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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Sep 15. 2024

귀고리

조지 헨드릭 브레이트너

집중도를 높이고 싶을 때 도움이 되는 그림.

삐죽할 정도로 곧은 여인의 자태에서

잠시나마 흐트러졌던 정신과 마음을 확 바로잡을 

긍정적인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_매일 그림, 날마다 그림 여행(블랙피쉬)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George Hendrik Breitner <The Earring>, (1893) 출처: Wiki



+ 하루키 감상

188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반 고흐의 동생 테오의 소개로 브라이튼과 만납니다. 당시 고흐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에 가득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만나면 금세 뜨겁게 친해졌습니다. 짧은 기간 헤이그를 누비며 함께 그림을 그린 브라이튼과 고흐. 그들은 도시 헤이그의 노동자층과 풍경을 그렸습니다. 특이한 건 지붕 위에서 스케치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옥상, 헤이그 아틀리에에서 본 풍경>, (1882) 출처: Wiki


하지만 둘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해 6월 고흐가 임질에 걸려 병원에 3개월간 입원합니다. 자연스럽게 둘은 만나지 않게 됩니다.


브라이트너 그림의 색은 멀리서 보면 마치 표백된 가구의 바랜 색 같아. 벽지에 핀 곰팡이라고 할까, 나쁘지는 않지만,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_1883년 7월 헤이그의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 중


브라이트너는 평소 고흐의 불같은 성격과 변덕에 불만이 많았고, 고흐의 특히 싫은 점은 (브라이트너는 신중하고 진지하게 스케치를 한 반면) 스케치는 신경 쓰지 않고 장비나 표현에만 관심이 많았던 점입니다.


1892년 (고흐가 죽은 지 2년 후)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브라이트너는 고흐와 헤어지고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빈곤층과 거리, 풍경을 그립니다. 그리고 가끔 (10년 전 헤이그에서 고흐와 함께 했던 것처럼) 지붕 위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여전히 고흐를 좋아하지 않은 채.


당시 브라이트너는 아내에게 편지로 이렇게 적습니다. "고흐의 그림은 마음에 들지 않아 어떤 구별도 없고, 게다가 그는 밀레와 다른 화가들의  것에서 모두 훔쳤어" _Wiki


편지를 보낸 뒤 얼마 후 고흐가 2년 전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예술과 사회의 분리되지 않는 관계, 한 몸에서 머리만 분리된 추와 미, 세상은 눈으로 본 것이 아닌 인상의 세계라는 등. 브라이트너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별로였지만, 뜨겁고 전염성 강한 예술가라는 생각. 마치 브라이트너 안에 불씨를 남긴 것 같습니다. 



&



1. 여인을 따라 작은 쪽방에 들어갑니다. 여인은 연애를 하는데 쓸데없이 짐이 많냐고 핀잔을 줍니다. (억양이 불어식 네덜란드어였습니다.) 브라이트너는 말합니다. 부탁할 것이 있다고, 추가로 돈을 지불하겠으니 갖고 온 기모노를 입어 달라 부탁합니다. 여인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깔깔 웃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릅니다. 브라이트너가 계속 진지하자 그녀는 말합니다. 위Oui(불어, '네')


2. 가방에서 깨끗한 꽃무늬 파란색 기모노를 꺼냅니다. 여인은 서두르지 않고 나체인 상태에서 기모노를 입습니다. 마지막에 흰 띠를 허리에 두릅니다. 잠시동안 정지된 동작으로 브라이트너는 기모노를 입은 여인을 봅니다. 다시 말합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실래요." 작은 거울, 그녀는 얼굴을 찡그립니다. 얼굴만 보였기 때문. 그녀는 귀여운 표정으로 브라이트너에게 부탁합니다. 헤브 예 오르벨런Heb je oorbellen?(네덜란드어, 귀걸이 있어요?) 


3. 브라이트너는 말없이 가방에서 귀걸이를 찾아 여인에게 건넵니다. 여인은 거울을 보며 귀걸이를 합니다. 브라이트너는 재빨리 스케치를 시작합니다. 여인은 귀걸이를 하자 뒤돌아서며 말합니다. "(내가 본) 거울에선 얼굴과 귀걸이만 보여요. 당신은 나(기모노)와 얼굴, 귀걸이 전부 보여서 좋겠어요" 또 웃는다. 브라이트너의 손은 멈추지 않고 스케치를 하고 있고, 눈은 여인을 관찰합니다.


4. 1시간쯤 지나자 브라이트너는 쪽방에서 나옵니다. 내일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서둘러 아틀리에(작업실)로 돌아와 (좌) 알프레드 스티븐스 <일본 파리지앵 La Parisienne japonaise>, (1872), (우) 모네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Camille Monet in a Japanese Costume>, (1875 ~ 76) 그림을 꺼냈습니다. 잠시 그림을 봅니다.

출처: Wiki


5. 브레이트너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합니다.


