스키아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신의 정체성과 작품이 상품화되는 것을 더욱 경계했습니다. 1988년 (27세)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합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이 비평합니다.


▶ 상업적 성공과 진정성


바스키아의 급격한 명성과 상업적 성공은 그의 예술적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가 미디어와 시장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안된 이미지와 스타일을 채택했다고 주장합니다.


▶ 예술계 내 위치


바스키아의 성공이 그의 인종적 배경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자들은 예술계가 바스키아를 특정 ‘소수 인종 예술가’의 역할로 밀어 넣어, 그의 작품을 진정한 예술적 가치보다 다양성을 위한 상징적 수단이었다는 주장입니다.



* * *


+ 주요 특징


1. 낙서 및 문자 기반 작품


바스키아의 낙서와 문자 기반 작품은 거리 예술에서 그 뿌리를 반영합니다. 이 스타일은 종종 낙서 같은 선, 기호, 암호화된 메시지, 그리고 단어를 결합하여 사회적, 정치적 주제를 드러냅니다. 그는 이러한 요소를 사용하여 복잡한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관객과 직접 소통을 시도합니다.


2. 추상 및 인간, 동물, 물체 등의 결합


바스키아는 감정적, 사회적, 역사적 주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강렬하고 동적인 시각 표현을 보여줍니다. 인물, 동물, 해부학적 도형 등이 추상적 배경과 함께 등장하여, 복잡한 다층적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3. 역사의 참조와 문화적 아이콘


바스키아는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인물과 문화적 아이콘을 자주 등장시킵니다. 이러한 요소는 그의 개인적 정체성과 더 넓은 문화적, 역사적 맥락과의 대화를 가능케 합니다. 그는 항상 인종, 권력, 역사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클림트는 고흐와 모네를 만나기 전, 하루키가 사랑에 빠진 화가. 그의 상징과 장식적 표현, 몽환, 색은 절망, 죽음, 사랑, 신비를 연상케 합니다...  

출처: Artnet





"이 곡은 화려하고 우아하고 인생을 긍정하는,

완벽한 음악적 자극제다. 나는 이 곡이 따분하고 재미없는

일을 하면서 듣기에 좋은 사운드트랙이라고 생각한다."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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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심포니, 지휘자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제목 '영혼이 담긴 알레그로Allegro con spirito' 나만의 해석을 한다면 '영혼에 속도가 있다면 알레그로Allegro(숨이 가쁜 정도의 빠르기)하게' _하루키

Mozart: Symphony No. 35 in D Major, K. 385 "Haffner" - I. Allegro con spirito (Live)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Jean-Michel Basquiat

[2] BasquiatJean-Michel Basquiat

[3] ArtnetJean-Michel Basqui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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