"스티븐스와 모네의 그림에는 색, 형상, 자포니즘*, 과장된 표정만 있다. 나는 이들에게 없는 것을 그릴 거다. 낮은 조도, 대기(분위기), 공기질, 거울 속 하층민 여인을"


* 자포니즘(영어: Japonism) 또는 자포니슴(프랑스어: japonisme)은 19세기 중-후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본풍의 사조를 지칭하는 말로써 필립 뷰르트 (1830-90)가 최초로 사용

* 화가 - 조지 헨드릭 브라이트너George Hendrik Breitner (1857 – 1923, 네덜란드)

조지 헨드릭 브라이트너

+ 전기(1857 - 1886)


1857년 로테르담에서 태어난 브레이트너는 1876년부터 1880년까지 헤이그 미술 아카데미에 다녔으며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습니다. 1880년 헤이그 예술가 협회 회원이 됩니다. 하지만 헤이그 예술가 협회와 거리를 두었고, 오늘날 브레이트너는 암스테르담 인상파로 간주됩니다.


1882년에 브레이트너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를 만나 함께 작업했으며 , 그와 함께 헤이그의 빈곤 지역을 자주 방문합니다. 브라이트너는 노동자, 하녀, 하층민 등 노동계급 모델을 선호했습니다.


+ 중기(1887 - 1900)


브라이트너는 자신을 서민 화가로 여깁니다. 항구 옆 나무의 기초 말뚝, 구시가지의 철거 작업 및 건설 현장, 댐의 마차, 빗속의 운하 등 탁월한 도시 풍경을 그린 화가입니다. 그는 긴장된 붓 터치로 역동적인 거리 생활을 포착합니다. 1890년에는 카메라 가격이 저렴해졌고 브라이트너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 좋은 카메라를 갖게 됩니다. 그는 도시의 움직임과 조명을 포착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를 표현하는데 전문가가 됩니다. 흐린 날씨 조건과 회색빛과 갈색빛 팔레트에 대한 브라이트너의 선호는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 후기(1901 - 1923)


세기가 바뀌면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회고전(1901)이 성공하였고, 네덜란드에서 유명 화가로 인정받습니다. 브라이트너는 파리, 런던, 베를린 등 여러 도시를 여행했고, 많은 사진을 찍습니다.


브라이트너는 해외에도 전시회를 열었지만 명성은 네덜란드를 넘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브라이트너는 비평가들에게 잊힙니다. 192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합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이 비평합니다.


▶ 브라이트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에 지나치게 몰두해 예술계에서 높이 평가하는 웅장함이나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결여되었다고 비난합니다. 또한 브라이트너가 인상주의를 채택해 느슨한 붓놀림과 풍부한 표현력에 집중하자 비평가들은 미완성 작품이라는 꼬리표를 붙입니다. 이러한 비판은 디테일한 사실주의와 세련된 기술이 높이 평가되던 시기입니다.


▶ 브라이트너는 사진을 예술 도구로 삼은 선구자였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현실을 포착하는 회화의 기술 부족이란 비판을 받습니다. 이런 비판은 사진의 역할과 회화란 무엇인가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 *


+ 주요 특징


1. 정밀함에서 표현력까지


초기 단계에서 브라이트너는 학문적 훈련을 반영해 정확한 선 작업과 세밀한 사실주의 작업을 합니다. 브라이트너는 점차 스타일이 발전해 표현력이 풍부해집니다.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은 그의 그림은 장면이나 인물의 본질과 역동성을 즉각적으로 포착하고 몸짓적인 선이 특징입니다.


2. 도시적 사실주의부터 인상까지


브라이트너는 도시 풍경과 노동 계급의 일상생활에 집중합니다. 이 시기 브라이트너는 사회 현실에 깊은 관심을 반영합니다. 네덜란드 도시 생활의 가혹한 현실과 아름다움을 묘사합니다. 이러한 주제는 침울한 색채와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한 예리한 안목으로 표현됩니다. 점차 인상을 강조한 그림으로 확대됩니다.


3. 사진을 통합한 접근


브라이트너의 선구적 측면은 사진을 예술 도구로 사용한 점입니다. 드로잉과 회화를 위한 예비 연구로 사진을 자주 찍었는데,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습니다. 사진은 구도, 원근감, 빛을 실험할 수 있었고 현실의 스냅샷 같은 스타일을 완성합니다. 사진과의 통합은 후기 스타일에 크게 기여합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재밌습니다. 아름다움을 쫓은 것이 아닌,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풍경을, 사실을, 그렇지만 인상으로 뿌연, 브라이트너의 눈은, 도시 풍경 속 더러움, 여자, 마차, 건물들, 계층을 관찰합니다.


출처: Wiki





"어딘가 꼭 있을 것만 같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음악이다."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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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인데, 아직도 한낮의 온도는 30도를 넘습니다. 음악을 통해 잠시 더위를 잊을 수 있길 바랍니다 ...

4 Songs, Op. 40: No. 1, When the Golden Cornfield Waves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George_Hendrik_Breitner

[2] MydailyartdisplayGeorge_Hendrik_Breitner

[3] rijksmuseumGeorge_Hendrik_Breit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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